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한국인번개. 인터라켄 동역으로.
한국에서 눈만 뜨면 마주치던 한국인들을
먼 유럽 땅에서 여행자의 신분으로 마주친다는건 몇 가지 색다른 느낌이다.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않은 반갑다고 하기엔 좀 어색하고 쑥쓰러운.
20대 꽃청춘 시절엔 유럽여행에서 마주치는 한국인들이 내심 반가웠다.
조금더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배낭 여행하는 처지의 20대 남성이 많이 반가웠다. 그래서 한국인을 보면, 정확히 말해 20대 남성한국인과는 두런두런 쉽게도 가까워졌다.
가족이라는 동행이 있고, 더 이상 이성에 호기심 부릴 나이와 형편이 아닌 지금,
한국인은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인터라켄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알프스 최고 봉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융프라우호라는 곳으로 가려면 인터라켄이 필수다.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 융프라우호로 향하는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서 꼭 들려야하는 인터라켄 동역에는 이미 많은 한국인들로 북적거렸다.
얼마나 한국인들의 이용이 잦은 곳인지, 한국의 한 여행회사에서 발행한 한국어로 적힌 쿠폰을 내밀기만 해도 70프랑의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그 쿠폰으로 열차티켓을 구입한 사람에게는 정상에 있는 매점에서 컵라면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또 준다. 이런. 스위스 국민보다도 더 큰 할인율과 서비스인 듯하다. 최고다.
그렇게 한국인들이 많은 돈을 써주고 있는 곳이면서 한국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이 곳 인터라켄. 현실이 아닌 듯한 예쁜 집들과 눈덮힌 알프스 산맥까지.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스위스하면 알프스, 알프스하면 융프라우호, 융프라우호 하면 인터라켄. 공식대로 열심히 계획하고 움직였는데 아이들이 영 시큰둥하다. 팔팔하던 시절 이 곳을 오를 땐 한 번도 여정이 힘들다 느끼지 못했다. 기차가 직행이었었나보다고 기억하고 있을 만큼 열차를 타고 오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다시 보니 그 곳에 오르려면 세 대의 기차로 갈아타야하고 잠시 추우면 그만인 청년의 몸이 아닌 코감기인듯 아닌듯 경계에 아슬하게 걸쳐있는 아이들의 두꺼운 패딩을 챙겨야했다.
기차에서 꾸벅거리며 졸다가 다음 기차로 갈아탈 시간이 되면 좀비처럼 눈도 못 뜨고 따라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누구와 무엇을 위한 여행인가를 자꾸 되묻게 된다.
집에 가고 싶고, 숙소에 언제 가냐고 궁금해한다. 조금 더 큰 세상, 다른 세계,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내 욕심일 뿐이었을까.
아이들이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호하며 반짝였던 순간은 돌아오는 기차에 오르기 전, 공짜로 받은 컵라면 두 개를 네 식구가 나눠먹던 때이다. 알프스 산봉우리에서 신라면에 밥을 말아먹다니. 어쨌거나 이렇게 또 잊지못할 추억 하나를 추가했다.
알프스든 천왕봉이든 우리 동네 대지산이든 아이들에게는 그게 그다지 큰 의미도 추억도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번 가족여행을 강행했고 계획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자신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위로와 기쁨이라면 우리 네 식구 싸우지도 화내지도 않으며 이 먼 곳에서 손 꼭 잡고 건강히 잘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 그게 유일한 위로이고 다행이고 행복이다.
외국인들을 볼 때는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여행중인 한국인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더 궁금해진다. 그들은 어쩌다가 어떤 이유로 누구와 함께 무슨 돈으로 여기까지 와서 알프스 봉우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을까. 그들도 나처럼 행복할까.
많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