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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Jan 13. 2019

집을 파는 최고의 방법, 대상포진

대상포진 세 번 걸린 여자의 대충 사는 이야기

1년간의 미국살이를 앞두고 시작한 건 살던 집을 정리하는 흔한 프로세스였다.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 있는 미국 비자 전문이라는 어느 유학원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서두른 일은 동네 부동산들에 매물을 내놓겠다는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같은 일을 하고 계신 분들임에도 24평짜리 1층 아파트 매물을 대하는 자세는 매우 다르다. 매수자가 두 달 넘게 뜸한 한산한 집값 하락장을 설명하면서도 ‘잘 준비해 보겠습니다.’ 라는 소박한 파이팅을 외치는 분들도 계시는가 하면, ‘없어요, 없어. 찾는 사람이 없어’ 깊은 한숨으로 답을 대신하시는 분들도 있다. 나름의 영업 방식을 탓할 맘은 조금도 없다. 도대체 이 다양하고 수많은 분들 중 누가 우리집의 계약을 성공시켜 주실 것인가. 불투명한 1년을 간신히 결심했는데 살던 집을 정리하는 것부터 벽에 부딪치는 건 정말 서글픈 일인데 말이다. 처분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시세보다 낮춘 가격으로 열 군데쯤 전화를 돌리고 나니 궁금함이 생긴다. 결국 나의 사랑했던 작은 집은 어떤 분이 어떻게 계약에 성공해주실까. 찾는 손님이 그렇게 없다더니 결국은 가격이었나보다. 다음 날 아침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늘 그렇듯 난 집에 없었고 순순히 비밀번호를 내주었다. 내가 집계약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은 쿨하게 집을 보여 드리는 것. 언니랑 만나고 있던 중이었는데 언니는 너무나 쿨하게 집을 보여주는 내 모습에 집을 얼마나 잘 치워놓고 왔을까 했단다. 그럴 리 없다. 내가 그럴 리가. 난 그 날 아침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버스에 올랐을 뿐이었고 중요한 미팅이었던 탓에 있는대로 단장을 하느라 뱀껍질같은 잠옷을 흘려놓았다. 설거지는 당연히 쌓여 있었고 식탁을 닦지도 않았다. 거실에 온수 매트를 깔아놓고 잤는데 그 곳은 오늘 밤 다시 그대로 쏘옥 들어가면 되게끔 아주 포근한 모습 그대로였다. 실상 이런 쿨한 모습을 공인 중개사 분들이 반기신다. 어찌됐건 집을 뵈이줘야 계약이 성사될 것 아닌가. 집의 상태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상대가 원할 때 바로 보여주는 대범함. 나의 정신없는 일상을 그래도 드러내 주는 엉망인 집 꼬라지를 당당하게 보여줄 때에 비로서 내 집은 새로운 주인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그 날 오전에만 세 군데의 부동산에서 손님을 모셔왔고,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내 집의 꼬라지를 감상하고 돌아갔다. 내가 정상이라면, 어느 정도 개념은 박힌 가정주부라면 내 집을 구석구석 살피곤 돌아간 그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어야 한다. 얼굴 들고 만날 수 없어야 정상이다. 그러길 바랬다. 집이 어서 나가길 바랬으면서도 오늘의 집꼬라지를 감상한 분들은 아니길 바랬다. 강한 바램은 곧잘 빗겨 간다.


점심을 먹는 중에 전화가 왔다. 당장 계약금을 넣고 싶다고 했다. 집이 정말 예쁘다며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엥? 예쁘다고? 나도 정신 놓고 사는 사람이지만 이 집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이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궁금해져왔다. 이들도 보통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가보다. 반가움에 계좌 번호를 찍어보내고 계약서 작성을 약속했는데 그러고 나니 정신이 든다. 이런, 나는 이제 내 집의 꼬라지를 샅샅이 신나게 감상하고 속으로 쉼없이 혀를 찼을 모든 사람들에 둘러싸여 얌전과 교양을 떨어대며 예쁘고 바른 글씨로 계약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공인 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 어색한 인사를 나누면서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선수를 쳤다.

“아니, 저희 집이 원래 그 정도는 아니에요. 제가 오늘 정말 많이 바빴거든요. 정말 그 정도는 아니에요. 원래 설거지는 꼭 하고 나가요.”

설거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설거지만 되어 있었다면 되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는 알고 있는데. 설거지 핑계를 대는 내가 처량했던지 부동산 사장님께서 편을 들어주신다.

“그 덕분에 집이 잘 계약된 것일 수도 있어요.”

이건 또 무슨 논리일까. 계약이라는 과정을 무사히 끌어가기 위해 한 마디 말씀도 조심하시는 사장님은 뭐든 좋게 해석해주시려 노력했고, 집을 파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설거지 통 가득 그릇을 담그어 놓아 얼마나 주방이 넓은지를 어필하고 집안 이곳저곳 입던 옷을 흘려놓아 그럼에도 공간이 널찍하고 편안하다는 것도 어필하고 온 집안 곳곳에 읽던 책을 늘어 놓음으로써 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이렇게 책과 친구가 될 수 있음을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주셨다.


이건 모두 대상포진 때문이다. 나는 원래 매우 더러운 사람인데 어떻게든 좀 치우면서 살아볼까 하다가 대상포진에 걸린 적이 있었다. 어린 두 아들을 병설 유치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30명 아이들의 1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이었다. 처음 걸렸을 땐 그게 그건 줄도 모르고 하던대로 집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했는데 그러다가 몇 달만에 재발을 했다. 그리고 몇 달만에 또 걸렸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예방접종을 맞았다. 세 번째 대상포진의 약을 받아들고 20만원 가까이 하는 예방접종을 맞고 나오면서 결심했다. 더럽게 살겠다고. 깔끔하게 사느라 잘 치우고 사느라 몸이 너덜거리게 부숴지는 일 따윈 하지 않겠다고. 눈물이 철철 나게 고통스러운 대상포진의 시간이 가져다준 엉뚱한 결론, 그때부터 우리집은 엉망이 되었다.


젊은 부부와의 계약이 무사히 끝났다. 기분 좋은 계약 후에 그들은 집을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느냐는 부탁을 했고, 쿨하게 대답했다.

“아까보다 더 엉망이 된 상태에다가 덩치 큰 남자 아이들 둘이 거실에서 피구를 하고 있을 거에요. 괜찮으시면 얼마든지 보세요.”

집에 함께 들어섰고, 정말 예상은 딱 맞았다. 웃통을 벗고 피구와 농구를 결합한 뉴스포츠를 즐기고 있던 아들들은 손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등장하자 더 호들갑을 떨어대며 분주해했고 함께 온 부부의 예쁜 딸아이에게 색종이 선물을 안겼다.


아마도 그 가족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예쁘고 아늑하고 편안한 집에서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예쁜 딸아이가 저렇게 온 집안을 맘 편히 뛰어다니며 노는 상상만으로도 한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게을러도 이 집의 저 아줌마보다는 살림을 잘 할 자신이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충만하여 그 댁의 어린 아내는 남편에게 큰소리 쳤을 것이고, 남편은 똑 부러지고 야무진 아내를 바라보며 우리 와이프 최고를 외쳤을 것이다.


내 일상의 결론은 희안하게도 대부분 비슷한데,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고 내 부족함으로 누군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을테니 그렇다면 오늘도 난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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