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자로서의 사명
폭염 핑게로, 아이들 핑게로, 볼게 많은 도시라는 핑게로!
로마에서 <일일가이드투어>를 신청했다.
여행의 후반으로 갈수록 체력은 바닥나고 있었고, 입이 떡 벌어지던 도시의 박물관과 성당, 거리의 풍경은 식상하고 무디어졌다. 그런 우리에게 시원한 버스로 데려다주며 설명까지 해준다는 투어 프로그램은 솔깃했다. 일정을 조정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이 그저 맡겨버리면 된다는게 깃발 든 내 맘을 편케 해주었다. 이래서 다들 패키지 여행을 가려는구나.
로마의 얼굴, 로마의 심장이라는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카타콤베, 뜨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 이름이 가물한 각종 광장들까지. <봐야할> 대부분의 것들이 투어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고 촉박히 따라다니며 하루에 숙제를 마칠 수 있었다.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는 줄도 몰랐던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졸음이 깜빡거리는 버스 안에서 도착했다고 내리라는데 순간 갈등. 한 타임 쉴까. 버스에서 마저 잠을 청하며 쉬고 싶은데. 아이들의 성화에 따라 내렸는데 그 곳은 참 우연히도 사도바울이 순교를 당했던 곳이었다. 그 곳을 성당으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는 곳이었다.
사도바울.
그가 로마에서 핍박을 받으며 전도를 했고 많은 성경을 기록했던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성경 속의 많은 분들처럼 내게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분이었다. 워낙 본받을 만한 분들이 많다. 성경말씀 속에는.
그랬던 그가 이 잠깐의 투어로 내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기록하는 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던 그의 삶에 관한 짧은 설명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약성경의 많은 책을 사도바울이 기록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 사실이 감사하거나 큰 의미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느 사도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주님을 전하다가 핍박받고 순교하고.. 평범하게 여겼었나보다.
바울이 성경을 열심으로 기록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이 말씀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다른 형태로 기록했을 수는 있으나 지금의 이 모습은 절대 아닐 것이다. 바울은 앉아서 기록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전도 여행을 다니며 최선으로 주님을 전했고, 그 때문에 감옥 생활도 했고 결국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당했다. 결코 열심으로 기록하기에 괜찮은 조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지만 묵상없는 기록들은 결국 내게 아무 의미도 없었음을 이제 알았다.
사도바울이 주님 주신 사명대로 <기록하는 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죽어갔음이 이번 여행의 어떤 순간보다도 내 맘을 흔들고 또렷하게 만들었다.
글을 쓸 때마다 고민을 했다. 왜 쓰는가, 무엇을 위해 쓰는가, 써서 뭐할 것이며, 안 쓰면 뭘 할 것인가. 쓰는 행위 자체를 기뻐하는가, 써서 얻게 되는 이익들에 기뻐하려는것인가. 어느 하나 확신이 없었다.
<기록하는 자>로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어떤 기록을 남기게 될지, 과연 주님께서 내게 어떤 기록을 남기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알려주실 거라는 분명한 믿음이 생겼다. 알게 될 때까지 묵묵히 기록하련다. 매일 기록하며 더 분명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기에 힘쓸란다.
하나님께서 원하실 어떤 '기록'을 위해 준비해야겠다.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야한다. 지금은 분명히 보이지 않지만 보여주실 것을 믿고 준비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