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온다고 고민하며 온 밤을 설쳐대던 지난 휴직 시절을 그리워하며
워낙 잠이 많고 달게 자고 깊게 잘 자던 사람인데 자려고만 누우면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쉬 들지를 못했었다. 세상 편하던 휴직 시절에는.
편하기만 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절대.
아이들을 키우며 끝없이 많아지는 고민들 - 학교도 고민이고, 사교육도 고민이고, 공부를 잘해도 고민이고, 못해도 고민이었다. 친구가 많아도 고민이고, 없어도 고민이고, 키가 커도 고민이고, 살이 쪄도 고민이었다. 아이들 문제만 고민이냐 절대 그렇지 않다. 고민이 직업인 나같은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 때문에 또 고민을 한다. 저 엄마가 어제 반모임에서 했던 그 말의 진짜 속내는 뭘까를 고민하고, 나랑 친한 줄 알았던 어떤 엄마가 다른 엄마가 웃으며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엄마들 모임에 어디까지 나가고 안나갈지도 결정해야 했고, 모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할지도 미리미리 고민하지 않으면 막상 당황하기 일쑤. 아이들이 같이 놀고 싶다고 성화인데, 우리 집에서 놀게 해야할지 놀이터에서 만날지, 놀이터에서 놀기로 약속했는데 미세먼지가 심하다면 그 땐 키즈까페로 옮겨야 할지 쿨하게 우리집으로초대를 해야할지. 반모임에 간단한 간식거리를 준비해오라는데 아이들 먹을 것을 준비할지 엄마들이 좋아할만한 것으로 준비할지. 별게 다 고민이다 싶지만 각자 하나씩 뜯어보면 나에게는 더없이 심각한 고민거리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잠이 안왔다.
나는 신경쓸 일이 너무도 많았다.
자려고 누우면 생각할 일이 정말 많았고, 결정할 것도 무수히 많았다.
도저히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내가 이 고민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반드시 오늘 잠들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잠이 오지 않길래 내가 요즘 스트레스가 심한가보다. 하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겼다.
복직을 했고, 빡쎈 출근 끝에 병 하나를 치료했으니 이제 나는 뒤통수만 대면 언제든 바로 꿈을 꿀 수 있는 꿈의 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까. 이렇게 신기한 일이 있다니. 저녁밥을 먹기 직전에도 잠에 들 수 있고, 먹은 후는 물론이며, 저녁 8시에도 잠들 수 있고, 9시에도 문제없다. 말도 안되는 시간에도 눈만 감으면 뭐든 다 가능했다.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두세시까지 설치다 간신히 잠들어놓고도 새벽 다섯시에 다시 눈이 떠져버려 하루를 피곤하고 찌뿌둥하게 보내던 나였다. 그런 나였다는게 믿어지지 않는 지금의 나다.
안해도 될 고민과 걱정까지 있는 힘껏 모두 내 것인양 온 몸으로 머리로 끌어안고 살던 나였는데, 그 고민들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여유가 없어져 버린 지금이 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로 고민할 시간도, 엄마들과의 미묘한 신경전에 휘말릴 일도 없어져버렸다. 생활은 단순하고도 피곤해졌고, 고민 없이 단숨에 잠들어 버리는, 내가 평소에 이해하지 못했던 남자들의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왠만한 일들은 그다지 중요하거나 걱정거리가 아니라는 분류를 하기 시작했고, 눈앞의 밥과 밤의 숙면이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들은?'
'밥 줘'
'자자'
이 세마디면 그 날의 대화가 충분해져버린 무뚝뚝한 경상도 남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그것 때문에 서운해하는 아내들의 마음의 실체는 무엇인지.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하게 된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음에 감사해야하는 건가. 머리만 대면 코를 골던 모습도 이해하게 되었고, 퇴근했는데 바로 밥이 차려져 있지 않으면 당장 냉장고를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 성급함도 이제 내 모습이 되었다. (물론 나는 내가 직접 차려야 한다는 큰 차이가 있긴 하다)
복직 열흘째.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야 자려고 누워 남편과 대화도 좀 나누고, 아이들 걱정도 좀 하며, 이 사람 저 사람들이 했던 말도 떠올려가며 고민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그 날이 오는게 기다려지기도, 두려워지기도 한다. 불면증이 그립기도, 무섭기도 하다.
오늘밤은 또 몇 시부터 골아떨어질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