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호타루의 빛>
퇴근 후엔 집에 달려가 무릎 나온 츄리닝으로 갈아입고, 앞머리를 질끈 묶은 채 맥주부터 꺼내는 여자. 집에서 뒹굴거리느라 연애세포와 감성이 다 말라버린 여자! ‘건어물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무서워!” 심지어 “우리 회사엔 그런 여자 없겠지!” 단언하기까지 한다. 그런 대화들 위로 홀로 마루에 앉아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키는 호타루의 모습이 지나간다. 긴 베개를 끌어안고 퇴근 후 방종을 만끽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는 듯 이어지는 대화. “남자가 없으니까 베개를 껴안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내려지는 결론. “20대 때 연애를 포기하면 다 끝이야.” 그 선언이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다. 냉장고를 뒤지며 엉덩이를 긁적이는 저 건어물녀가 사랑이란 걸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충실하게 <호타루의 빛>은 시즌 1에선 미중년 부장님과의 연애를, 시즌 2에선 결혼에 골인하는 것을 해피엔딩으로 그려낸다.
물론 둘의 꽁냥꽁냥을 보는 나도 행복했다. 하지만 호타루가 건어물녀를 벗어나야겠단 일념으로 몸에 맞지 않는 듯한 연애를 이어나갈 땐 말해주고 싶었다. 연애를 하고 누구를 만나는 것만이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지금 네게 연애 세포가 메마른 것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는 흔히 사랑에 빠진 걸 ‘마음을 뺏겼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마음을 뺏기지 않은 자의 특권을 생각해본 적 있는지. 내 마음을 오롯이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나의 내면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요즘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뭔지, 내가 꿈꾸는 나는 어떤 모습인지, 아무 것도 하기 싫다면 왜 이렇게 만사가 귀찮은지 스스로의 대답에 귀 기울이는 것. 내 마음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남을 향한 감정을 확신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호타루가 연애를 앞두고 몇 번이나 망설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혼자인 우리는 연애 세포가 말라비틀어지는 걸 걱정할 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부장님이 호타루에게 날렸던 회심의 일격, “귀찮아하면 소중한 걸 잃게 된다”는 말은 썸남 이전에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말인 것이다. 마음은 내 것부터 제대로 소화해야 뒤탈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 소화력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은 바로 내 마음이 온전히 내 것일 때, 혼자일 때다.
그러니 오늘 밤도 고독을 즐기는 호타루들을 지지한다. 세상은 함께 마시는 맥주가 제 맛이라 강요하지만, 내게 묻고 혼자 답하며 벌컥이는 ‘혼맥’ 또한 만만치 않게 맛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