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욘 포세의 소설 <아침 그리고 저녁>은 ‘요한네스’라는 어부의 생의 첫날과 마지막 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는 어머니 ‘마르타’의 비명과 함께 자신을 감싸고 있던 작고 아늑한 우주에서 분리되어, 지상에서의 첫 숨을 터뜨렸습니다. 그동안 연결되어 있던 모든 것들과 떨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느끼자마자 본능적으로 울기 시작했죠. 탄생은 어머니의 양수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요한네스라는 이름, 가족들, 가업, 스스로 만들어갈 모든 이야기와 말이죠.
이제 막 한 사람의 일생이 시작되었는데, 소설가는 꽤 매정합니다. 다음 장을 넘기자마자 요한네스의 마지막 하루가 펼쳐져요. 매일 아침 그랬듯이 일어나자마자 커피 주전자를 불에 올려놓고, 브라운 치즈를 곁들인 빵 한 조각을 먹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에르나’를 회상하며 담배 연기를 빨아들이는 것도 평소와 같은 루틴이었는데, 좀 이상한 점이 있네요. 몸이 가뿐해요. 담배를 몇 대 피워야만 맑아지던 머리가 아무 것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멀쩡하고요. 몸이 가벼우니 낚시를 해야겠단 심산으로 배를 타러 나갔다가, 해변에서 반가운 얼굴을 마주칩니다. 요한네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 ‘페테르’. 페테르는 몇 해 전 죽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페테르입니다. 여느 때와 같고 여느 때와 다른 기묘한 하루. 요한네스는 이 하루가 다 저물어갈 즘에야 페테르가 서쪽의 먼 곳으로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요한네스의 마지막 날을 함께 따라가면서 놀라웠던 점은, 고작 하루를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인생의 꽤 많은 부분을 알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아버지의 소원대로 가업을 이어 어부가 됐다는 것, 정작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 자식들 중에서도 유독 막내딸과 애틋하다는 것, 아내 에르나와 매일 아침 부엌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 바다 위의 삶을 지리멸렬하다 여기면서도 어망을 결코 놓지 않았다는 것. 현실과 소망과 기억과 환상이 뒤엉킨 채로 시작한 요한네스의 마지막 하루는 그의 삶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행운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살던 대로 죽을 수밖에 없어요. 어떤 공간에서, 누구의 옆에서, 무엇을 하다 죽고 싶은지 떠올려 보면, 그 모습은 살아서 누리고 싶은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케이크를 잘라냈을 때 드러나는 층층이 쌓인 단면처럼, 죽은 후에 봐도 만족스러울 색깔과 맛으로 이 유한한 하루를 채워가고 싶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아침 그리고 저녁>에는 마침표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문장이 쉼표 혹은 공백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문장들의 행렬에 가끔 숨이 차기도 하고, 멈출 곳을 찾지 못 해 버거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삶은 이토록 쉼표로만 가득 차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살 것처럼 굴도록 만드는 것이겠지요. 이 글의 제목에 힌트를 준 김영민 작가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살게 되겠지.’
삶이란 어쩌면, 가장 나다운 죽음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죽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얼루어
2주에 한번, 네 명의 에디터가 콘텐츠에 대해 노가리를 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