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 번 가보시라
이것만큼 실물이 더 나은 건축물이 드물다. 대부분의 이름난 건축물들은 실물보다는 사진 속에서의 모습이 훨씬 아름답다. 그래서 막상 실물 앞에 서서 허망해지기도 하는데, 피사의 사탑은 압도적인 예외 경우다.
오늘 찍은 사진들도 역시나 엉망이다.
사진만 봐왔던 남편은 굳이 피사에 가자고 고집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고 자동차 뒷자리에서 졸고 있던 아이들도 느린 걸음으로 사탑을 향했다.
그런데 난 자신이 있었다. 실물을 보면 모두 만족스러워할 거라는걸.
예스!
사탑 앞에 선 가족들 모두 발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기대 이상이며, 생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가들과 함께.
아, 가장 중요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기울어져 있어 놀랍다는 평이 오갔다. 나 역시 놀란건, 아무리 기분 탓이라지만 13년 전에 왔을 때보다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오.
마이.
갓.
실제로 일년에 일센치씩 기울고 있다는게 믿어지는 순간이었다.
13년 후에 꼭 다시 와서 확인해보리라는 다짐을 해봤다. 그 땐 내가 50대가 될텐데, 누구와 어떤 모습으로 피사를 다시 찾을지. 정말 다시 찾게 될지.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건 정말 지금보다 나중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을지이다.
셀카봉을 이용해 훈훈하고 짧게 일정을 마무리하고 발을 돌렸다. 사탑 위를 오르는건 어떨까 했지만 보통 아닌 여름 날씨에 두 시간 넘게 기다려야 입장이 가능하다 하니 우리에겐 맞지 않는 시도다.
아이들과의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내려놓게 만든다.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올라가 낙하 실험을 했다는 바로 그 곳을 눈앞에 두고도 발을 돌려야 하며, 샹제리제 거리의 루이비통 본점 앞을 거닐면서도 차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불만이라면 불만일 수 있겠다. 나는야 명품이라면, 쇼핑이라면 눈이 번쩍 띄이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줌마니까.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그것 역시 별건 아니었다. 사탑에 올라가 갈릴레이가 했던 것처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거나 루이비통 매장에서 지갑이라도 하나 건져 나왔다면 더 뿌듯하고 즐거운 마음이 분명 들었겠지만 기다리느라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는 마음이 보나마나 불편했을텐데 그럴 일 없어 좋다.
욕심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출발한 여행이지만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내 욕심에 눈이 멀어지기도 한다. 그럴때마다 또 마음을 다진다. 통통한 두 다리로 열심히 유럽의 거리를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만으로 감사하기로. 아프다고 피곤하다고 졸리다고 징징하면서도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리면 이내 또 웃어보이는 아이들만으로 행복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