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장이 주는 위로와 행복
수천장의 사진을 담아 돌아왔다. 핸드폰의 용량을 텅 비우고 출발했는데, 유럽의 흔적들로 터질듯 하다. 행복하다. 내 핸드폰 사진앨범에 정보를 기억하기 위한 캡처나 사진이 아닌 부서질듯 예쁜 햇살과 밝게 웃는 가족의 모습들이 가득채워졌다. 그게 참 행복하다.
사진에는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스마트폰 하나 덜렁 들고 출발하진 않았을 텐데. 사진을 조금이라도 찍을 줄 안다거나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집에 있는 카메라를 챙겼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안그러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와 핸드폰 사진들을 보다보니 이제와 살짝 아쉬워진다. 핸드폰으로 막 눌러댄 사진들이 이 정도라면 오래된 모델이긴 하나 DSLR이 분명한 집구석을 지키고 있는 그 물건이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그것을 들고 갔었다면 '이 무거운 것을 괜히 들고왔다'며 또 후회를 했겠다. 도대체 내 인생의 후회는 언제쯤 마무리되는 것일까. 후회에도 마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만 좀 후회하고, 덜 후회할 수 있게 말이다.
여행 초반 며칠 동안은 아이들 모습, 내 셀카를 찍느라 바빴다. 그거 찍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아이들 챙기랴, 짐 챙기랴, 때마다 계산하고, 지갑 잘 챙겨들고 다니느라 손이 바빴다. 두 손이 모두 놀고 있는 시간이 드물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파리의 건조한 공기와 살랑이는 저녁 바람이 기분 좋아질 즈음이 되자 핸드폰 카메라 화면에 조금씩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꽃다발 가득한 파리의 건물들도 한다발 담았고, 한껏 자유로운 파리지앵들도 슬쩍슬쩍 찰칵. 거리의 까페들도 욕심이 났고, 한국보다 조금 더 파아란 하늘도 부러워 그냥 지나치질 못했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풍경 사진들이 조금씩 내 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물이 없는 사진은 잘 안 찍었었다. 풍경만으로 의미있고, 기분 좋은 그런 풍경은 내 주변에는 없는 듯했었다. 그렇게까지 아름답다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풍경은 없었다. 매일 보는 그 모습은 그냥 당연해보였고, 사진으로 남길 이유를 굳이 찾지 못했다. 그러지 않아도 항상 그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으니.
아이들은 달랐다. 지난 달에 찍은 사진과 어제 찍은 사진 속 아이들은 분명히 달랐다. 부쩍부쩍 커가는게 느껴지고, 사진으로 보면 더욱 확연했다. 기를 쓰고 아이들 사진을 찍었다. 제발 그만 좀 찍으라고 할 정도로 틈만 나면 아이들 앞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이 아가였던 시절, 스마트폰이 없어 부엌에 항상 카메라를 대기시켜 놓았었다. 언제든 바로 찍고 싶어 그랬다. 아이가 태어나면 서둘러 카메라를 장만하는 초보엄마아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며 따라했다.
여행지의 하늘이 더 푸르고 예뻐보이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여행지에서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있다. 열심히 걷는게 여행자의 마땅한 노동이기에 걷다가 걷다가 보면 분명히 다리가 아파온다. 어딘가 앉을 곳을 찾고 두리번거리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파란 하늘과 솜이불같은 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걸 놓칠 수 없어 사진으로 남기고, 그걸 본 사람들은 파리의 하늘이, 괌의 하늘이, 시드니의 하늘이 엄청나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이렇게 예쁜 하늘을 매일 볼 수 있는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웠다.
여행이 끝나고 출근을 했다. 체육 수업을 하러 운동장에 나가 오늘의 수업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외쳤다. '하늘 되게 예뻐요!' 다같이 바라본 하늘에 다같이 '와!'하며 탄성을 내뱉았다. 그 어떤 곳의 하늘보다 예쁜 하늘이 바로 나의 무심한 일상인 직장 바로 위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난 그 예쁜 하늘을 한 번도 올려다 보지 않은 무심한 직장인이었던 것이다. 더 예쁘고 높은 하늘은 내가 항상 있던 여기, 내 머리 위에도 있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운동장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향해 찰칵찰칵. 어색한 사진을 몇 장 찍어본다. 예쁜 하늘은 비행기를 타고 가야만 볼 수 있는게 아니었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