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결산

이 정도면 짝짝짝 잘했어요

by 이은경


17박의 유럽여행을 준비한다고 하면, 혹은 다녀왔다고 하면 많은 질문과 부러움이 쏟아지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얼마 들었냐>다.

제주 3박 4일이라거나,

발리 7박 8일 같은 예상 가능한 여행과는 조금 다르긴 했다.


나도 많이 궁금했었다. 과연 얼마가 들까. 예산과 결산에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과연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을까. 어느 항목이 초과될지 남을지 막연히 머릿 속으로만 생각했었다. 실제로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는 오히려 꿈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머리속으로 너무 많이 그려왔던 때문이다. 인터라켄에서 산악열차표를 구입하던 때나, 어린이들은 무료이고 남편과 나는 국제교사증으로 온가족이 무료입장을 했던 루브르에서. 미리 알아간 정보들이 사실임을 확인한 순간 느껴지는 묘한 기분 좋음이 있다.


당황했다. 매일 당황했다. 매일 예산을 초과했다. 대단한 식당에 갔거나 예정에 없던 마차에 덜컥 올라서지도 않았다. 명품샵에서 결제를 해버리지도 않았고, 부모님 선물을 과하게 사지도 않았다. 예정대로 두 끼의 식사를 사먹었고, 티켓을 사서 지하철을 탔으며, 목이 말라 물 몇 병을 샀다. 걷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스크림을 선물해줬고, 지나다 보이는 아이들용 선글라스를 하나씩 샀는데. 그냥 그런 소소한 지출들이었는데. 당황스러웠다.


여행가계부 어플에 매일의 지출을 기록했는데, 한 번도 예정했던 20만원인 적이 없었다. 훌쩍, 아주아주 훌쩍 넘어버린 그 날의 지출을 하나씩 짚어가며 도대체 뭐한다고 합계가 그리 나왔는지 혀를 찼다. 기차를 타고 이동을 했거나 렌트카를 빌린 날, 선물로 드릴 수분크림을 샀던 날들은 기록하는 시간이 속상해질 정도였다. 이게 아닌데.


돈을 많이 쓴게 아니라, 물가가 과했다. 예상보다 높은 물가에 속이 상했다. 물 한 병도, 지하철 티켓도 모두 예상보다 높았다.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던 내 탓일거다.


뭐 엄청 맛있는 고급 레스토랑과 고급 호텔들을 다니며 쓴 돈이 아니라 허무해졌다. 이 여행을 위해 3년간 적금을 들었고, 돌아가면 남은 카드빚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까짓 햄버거 먹고 물 사먹느라 펑펑 돈이 나가고 있다는게 진심으로 속상했다. 힘들게 마련한 돈이 술술 사라져가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이런 허무한 일이.


그런 마음으로 다녔으니 그래도 선방했다. 네 개 먹을 것을 두 개만 먹었고, 택시 탈까 싶은 순간에 지하철을 검색했다. 덕분에 술술 사라지던 돈들을 조금은 잡아냈다. 조금이라도 그 자리에 세워 하루 정도는 지갑안에 묵어둘 수 있었다. 비록 곧 빠져나가버렸지만 오늘 나갈 뻔한 돈을 내일, 그 다음날로 미루는 것으로 재정담당 아줌마는 만족해했다. 그런 기쁨으로 조금 더 걷고, 간식거리는 조금 덜 먹었다.


1500만원을 예상했었는데, 1300만원 정도 썼다. 어쩌면 내 꼼꼼치 못한 성격 탓에 미처 기록되지 못한 지출도 있을테니 실제로는 그보다는 많겠다.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이 정도면 됐다.

허튼 돈 안 쓰려 애썼고, 필요한데는 꼭 쓰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 결과다.

갑자기 탈이 나서 병원비로 나간 돈 없고, 아주 갑자기 충동이 일어나 매장에 들어가 가방을 사들고 나오지 않았으니 잘 했다.


이제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유럽에 술술 뿌리고 온 돈들 갚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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