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는 살고 있습니다

30대 후반 여자
아이 둘 딸린 엄마
한 때 능력 있다는 얘기 좀 들었던.
그러나
다 옛날 얘기
한 때는 한 때일 뿐
지금부터
하루하루
아슬아슬
살아가는
복직한 아줌마의 얘기를 시작합니다.
월급받는 여자가 되면 턱턱 이것저것 잘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바쁜 여자가 되면 쿨하게 아침밥은 시리얼로 떼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지 못한다는 얘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직 일주일째
<남은 반찬 대잔치> 중이다.
반찬 만들 여유도, 반찬 사러갈 힘도, 반찬 재료 준비할 기분도.
아무것도 없이 너덜너덜해져버렸다.
단 일주일만에.
겨우 단 일주일만에.
그런데 먹고는 살아야한다.
딸린 식구가 많습니다.
엄마의 출근을 쿨하게 받아들여주긴 했지만 아침을 대충 먹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닌가보다.
집에 있는 동안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열심히 아침밥을 차려댔었다. 아침밥 예찬론자가 되어 아침밥을 굶고 등교하면 어떻게 되는지 동네 아줌마들에게 설교를 했었다. 내가 엎지른 물이다.
물론, 그 땐 만족스러웠다.
내가 여유있을 때 정성껏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토실토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는 뿌듯함은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과는 또다른 만족이 분명히 있었다.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은 착각 속에 행복했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푸짐한 아침밥상에 완전히 적응을 해버렸고,
아침에 그렇게도 입맛 없고 입 짧았던 큰아이마저 그 아침밥상을 기다리게 되었다.
엄마 없이 보내는 오후 시간도 미안해 죽겠는데, 아침밥상까지 허전해지면 나는 정말 너무 미안해질 것 같았다. 공감능력 제로인 아들들은 엄마의 바쁜 아침 사정과 상관없이 눈만 뜨면 밥과 고기를 찾고,
소가 눈뜨면 여물을 먹듯 마구 먹어대는게 현실이다.
사실, 아이들을 위한다는건 핑게일 수 있겠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싶다. 제대로 맛있게 먹고 싶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싶다. 이게 더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서 열심히 아침밥을 준비했다. 출근해보니 말도 안되게 허기가 졌다.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배가 훅 꺼졌다.
점심을 고봉밥으로 먹어치웠다.
아침밥 없는 출근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있는 거, 없는 거 오만가지 반찬들로 부조화스럽게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먹었던 아침 식사들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새로 반찬을 만들 엄두가 안나니 진정한 의미의 <냉장고 파먹기>가 시작된 것이다.
냉장실, 냉동실을 몇 번씩 열었다 닫으며 저 안쪽에 있는 반찬들을 화석 발굴하듯 찬찬히 살피며 내놓았다.
혹시나 싶어 꼼꼼히 들여다본 유적지에서 귀한 보물이 발견되듯
황무지같던 냉동실 구석에서 잘 재워진 돈까스 한 덩이를 발견하는 기쁨이란.
오뎅국에 오뎅 볶음을 함께 먹기도 했고, 냉동실의 떡을 녹여 반찬인 척 슬쩍 올려놓기도 했다.
멀지도 않은 마트에 잠시 다녀오기가 천근만근 힘들어, 있는 것들로 한 상을 차리려니 없던 지혜가 샘솟고
이 기술이 일주일만에 진화해 며칠새 요리 실력이 늘기까지 했다. 믿거나 말거나
찬장에서 참치 통조림을 찾아낸 것, 냉동실에서 소고기 갈은 것 한 덩이를 발견한 것이
어제의 가장 큰 기쁨이었을 정도이니 마트 못가는 내 신세가 이렇다.
배달로 안되는게 없는 시대에 이렇게 살고 있다니.
왜 배달을 시키지 않으냐고 물으면 음. 마땅히 대답을 못 찾겠다. 그냥 나는 마트 배달은 별로 즐기지 않는다.
이렇게 있는 반찬 없애가며 하루하루 아슬하게 차려내는 밥상도 나름의 재미가 있더라.
있음 좋고, 없으면 없는대로 또 그럭저럭 한 끼가 해결되니 복직하면 펑펑 좀 쓰고 싶었던 다짐은 어디 가고,
본의아니게 또 이렇게 살고 있다.
글을 쓰며 한 번 더 냉장고를 묵상해보자면,
아직 감자가 10개 정도 남아있고, 지난 주에 사둔 애호박도 하나 남아있다.
냉동 떡갈비도 한 봉지 있고, 포도랑 복숭아도 좀 남아있다.
불고기용 한우도 한 덩이 있는 걸로 확인되었고, 양파와 대파는 충분하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내일 아침엔 감자를 졸이고, 소고기국을 끓일까 싶다. 아, 무가 없구나. 그럼 패쓰.
국물이 충분한 불고기로 결정.
땅땅땅.
이렇게 또 남은 반찬 대잔치의 하루가 무사히 넘어갑니다.
하루하루
아슬아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