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지의 서울>
여섯 줄 짜리 시 앞에서 숨 쉬는 것을 잠시 잊었던 적이 있습니다.
'물에 잠기는 순간
발목이 꺾입니다
보기에 그럴 뿐이지
다친 곳은 없다는데
근황이 어떻습니까
아직, 물속입니까'
이승은 시인의 '굴절'이란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며, '오늘'은 언제나 물에 잠겨 있는 발목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쉼없이 발목 위로 넘실대는 물은 '어제'이고요. 누구에게나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어제의 실패, 사랑, 상실이 있겠지요. 가끔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힘이 센 기억과 생각들이요.
일란성 쌍둥이 자매인 미래와 미지는, 그런 면에서 남들에겐 없는 치트키를 보유 중입니다. 엄마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이 생긴 덕에 비상 시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거든요. 미래의 한약을 미지가 대신 먹어주고, 미지의 수학 숙제를 미래가 대신 풀어주는 식이죠. 삶의 퀘스트가 늘 이 정도 레벨이라면 좋을텐데. 어른의 삶은 아파트 3층에서 뛰어 내려서라도 병가를 내고 싶을 정도로 고달픕니다. 회사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당하며 꾸역꾸역 버티고 있던 미래에게 미지는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잠시 바꿔 살자'고 제안합니다. 그렇게 미래는 엄마와 미지가 살던 고향 본가로, 미지는 서울의 빌딩 숲으로 불시착하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면서, 두 사람은 자신의 꺾인 발목을 자꾸 마주하게 됩니다. 동시에 끄떡하면 "너처럼 살고 싶다"고 무심코 내뱉었던 그 애의 인생 역시 동화가 아니었고, 그저 다른 물속을 헤매고 있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게 되죠.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온통 미지의 영역이었던 겁니다. 쌍둥이의 비밀도,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마음도, 그리고 내 욕망조차도.
<미지의 서울>을 관통하는 대사가 있는데요.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 저는 이 대사가 꼭 모르니까 가보라는 말 같았습니다. 어제의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미지의 실패, 사랑, 상실로 용감하게 걸어 나가라고요.
아직도 가끔 물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나요? 세상엔 아직 우리가 모르는 뭍이 많습니다.
2주에 한번, 네 명의 에디터가 콘텐츠에 대해 노가리를 깝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