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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Jan 13. 2019

아침, 첫, 오줌

아침마다 새롭고 가볍고 고맙고. 오줌에 관한 짧은 이야기.

하루의 첫 오줌을 눌 때만 느낄 수 있는 유난한 상쾌함이 있다. 묵직했던 소변을 무심하게, 그러나 조금씩 점점 더 아랫배에 힘을 주고 정성을 들여 찬찬히 끝까지 빼낸다. 잠이 덜 깬 몸과 머리지만 방광은 홀가분해지고 기분도 산뜻해진다. 밤새 열심히 모였던 꽤 두둑한 소변이 8, 9시간 만에 아래를 향해 후르륵 빠져나가니 기분도 방광도 가볍다. 그리고 돌아서 컵을 찾아들고 하루의 첫 물을 천천히 마신다. 열심히 잠에 빠진 시간 동안 피로가 회복되고 뇌가 충전되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하지만 그 길고 긴 밤 시간 동안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한 목구멍은 텁텁하기만 하다. 너무 차갑지 않은 물을 쭈욱 들이켜 말라 있던 혀와 목구멍을 적신다. 제법 오랜만에 만난 연인의 반가움이 목구멍 깊숙이에서 반가워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난히 오줌을 잘 싸던 사람이다. 초등학생 시절 이불 여기저기에 지도를 그리는 일은 당연히 잦았고 날 닮은 여동생이랑 한 날 같은 이불을 풍덩 적신 적도 있다. 어른이 되면 이제 오줌은 그만 싸는 건 줄 알았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올바르게 보기 좋게 다듬어지고 괜찮아지는 건 줄 알았는데 적어도 난 그렇지 않았다. 보란 듯이 일 년에 한 번씩은 자다가 오줌을 쌌고 결혼을 하고 마흔이 다 된 지금도 사실 그렇다. 큰 아이 임신 막달에 들어선 어느 아침. 이불이 축축하게 젖어 있길래 말로만 듣던 양수가 터진 줄 알고 놀란 맘에 급하게 병원에 달려갔다. 아직 예정일이 남아있는데 벌써 양수가 터져서 어쩌냐며 걱정스런 눈물을 흘렸다. 몇 가지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양수는 아닙니다.”

“아니에요, 분명히 이불도 다 젖고 속옷도 완전히 다 젖어 있었단 말이에요.”

“네, 그렇지만 검사결과 양수의 성분은 아닙니다.”

“그럼 뭘까요? 왜 그렇게 젖었을까요?”

“.....................”


의사 선생님은 아무 말이 없으셨다. 침묵의 의미를 바로 눈치 챈 남편이 말없이 손을 잡아끌고 진료실을 나가자고 했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산모님께서 간밤에 오줌을 싸셨습니다.’라는 정확한 진단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나보다. 그 때까지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나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불안에 떨며 아이를 걱정했다. 양수가 터진 것 같은데 왜 의사는 저렇게 무심하게 구느냐며, 저 의사는 돌팔이인게 분명하다며. 남편은 말을 아꼈다. 서른 먹은 산모가 자다가 이불과 속옷에 오줌을 싸놓고는 양수가 터졌다고 호들갑 떨어대며 잘만 지내는 태아 걱정을 하고 있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며 강한 인내심으로 묵묵히 운전에 집중했다.


밤에만 싸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진단하자면 야뇨증은 아니다. 높은 곳에서 빙빙 돌다가 단숨에 내려오는 놀이기구를 타러 롯데월드에 간 적이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무서워 이가 딱딱 부딪쳤다. 비잉 돌던 기구가 멈추고 하나, 둘, 셋. 50미터를 단 몇 초만에 내리꽂는 기구에서 악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정신을 차리고 벨트를 풀고 보니 아래가 축축하다. 너무 무서워서 오줌 쌀 뻔했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데, 이건 농담이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이었나보다. 나의 경우엔 쌀 뻔한 게 아닌 실제로 쌌다는 게 좀 다를 뿐.


그렇다면 요즘도 해마다 오줌을 싸느냐고 궁금해하는 이가 있겠다. 그렇다. 사실 여전히 난 그렇다. 그리고 난 믿는다. 해마다 혹은 달마다 혹은 주마다 한 번쯤 이불에 지도를 그리는 어른들이 나 말고도 세상에 존재할 것이라는 걸. 그러기를 바란다. 친한 이들에게 가끔 실수하는 얘기를 하며 ‘나도 그런데’라는 답을 기대해 보지만 아직 단 한 명도 만나지지 않았다. 괜찮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라 믿는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뿐이라 믿는다.


그래서 난 아침의 첫 소변을 만날 때 별별 생각을 한다. 간밤에 실수하지 않았구나, 꽤 많은 양이 나오는데 어젯밤에 뭘 마셨더라, 이 많은 양을 실수하지 않고 참아가며 깊이 달게 잘 잤구나, 생각보다 방광의 용량이 크구나. 그런 별스런 생각들을 하며 첫 소변을 만나고 그런 것까지 관심 가져가며 신기한 하루를 보낸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매일 그럴 수는 절대 없지만 어쩌다 생각이 나는 아침, 시원스럽게 졸졸졸 떨어지는 소리에 문득 한 번, 어쩌다 한 번 오늘 아침 새로운 소변을 변기에서 만났음에 감사하게 된다. 변기물에 섞여가는 소변의 색이 지나치게 노랗지도 혹은 벌겋지도 않음에 다행스러워하며 말이다.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실실 새어 버리게 만드는 부족한 기능의 몸이지만 어떤가, 매일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 쯤, 운전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다가 아니라 재채기를 할 때 마다가 아니라 놀이기구를 탈 때 정도, 최근엔 줄넘기를 할 때만 귀엽게 살짝 새어 나오는 건데 뭐 어떤가. 몸은 씻으면 되고 옷은 빨면 되고.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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