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샘난다 샘나.
고정관념을 바꾸기가 이렇게 힘들다.
중국사람을 좀 우습게 생각했었다. 우습다는건, 음. 여전히 그들은 십수년전의 조금은 미개하고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의 교양없고 매너없는 단체 여행객,
한국으로 여행오는 그들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그런 모습이었다. 그들이 명동의 화장품샵에서 쓸어담아가는 화장품들을 보며 입이 딱 벌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썩 그렇게 대단해 보이진 않았다. 그까짓 저렴이 화장품 좀 많이 사간다고 퍽이나 부유해보이거나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았다. 내 안의 고정관념은 단단하고 강했다. 왠만해선 무너지거나 달라지지 않은채로 쭉 그렇게 살 것 같았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완전히 달라졌다.
그들이 달라졌고, 나도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고정관념이 달라졌다.
그들이 달라졌던 건 이미 오래됐었던듯.
나는 이제서야 고정관념을 달리했다.
서유럽의 중심지에서 만난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분명 아니었다. 더 정확히 짚자면 예전엔 서유럽 어디에도 그들이 없었다. 있었는데 달라진게 아니고, 그들은 그 곳 어디에도 분명히 없었단 말이다.
13년전 여행에서 현지인들이 나를 보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Japanese?" 였다.
혹은
"곤니찌와"
당연하게도 일본인이었다. 나는.
"Korean"이며 "안녕하세요"임을
말하면서 느껴지는 씁쓸함. 동양인이면 일본인인줄 아는 그들에게 혼자 삐쳤었다.
그 몇 년 사이,
파리의 에펠탑과 로마의 콜로세움은 벽돌 하나도 더 부시거나 쌓지 않은채 그대로 그 모습이었지만 그것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달라져 있었다.
지나다 말을 섞게 된 그들은
"Chinese"냐고 물었고, "니하오"라며 반가운 척을 했다. 나는 하나도 안 반가웠다.
도시마다 중심쇼핑상가와 명품샵에는 그들이 그득했고 그들은 대부분 구경으로 그치지 않았다. 꼭 무언가를 사들고서야 그 가게를 나섰다. 환영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줄을 서야만 입장할 수 있는 유명한 박물관과 성당에는 어김없이 많은 그들이 가족들과 시끌벅적 여행에 들떠 있었고, 아주 어린 아가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어르신도 중국말을 하고 있었다. 중국사람들이 유럽마저도 싹쓸이하려나보다.
그들이 부러운건 펑펑 써대는 돈만이 아니었다. 돈은 분명 부러웠다. 내가 구경만 하고 침을 삼키고 나올때, 양손에 쇼핑백을 가득 든 중국사람들은 관광지 어디나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하나 더 부러웠던건 그들의 영어실력이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유창하고 부드러운 발음과 회화실력이 돋보였다. 모두 그랬던 건 아니지만, 꽤 연세가 높으신 분들도 영어로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젊은이들만의 언어인듯한 느낌을 주는 한국인들의 영어와 슬쩍 비교가 됐다.
언제 이렇게 똑똑해진걸까. 원래 그랬는데 나만 몰랐던걸까.
몽마르뜨 언덕의 쾰른 성당 앞에서 두 커플이 사이좋게 무려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 부자들의 스케일은 역시 남달랐다. 꽤 여러명의 스탭들을 동원하여 행복하고 무사히 촬영을 해나가고 있는 중국의 젊은 남녀들은 적어도 나에겐 꽤 어색했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돈과 여유가 낯설었다. 초등학생이던 꼬맹이가 어깨 떡 벌어진 대학생이 되고 나서 다시 만나면 이런 느낌이 들까.
유럽 어디에서도 만나기도 힘들었던 중국사람을 이제는 한국인보다, 일본인보다 더 많이 마주치고 있는 상황이 어색하고 샘났다. 유럽 여행 자체가 부의 상징이라거나 성공의 지표가 아닌데, 한국이나 중국이 아닌 이 먼 땅에서 마주치는 그들을 보는게 나는 질투가 났다.
어쩌다 만나는 일본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당신들도 그러냐고. 솔직히 중국이 부럽지 않냐고. 샘나지 않냐고. 그렇게 많던 너네 일본사람 지금 다 어디 갔냐고. 너네 정말 여행다닐 여유도 없을만큼 요즘 좀 어렵냐고.
부질없다.
뭐하는 짓인가.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말인데,
그 때 쾰른 성당 앞의 그 젊은 커플들이 중국인이 아닌 국적모를 서양인들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심술 부리지 않고 진심으로 그들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예쁘게 눈부신 그들의 모습을 찰칵찰칵 담았을거였다.
샘이 나고 심술이 나서
저렇게 어둡게 대충 한 장 찍고 말았다.
속 좁은 인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