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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Jan 13. 2019

그 곳에 가는 진짜 이유

헬스장에 가는 이유. 운동이 아닌 다른 이유. 

새벽에 눈을 떠 주섬주섬 헬스장을 향할 때가 있다. 물론 매일은 아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다. 잊지 않고 새벽 5시의 알람을 맞추지만 실제 온수매트의 뜨끈함을 박차고 일어나 헬스장에 도착하는 날은 주에 두 번쯤이나 될까. 가서는 또 어떠한가. 헬스장에서의 소극적인 움직임이 볼 만하다. 운동은 하지만 땀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하는 동작들이 슬슬 시작된다. 예를 들면, 런닝 머신의 스피드를 한결같이 5이상으로 올리지 않는 것, 어정쩡한 스피드의 걷기를 20분 정도 하고 나서는 딱히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휘휘 둘러보며 스트레칭 비슷한 것을 하다가 집에 오는 행동들이다. 스쿼트를 할 때가 있는데 늘 다섯 개 정도만 하면 그만하고 싶어지고, 그만하고 싶어지면 미련없이 그만 두고 돌아온다.  


헬스장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수건도 필요하지 않다. 닦을 땀이 없는 이유다. 괜히 헬스장 빨래만 늘리고 싶지 않아 손대지 않는다. 괜찮은 회원이다. 물론, 낸 돈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수건을 두세 개씩 써댈 수 있는 회원으로서의 권리를 포기했다. 증거는 또 있다. 반바지를 입지 않는 것. 결정적인 증거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땀을 내려면 반바지 차림은 기본일 텐데 추운 날씨를 탓하며 긴 바지를 고수한다. 땀을 내지 않으니 때론 긴 바지가 서늘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조금만 열심을 내어 땀을 흘리고 체온을 높이면 해결될 일이고 내가 있는 이 곳은 다름 아닌 헬스장인데 여간해 달라질 맘이 없다.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것, 도대체 그 이른 새벽 곤한 잠을 쫓아가며 왜 그곳에 가는 것인가.


첫째, 돈을 냈다. 3개월에 9만원이라는 선금을 지불했고 그 돈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을 보는 건 차라리 그 돈으로 돼지갈비나 배터지게 구워 먹을 걸 하는 후회를 남긴다. 헬스장 사장 좋은 일만 시키는 건 죽어도 싫다. 나는 어엿한 회원이다. 

둘째, 사람 구경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는 곳. 구경해서 뭐 하려느냐, 땀 흘려 운동하는 사람에게서만 자연스레 뿜어 나오는 무언가 내가 낼 수 없는 소금기 강한 에너지를 흉내 내고 싶다. 헬스 기구들과의 씨름이 열심인 그들의 강한 의지와 눈빛에 이미 나는 운동을 마친 사람처럼 헐떡거린다. 도대체 어떻게 매일 새벽 같은 공간에 나와 기구들과 씨름을 하면서도 피곤하거나 졸린 기색이 없는지 그들은 오래 두고 보며 공부하고 닮아갈 충분한 가치가 있다.

셋째, 고작 20분의 런닝머신 후에 느껴지는 상쾌함과 만족감, 뿌듯함과 성취감은 짐작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는 아니어도 사는 동안 삐걱거리지 말고 일상을 붙들고 싶은 바램에 대한 예의 정도라 생각하면 되겠다.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서 건강을 기원하고 무병장수를 바라는 건 경우가 아니다. 역으로 생각해 이런 형식적인 운동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 믿는 것도 말은 안되지만 안하는 것보다 낫지 않냐는 지극히 초라하고 볼품없는 억지를 부리는 중이다. 언젠가 내게도 암 선고를 받는 날이 온다면 믿을 수 없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는 새벽마다 헬스장에서 건강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구요’ 하며 베개를 집어 던지며 오열을 하려면 일상을 좀 규칙적으로 관리해놓아야 할 것이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밖에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조직 검사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일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그래서 결국 뭐 이런 사소하고 억지 투성이의 이유들을 끼워 맞추기에 성공했고 누구도 물은 적 없는 이유들을 열거하며 잠들기 전, 어김없이 알람을 맞춘다. 내일은 꼭 벌떡 일어나야지, 내일은 꼭 30분 넘게 뛰어야지. 소박한 바램을 되새기며 곤한 하루를 마감한다. 바램으로만 끝나지 않기 위해 운동복 챙겨입기 귀찮다는 이유를 대며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지 않기 위해 아예 츄리닝과 반팔티를 입고 잠드는 노력도 잊지 않는다.  

나는 이만큼이나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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