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영어캠프의 교사가 되었는가에 관하여
시작은 단순했다. 몇 해 전으로 거슬러간다.
이름도 생소한 사이판이라는 어느 섬마을에 아들 둘을 이끌고 한달살기인지 뭣인지를 한 번 해보려고 항공권을 검색했다. 유행이라고 하면 한 번은 근처에라도 가봐야 속이 시원한 사람인지라 한달살기 뭐 그런거 한 번 해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얼마가 들까, 이것보다 궁금하고 중요한 건 없었다. 지금도 당연히 그렇다.
그런데 이런, 너무 싸다. 싸서 낭패다. 셋을 넣고 돌렸는데 저런, 75만원이란다. 안갈 수 없는 가격이다. 확 비싸서 셋이 200만원을 훨씬 웃돌아야 검색하던 창을 조용히 닫고 읽던 책이나 마저 잡아들며 에이씨 에이씨 그러다 그만 둘텐데 이건 그냥 그만둘 수 없는 금액이다. 고만고만한 애들을 비슷한 시기에 낳아 키우며 애들 데리고 콧바람 쐬는 일에 심하게 죽이 잘 맞는 하나뿐인 친정 언니에게 연락했다. 75만원이다, 가자. 오케이. 언니는 질문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의심이나 걱정도 없다. 언니인데 오빠 같다. 저렴한 항공권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 언니의 오케이는 쉽게 받아낼 수 있었다.
한 달을 살아보기로 결심한 곳이 사이판이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다. 특별함을 기대했다면 아쉽지만 진심으로 별 거 없다. 우연히 사이판 한 달 살고 온 엄마가 쓴 책을 읽었을 무렵, 친한 분이 첫 가족 여행으로 사이판에 다녀왔고, 시동생네 가족도 사이판에 다녀왔다. 시차는 고작 한 시간에 비행 시간은 4시간 30분. 물가가 저렴하지는 않지만 미국령이라는 타이틀도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사이판 책자들에서 발견한 고요하고 잔잔하고 푸른빛의 바다 사진에 마음을 진하게 빼앗겼다.
실로 맘먹고 카드빚 내어 떠났던 첫 가족 여행이 하필이면 유럽이었던 게 결정을 부추겼다. 높은 물가와 빡빡한 일정, 불친절한 선진국 시민들의 냉대와 붐비는 관광지에 제대로 시달렸던 후유증이 남아 있었나보다. 너무 볼 게 없고, 할 게 없어 그게 매력이라는 시골 바닷가 마을에 마음을 주는 건 어떨까. 여기라면 숙소를 옮겨 다니느라 짐을 싸지 않아도 되고 환율 계산해가며 돈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볼 게 너무도 많아 봐도봐도 아쉬워지는 느낌은 없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만으로 결국 항공권을 결제했다. 가서 한 달 동안 주구장창 바다수영만 하며 지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유럽의 으리으리한 관광지에 질린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이판에서 애들을 앞뒤판 모두 골고루 벌겋게 구워가며 꿈같은 한 달을 보냈고 언니는 결심했다.
“나, 사이판 영어캠프할 거야. 도와주라.”
우리는 연년생으로 30년 넘게 같이 자라오고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했고 고작 4개월 차이로 엄마가 되었다.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사업을 하는 형부의 정확한 수입 정도만이 궁금할 뿐 언니에 대해서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비슷한 감정으로 일상을 지켜내고 있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유학원이라는 정식 사업자를 등록하고 영어캠프를 시작한 언니는 이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사업하는 형부의 옆에서 배운 걸까, 아님 원래 저런 사람이었을까. 한결같이 철저하고 성실하고 끈질기게 그 와중에 수시로 닥치는 새로운 상황들을 즐기기까지 하며 서서히 사업의 몸체를 불려가는 언니는 낯설기도 멋지기도 했다. 실은 언니도 두려웠겠지만 그렇지 않을거라 믿고 싶었다. 그런 언니가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소싯적 영어 좀 했던 사람이고 제안의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내게는 당장 영어 공부가 시급하지만 한 번도 학원 문제집을 풀어보지 못한 정수리 냄새가 풀풀 나기 시작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고 이들을 공짜로 먹고 자고 영어캠프에 참여시켜주겠단다. 애들만 좋은가, 천만에. 더 좋은 건 나다. 한 달이나 비행기 태워주고 외국에서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니. 원하던 콧바람 실컷 쐬고 우리 애들은 그곳에서 영어를 배우고 무엇보다 한 달 동안 밥을 안 해도 된다. 이거 괜찮은데. 깊이 따지지 않고 재미있어 보이면 일단 뛰어드는 성격인 게 다행이었다. 나 이제 영어캠프 교사가 되는 건가. 길었던 초등교사 경력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새로운 도전 앞에 두근거렸다. 일단 한 번 해보자. 결심의 순간은 짧았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게 되었다. (이건 사실 좀 슬픈 사연인데, 슬픈 사연은 영어캠프와 어울리지 않으니 생략)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 유학원의 교육실장 명함을 내밀었다. 교사였으니 교육실장이란다. 오랜 시간 선생님으로 불리웠던 나는 '실장님'이라는 직함이 주는 활동적인 느낌이 퍽이나 맘에 들었다. 취미, 특기, 육아, 전직이 새로운 직업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좋아서, 좋으라고, 좋을 것 같아, 실제로 좋더라로 시작한 것이 일이 되었다. 사직 전과 달라진 건 얼마간의 수입이 정식으로 입금되기 시작했다는 것. 공항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줄을 세워 비행기에 오른 후 현지의 숙소에 누워 맞이하는 캠프 첫날의 떨림이 콩콩대며 가슴 뛰게 했다. ‘저희 숙소에 잘 도착했습니다.’라는 글과 공항, 숙소에 도착한 아이들의 사진을 올려 놓고 속속 달리는 댓글을 확인할 때의 설레임과 뿌듯함은 캠프 첫날에만 느낄 수 있는 기막힌 행복감이다.
4주간의 대장정, 울고 웃다가 속이 뒤집어지다가 하늘을 날게 만드는 캠프의 시간들. 알고 보니 세상엔 엄청나게 많은 크고 작은 해외영어캠프들이 있던데, 그 안에는 학생 숫자와 비례한 나같은 인솔교사들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솔직한 사연과 경험은 어딜 가도 들을 수가 없으니 영어캠프에서 일어나는 흥미진진하고 기막힌 사연은 내가 직접 전해야겠다. 충격 르포, 해외영어캠프의 실상, 이런 걸 먹이고 이런 곳에서 재우다니. 실태 보고 형식의 충격적인 스토리를 기대했다면 죄송하다. 그럴만큼 대단히 파헤칠 실태가 없음이 죄송하다. 파헤치고 과장하고 고발할 뭐 대단한 건 없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좋아하고 가장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쓰는 글이라 하니 무엇보다 나는 더위 작렬하는 사이판에서의 한달짜리 영어캠프에 관해 써야만 하는 것이다.
내게 이것은 그토록 사랑스럽고 궁금하고 떨리는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