자책 끝에 만난 책의 세계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직업을 가진 지 얼마 안된 사회 초년생일 때. 좌충우돌하고 허둥대고 실수를 연발하는 듯할 때. 거꾸로 시계를 돌려 나의 모든 선택과 언행을 수없이 곱씹었다.
지하를 뚫을 듯한 자책 끝에 얻은 것은.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타인의 문제‘도 많았다는 것. 과거부터 나를 만난 지금까지 그 사람이 이끌고 온, 그 시간을 같이 살아내지 않은 한 말이다. 어쩌면 난 해결할 자격도 없는 거였다.
사람에 대해 공부하며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온 많은 문제의 원인을 조금씩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심리학 철학 인류학 책들을 탐독했다. 공자 맹자 니체 다이아몬드 레비스트로스 푸코 유발하라리 등등 책 속 수많은 분들이 귀한 조언을 해주었다. 물론 다 알기엔 너무 큰 산들이고, 조금 아는 내용도 종종 잊어 부지런히 떠올려야 하지만.
긴 자책 끝에 내가 만난 건 책이었다.
(말장난 같지만 이거 진짜다)
주로 십년도 더 전의 기억이다. 물론 이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문학을 전공하고 교육을 하는 직업이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고 냉소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물론 인문학 한다고 해서 다 성자되는 건 아니다. 여전히 의심하고 회의하고 억울해하고 말도 안된다 여기고 속으로 욕도 한다. 그렇지만 시계추처럼 다시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그냥 딱 그 정도다. 흔들리다 멈추고 흔들리다 멈추고 그렇게 살아가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딘지 아는 정도. 배운 만큼 실천하며 사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아는 정도. 그걸 책이 가르쳐 주었다.
자책은 나를 꾸짖는 것이다. 열심히 꾸짖어 가다보면 나를 탐구하게 되고, 보편적 나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렇게 나아가고, 타인도 이해하고, 그러다 우리를 이해하는 과정이 아닌가 한다. 결국 내가 타인인지 타인이 나인지 구별이 안될 만큼.
자책이 그저 자기를 깎아먹기만 하는 건 아니다.
긴 자책의 과정도 내겐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