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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Dec 27. 2016

미움 받을 용기 따위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악몽으로 기억되는 룸메이트가 하나 있다. 생활 패턴도, 성격도, 가치관도 모두 반대였다. 내가 견디기 어려웠던 건 우리가 반대인 것이 아니라 둘의 다름을 나의 틀림으로 단정 짓는 그 애의 화법이었다. 불시에 뾰족한 말을 등 뒤에 꽂아놓고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쟨 왜 저렇게 날 미워할까’ 괴로웠고 나중엔 ‘쟤만 없어지면 살만 하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워서 자주 잠을 설쳤다. 위태로운 동거는 결국 6개월 만에 깽판으로 막을 내렸다. 서로 상처주려고 작정하고 내뱉었던 말들이 하루 종일 귓가에 울렸다. 그날 저녁, TV를 보며 깔깔거리는 그 애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짐을 쌌다. 남은 건 털끝만큼의 타격도 입힐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공포심뿐이었다.


<식샤를 합시다>의 오도연 변호사는 여러모로 그 애를 연상시키는 여자다. 제 잘난 맛에 살고, 눈치 없게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대는, 세상이 자기 위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완전체! 당연하게도 사무실 식구들은 모두 그녀를 싫어하는데, 알아채질 못하는 건지 상관없는 건지 그녀는 한결같다. 


천동설? 지동설? 다 꺼져. 지구는 날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무실 식구들이 까르보나라와 그라탕, 스테이크와 라자냐까지 시켜 폭식하고 있는 그녀를 식당에 남겨두고 나갔을 때, “괜찮아요”라던 말과 달리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건 울음이었다. 앞에 앉아 기다려주는 사람 하나 없이 넓은 테이블을 혼자 차지하고 꾸역꾸역 음식을 집어넣는 것. 그 그림만큼 외로운 게 있을까. 


문득 그 애가 떠올랐다. 방을 바꾸고 몇 달 후 친구가 말을 전해왔다. “걔, 동아리에서 이상하다고 소문났더라. 사람들이 다 싫어한대.” 그때 난 그렇게 대답했다. “걘 아무렇지도 않을 걸.” 오도연 변호사의 눈물을 보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 애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아니었을 수도 있다. 미움 받을 용기 같은 걸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렇게 꺼억꺼억 울고 사무실로 돌아간 오도연 변호사가 개과천선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애도 알고 보면 좋은 애였을 거라며 기억을 미화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세상에 별종은 많지만 상처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되뇌어본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물렁해진다. 딱딱한 벽은 주먹을 맞으면 금이 가지만 물렁한 베개는 주먹을 무색하게 하잖아!


아, 오늘도 이렇게 정신 승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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