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때까지 받고 싶은 단 하나의 서비스
여행이 주는 큰 기쁨이 몇 가지 있는데
단연 최고는 조식부페다.
눈치챘는가는 모르겠지만 뼛속까지 촌사람이다. 고등학교까지는 충북 제천에서 다녔고, 대학교는 강원도 춘천, 첫 발령은 경기도 평택의 어느 외곽의 초등학교, 신혼집은 경기도 여주였고, 지금은 용인시민이다. 촌사람으로 자라 지금까지도 서울 생활은 못 해봤다. 아이러니한건 내 이름에 들어있는 '경'자는 무려 '서울 경'자다. 이름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인데 어쩌다 내 이름에 들어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토록 소망하는 서울살이 한 번 못해보고 있는지.
조식부페를 처음 먹어본게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확실한건 대학 졸업 후라는거. 충격적이었다. 여기가 천국이었다. 밥보다 빵을 좋아하고 아침에는 식욕이 그닥 시원찮은 내게 빵과 시리얼과 과일이 예쁘게 늘어서있는 식당은 입가에 미소를 환하게 했다.
아침에 입맛 없단 얘기는 비밀로 해야할만큼 폭발적인 양을 먹게 된다. 조식부페를 먹게 되는 날이면 전날 저녁부터 설레어 온다. 이 호텔은 조식이 어떠니 하는 후기는 관심이 없다. 난 그냥 아침을 그렇게 예쁘게 차려놓고 마음껏 먹으라고 해준다는것 자체가 행복하고 설렌다. 촌사람인게 딱 티가 난다.
조식부페에서 이해못할 사람들이 몇 있는데
첫째, 커피에 식빵 한 조각 먹고 일어나는 사람. 한국인들 중엔 드물다. 해외여행 중에 마주치는 혼자 내려와서 이러구 가는 남자들이 가끔 있다. 내 남편이면 가만 안둔다. 이 호텔 숙박비에 이 음식값이 포함되어 있으니 조금 더 먹고 본전을 뽑으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저 사람이 덜 먹은 만큼 내가 더 먹어줘야 할 것도 같다. 핑게다. 그 사람 없이도 나는 충분히 많이 먹는다.
둘째, 졸리다고 조식 시간을 놓치고 쉬는 사람. 이 사람이 더 나쁜다. 잠은 집에 가서 자도 되고, 죽어서 자도 되는데, 세수 안하고 이 안 닦고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려가면 되는데 거길 안 가고 침대에 누워있다니. 아파서도 아니고 바빠서도 아니고 잠 때문에 무려 조식부페를 포기하다니. 이건 진짜 반칙이다. 혼나야한다.
셋째, 다양한 종류의 빵들 사이에서 굳이 밥이랑 국이랑 반찬 먹고 있는 사람. 삼시세끼 먹는 밥이 지겹지도 않은가보다. 주로 나보다는 어른들 중 이런 분들이 많은데, 밥과 국, 각종 김치 종류들을 제대로 세팅해놓고 집에서이 아침식사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묵묵히 즐기신다. 빵이나 치즈, 버터, 잼, 시리얼은 쳐다도 안보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왕 이런 서비스를 받게 된거, 평소에 못 드셔본 것도 좀 시도해보시면 좋을텐데 말이다.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며, 웃자고 쓴 얘기지 누구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다. 가볍게 허기를 채우라는 의미의 조식부페에서 음식을 다섯 접시도 넘게 먹어치우고, 욕심부리며 담아온 것들을 결국 다 못먹어 남기고, 눈을 피해 담아 나가기도 하는 나야말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비싸기만 하고 공동욕실과 화장실까지 사용해야했던 인터라켄의 산장숙소의 유일한 기쁨은 조식 시간이었다. 치즈가 유명한 나라임에 분명한 증거들을 확인하는 내겐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살찌고 비싸기만 하여 치즈를 그닥 즐기지 않았다.
스위스의 조식 부페에서 치즈를 발견하고는 그간 해소못한 치즈 욕심을 한껏 부려버렸다. 동그란 빵의 배를 갈라 세 장의 치즈와 햄을 넣고 버터를 양쪽으로 듬뿍 발랐다. 한 입 먹어보니 딱 좋았는데 두 입부터 느끼해진다. 토마토를 넣는다. 그래도 느끼하다. 딸기잼으로 나만의 최고느끼 샌드위치를 완성시킨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왔던 숙소들을 다시 점검하고 급하게 변경하게 되었다. 로마의 폭염에 겁을 먹고, 에어컨이 잘 되어 있다는 숙소들로 다시 알아봤다. 5층을 걸어올라 갔던 에어컨 없는 숙소에 누워 눈 빠지게 검색해냈다.
한국에서 출발했을 땐 분명 매일 아침 식사는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려는 마음이었는데 막상 여행이 시작되자 '누가 차려주는 아침식사'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에어컨 핑게로 숙소를 다시 알아보면서 가장 열심히 체크한건 '조식포함'해서 얼마인지였다. 이런 갈대같은 여자 마음.
그래서 난 오늘, 밀라노 중앙역 앞의 어느 숙소에서 아이들의 늦잠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들은 좀처럼 일어날 마음이 없고 아홉시가 지나 난 많이 배고프지만 하나도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다.
저 아래 식당에는 날 위해 '누가 차려놓은' 맛난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죽을 때까지 단 하나의 서비스만 골라 그것만 받을 수 있다면 - 아무도 이런 제안은 하지 않겠지만 - 답은 하나다. 고민할 이유가 없다.
이은경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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