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결국 즐거우려는 것
한국에서도 일년에 한두번 탈까말까한 기차를 며칠 새 많이도 탄다. 그 유명한 떼제베도 탔고, 스위시 동네 기차에 산악 열차, 다른 나라로 바로 넘어가는 인터씨티 열차도 타본다. 출세했다.
나 어릴때 기차여행은 마냥 신나고 즐겁고 그나마 제일 편안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영 아닌가부다. 이놈들, 기차 지겹단다. 힘들고 피곤하단다. 확 그냥 냅두고 나만 탈까부다.
혹시나 몰라 각종 태블릿에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영화들을 담아오긴 했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려고 준비해온건데 이건 뭐 툭하면 이러고 있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풍경을 감상하고 과자를 나누어 먹는 장면은 내 기대였나보다. 눈앞에 루체른 호수와 알프스 산맥이 펼쳐져도, 타고 있는 기차가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국경을 바꾸고 있는 틈에도 아이들은 그저 만화에 즐거워한다.
처음엔 좀 속상했다. 여기까지 여행와서 이렇게 각자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속상하고 왠지 모를 1패의 느낌도 들었다. 이러면 안될 것 같고 이 분위기를 깨야할 것 같고 하하호호 웃음꽃이 피어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엄마인 내가 더 노력해야할 것 같았다.
욕심이었다.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 걸어다니며 엄마보다 더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들어주는 아들들에게 내가 욕심을 부렸다. 아이들에게는 별 감흥없는 차창밖 풍경보다 혼자 즐겁게 만화에 빠질 시간이 필요했다. 그걸 못하게 하려고 엄하게 굴고 그 시간을 줄이려고 이래저래 머리를 굴렸는데 헛짓을 했다.
좀 보면 어떤가.
대화 좀 덜 나누면 어떤가.
우리가 이렇게 같은 공간에 있는데. 우리가 별일없이 유럽대장정을 해나가고 있는데 만화 한두시간 더 본다고 뭐가 나쁜가.
마음을 비우고 나니 기차는 천국이 되었다. 올라타면 10분 정도 예의상 어디로 향하는 기차인지 좌석은 어떤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몇 마디를 주고받는다. 예의라기보다는 꼭 필요한 정보 교환이다.
그리고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좌석은 편안하고 창밖 풍경은 대부분 예술이고 내가 보고싶던 예능프로, 드라마, 영화를 고르기만 하면 기차여행 시작이다. 그 틈을 내어 이렇게 몇 자 적는다.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고 알아서 자유를 즐기고 있는 걸 실은 고마워해야하는거다.
자유시간을 완전히 허락하고 나자 아이들이 기차여행을 기다리게 되었다. 나도 이제 슬슬 기다려진다. 글 쓸 시간이 확보되며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배낭을 메거나 걸을 필요도 없다. 홀로 여행중인가 하는 착각이 들 만큼 맘에 드는 순간이다.
짬을 내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행이 끝나고 나면 지금의 이런 생각들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다. 모든 걸 새까맣게 잊고 맹렬하게 아이들 방학숙제를 점검하고 뭐해먹을지를 걱정하며 여행 동안 쉬었던 학원들에 연락을 드려 언제부터 다시 아이들을 보낼지를 상의해야할 것이다. 아무리 떠올려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고, 그냥 그렇게 이번 여행은 수천장의 사진들로만 남겨질 것이다. 그 사진들마저 핸드폰 갤러리나 컴퓨터 어느 폴더 쯤에 잠자고 있다가 몇 년 후쯤엔 없어져버릴 게 또 뻔하다.
부족한 글이지만 끊임없이 기록으로 남기기를 택했다. 퇴고하지 않은 글을 이 곳에 함부로 이렇게 세상에 내어놓는다는게 퍽 찝찝하지만 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일은 무조건 하는게 정답이다.
하는게 좋다. 잘하지 않아도 좋으니 하는게 더 좋다. 잘하려고 제대로 하려고 미루다가 못하게 되는 것보다, 서툴게 지금 하는게 백배 좋은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