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소개

어른둘, 아이둘의 유럽여행일정을 소개합니다.

by 이은경

워낙 다양한 일정들이 가능한 지역이라 그런듯 했다.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초등 2,3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은 도대체 어떤 일정으로 진행이 될지 궁금하기도 하겠다. 나라도 궁금했을 것 같다. 20대 아가씨들의 쇼핑과 화보 촬영 위주의 일정이랄까, 어르신들의 패키지 일정과는 다른, 고려해야할 것이 많으면서도 한 편, 살짝 교육적인 부분도 신경써야 할 것 같고, 어른의 취향도, 아이들의 취향도 모두 생각해야할테니 말이다.


한 마디로.

대충 짰다.

고려해야할 조건이 너무 많으면 이런 일이 생긴다.


유럽이 두 번째인 나에게도 처음인 도시가 필요했고, 인생숙원이던 유럽여행을 드디어 떠나는 남편을 위한 멋드러진 건축물들도 빠질 수 없었다. 욕심을 부리기엔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어디서 주워들은건 있어가지고 건축물 이름 몇 개를 대면서 그건 꼭 보고 싶다고도 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빡빡한 일정이 보나마나 무리일 것이고, 남편을 생각하면 하나라도 더 보고 와야지 싶다. 나? 나까지 고려할 상황이 아니기에 조용히 일단 내 욕심은공식 일정에서 빼두었다. 난 그냥 이렇게 함께 한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내심 마음을 접고 있었다.


짧은 여름방학을 최대한 알뜰하게 쓰기 위해 18박 19일로 결정했고, 밤 비행기인 덕분에 남편은 떠나는 날까지도 출근을 했다가 퇴근 후 짐을 챙겨 공항으로 나서야 했다. 가장들의 슬픈 사연이겠다. 귀국한 다음 날 바로 출근은 당연한 것이었고, 귀국한지 여덟 시간만에 큰 아이는 예정되었던 축구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감수하기로 하고 정한 나름 긴 여정이었다.


제법 긴 여정이니 4개국 정도는 돌아보고 싶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학교 공부로 치면 국, 영, 수에 해당하는 주요 3개국을 넣었는데 자꾸 스페인이 눈에 밟혔다. 첫 유럽에서 스페인데 대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르셀로나의 인상이 너무도 좋았던 탓이었다. 꼭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스페인을 넣을지 뺄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유럽에 몇 번 다녀온 남동생에게 물었다. 가차없이 깔끔한 답을 주었다.

<무리하지 마라>


때로는 하루 종일 숙소에서만 머무는 날이 필요할 만큼 생각보다 지치고 힘든 여행이 될테니 굳이 무리해서 스페인을 추가하며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말라는 것이었다. 똑똑한 놈. 정답이었다. 어른들끼리 나서도 여행인지 고행인지 싶은게 유럽여행이었다. 첫 유럽에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이제야 퍼뜩 생각이 난 것이었다. 그렇지, 힘든 곳이지. 이 여행은 쉼이 아니고, 일종의 노동이 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어쨌든 기막힌 충고 덕분에 스페인은 미련없이 일정에서 사라졌고, 최고의 선택으로 기억되고 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세 나라를 두고 넷이 앉아 고민을 했다. 어느 나라에 며칠 정도 머물지, 나라 안에서도 어떤 도시에 꼭 가고 싶고, 얼마나 머물고 싶은지. 그게 있어야 일정의 윤관이 잡힐텐데. 다행스럽게도 세 남자의 취향이 맞아떨어져, 초반 일주일을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머물고, 그 후의 열흘 정도를 이탈리아 여행으로 할애하기도 했다. 로마제국의 역사를 충분히 보고 느끼고 싶다나 어쨌다나. 웃음이 푹 나왔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원하는대로 가장 긴 시간을 이탈리아에 머물게 되었다. 결과는 물론 만족이었다.


8월 1일 - 5일 프랑스 파리

8월 6일 - 8일 스위스 인터라켄

8월 9일 - 18일 이탈리아 (밀라노-피렌체-나폴리-로마)


적당히 널널하면서 원하던 이탈리아를 충분히 볼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됐다. 사실, 이 일정을 확정짓느라 몇주를 고민했었다. 아는게 병이라고, 내게도 첫 여행이었다면 차라리 수없이 검색해가며 정보를 찾아 보았을텐데 무려 13년 전에 갔던 것도 기억 난다며 그 희미한 기억을 더듬더듬하여 일정을 정하려니 검색과 기억이 섞여버려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고민이 심해질 땐 남편에게 물었다.

"피렌체에 이틀 묵고 싶어, 사흘 묵고 싶어?"

"피렌체 좋아?"

"응 좋아. 아름다워."

"그럼 3일"


이런 말같지 않은 대화가 몇 번 오간 뒤로는 아예 말을 꺼내질 않고 혼자 끙끙 앓기 시작했다. 어떤 선택도 단 한 번일 수 밖에 없고, 가족들 모두에게 처음일 유럽이라는 땅에 대해 최대한 즐겁고 행복한 추억만 남겨주고 싶은 과한 욕심이 일으킨 결과였다. 괜한 욕심이었다. 우리가 무엇을 더 보고 덜 보고, 어디에 더 머물고 덜 머물고는 전체 여행을 생각할 때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는데 그것 때문에 에너지와 감정을 소비해버렸으니, 바보같다. 모든 바보같다는 결론은 지나고 나야 내려지는 법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지나고보니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하룻밤만 머물고 후다닥 다시 짐을 싸야했던 밀라노는 안 가도 됐을 것 같았고, 스위스 여행에서 인터라켄 말고 루체른에 갔다면 내게 조금 더 즐거웠을 것도 같다. 밀라노와 피렌체의 일정을 줄여 베네치아에 들렀다면 좋았을 것도 같고, 나폴리에서만 머물지 말고 이왕 들어간 김에 카프리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언제나 지나고 보면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셋은 여전히 전혀 모르고 있다. 나의 후회와 아쉬움을.

그들이 훗날 다시 유럽을 찾는다면, 지금 나의 아쉬움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까.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도 있었다는걸 깨닫게 될까. 영영 깨닫지 못한 채 아내가, 엄마가 최고의 일정을 계획했었고 덕분에 엄청나게 알차고 행복한 여행이었다고만 기억한다면 소원이 없겠다. 후회와 아쉬움은 나만 아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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