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아이들, 걱정스런 엄마, 집에 가고 싶은 아빠
출발을 위해 모여든 공항의 아이들은 눈에 띄게 설레어 했다. 참가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해외영어캠프라는 것의 첫 경험을 하는 중이었다. 가깝고 시차가 적으며 영어권이면서도 안전한 지역으로 꼽히는 사이판은 괌, 필리핀과 더불어 해외영어캠프 첫 경험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곳을 경험하고 난 아이들은 캐나다니 미국이니 하는 넓고 먼 땅으로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 나름 해외영어캠프의 공식이다.
공항은 첫 경험을 앞둔 아이들의 설레임과 부모님의 걱정스런 표정이 대조를 이루며 부모의 마음을 민망하고 서운케 했다. 근심 어린 표정의 부모님들은 게이트를 통과하는 마지막 순간의 뒤통수에까지도 걱정 섞인 당부를 쉬지 않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더 챙겨 보내고 싶은 물건들을 공항 어디서인지 용케도 공수해다가 이미 가득찬 캐리어에 쑤셔 넣으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인솔 교사의 귓가에 대고 지난 달 딸의 마지막 생리일을 일러주며 다가올 날짜를 귀띔하는 엄마들의 머릿속엔 생리통으로 괴로워할 딸아이의 모습, 모두들 남태평양 앞바다에 뛰어드는 시간, 홀로 그늘을 지켜야할 딸아이의 애처로운 모습이 바쁘게 교차했을 것이다. 자기 물건 하나 못 챙겨 질질 흘리고 다니고 잃어버리고 오기 일쑤라며 잘 좀 부탁드린다고 당부하는 아들 엄마들의 못 미더운 표정도 그대로 절절히 와 닿았다. 정신없는 아들놈들 걱정이라면 내가 전문인데 이 엄마들도 만만치가 않다.
공항에 배웅나온 부모들에게 벌어진 남 일이라기엔 곧 내게 닥칠 일이기에 엄마들의 표정은 쉽게 지나쳐지지 않았다. 언젠가 멀지 않은 어느 날, 내가 아이를 한 달간 외국에 보내게 된다면 어떤 표정과 행동, 어떤 소재의 잔소리를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잔소리를 별로 하지 않는 스타일의 엄마라 자부하지만 실상 누구보다 걱정하고 애태우고 오만가지 당부를 늘어놓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공항 엄마들의 표정을 감상하는 건 현빈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듯 흥미진진했다.
이제껏 양육해온 방식이 제각각이었듯 공항 배웅의 색깔도 다양했다. 용감하게 공항버스에 태워 아이만 공항에 보낸 집이 있는가하면 온 가족이 총출동한 집도 물론 있었고, 무심한 표정의 아빠와 애가 닳은 엄마. 형이 마냥 부러운 남동생과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여동생도 있었다. 설레임에 날뛰는 아들을 잡아먹을 듯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는 엄마와 공항 주차료를 떠올리며 어서 자리를 뜨고 싶어 하는 지루한 표정의 아빠. 캠프를 앞둔 가족들의 제각각 다양한 표정들을 감상하는 흥미로운 경험 또한 이 일만의 매력일 것이다.
전화 상담을 하며 목소리만 익숙했던 엄마들의 실제를 마주하는 일도 못지않게 재미있다. 전화 속 목소리, 말투, 상담 내용, 걱정하는 부분과 예리한 질문들까지 한 사람의 엄마를 머릿속에 그려보기 충분한 정보를 가졌다 생각했지만 공항에서 만나는 실제의 엄마는 대부분 예상을 빗나갔다. 아직 사람 보는 눈이 이것밖에 안되나 싶다. 인솔교사들은 어떤 이들일까를 궁금해하며 나의 일거수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들의 날카로운 시선은 부담이지만 이 또한 연예인 된 심정으로 즐기는 수밖에-
좋아서 시작한 일, 잘해서 결심한 일이기에 그깟 사소한 부담스러움들은 별 것도 아니다. 부모님의 모든 걱정을 뒤로 한채 그저 들뜬 마음으로 벙긋거리는 아이들의 기분만 내것이 된다면 오케이. 저들의 설레임을 어느새 슬쩍 내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성공.
공항의 아이들보다 더 들뜨고, 공항의 엄마들보다 더 많은 걱정을 안고 있는건 이들을 이끌고 비행기에 오를 나란 사람인데, 어떤 것도 그들 앞에서 내색할 수 없으니 이렇게 적는 것으로 대신한다.
많이 설레고,
정말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