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중 현수가 게임 메시지로 갑자기 ‘롤(게임) 유튜버를 할 생각이 없냐’고 물어왔다. 어느 유명 BJ이자 유튜버를 동경하고, 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던 터라 좋다고 했다. 채널명을 미끼 TV로 정했다. 게임 녹화와 편집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등, 근간을 다졌다.
62.
핸드폰을 하는데 그 녀석이 불쑥 들어왔다. 순순히 그에게 다시 내 몸을 내주었다. 머릿속이 유튜브로 꽉 차 있다.
63.
영상을 하나 편집해서 올렸다. 영상이 조회 수 25만을 찍는 꿈을 꿨다. 깨니까 허탈했다. 첫 영상은 아직 올리지도 않았는데.
64.
그에게 몸을 맡기면서 체격 또한 달라졌다. 근력 운동을 하는지 몸 구석구석에 근육이 붙었다.
65.
요즘 일주일에 두어 번 세 시간 정도 ‘세상'으로 나오고, 그때마다 게임을 하고 편집을 한다. 일주일에 영상을 세 개씩 올린다. 말로는 취미로 하는 거니까 구독자 수, 조회 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서서히 올라가는 구독자 수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66.
날짜를 계산해보니 기말고사까지 1주일이 채 안 남았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는걸.
67.
순조롭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어느덧 500을 넘겼다.
68.
이곳에서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내가 한참 동안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는 것. 그 녀석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69.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 녀석과 시야 공유를 시도한다. 처음에는 뿌옇고 탁한 이미지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워본다. 초점이 조금씩 맞기 시작하더니, 세상이 선명한 화질로 보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 우중충하다. 이 녀석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70.
네모 피시방
내가 사는 C 기숙사랑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진다. 주로 B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피시방. 이 녀석 피시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오른다. 의도를 모르겠다. 이 녀석 게임도 했던가?
71.
한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에 로그인한다. 이용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아있다. 게임은 실행시켜 놓지도 않고, 시선을 슬쩍슬쩍 화장실 쪽으로 흘긴다. 이상한 녀석.
72.
한참 동안 멀뚱히 앉아있다. 지겹지도 않나. 사용 시간이 30분 남았다는 음성 메시지가 울린다. 그때, 어마어마한 덩치의 남자가 헐레벌떡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다. 저 정도 덩치는 흔치 않은데.
73.
최준우
대학교에 와서 12명 단위로 조를 편성해줬다. 새내기들이 대학의 첫 1년을 함께하며 적응에 도움이 되라는 좋은 취지다. 그 중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띄는 녀석이 있었다. 최준우. 키 190cm에 살집이 있어 덩치가 곰 같은 녀석. 자만이 얼굴과 언행에 꾸덕꾸덕 묻어 나는 녀석, 내 인격을 자근자근 씹어 댄 녀석. 앞으로 그를 J라고 부르겠다.
74.
조모임에서 대표로 밥값을 계산하게 되면 하루 안에 밥값을 돌려받은 적이 없다. 꼭 혼자만 늦는다. 번거롭게 서너 번 쪼아 대야, ‘아 맞다’ 하면서 잊고 있던 척 뒤늦게 계좌로 돈을 보내준다.
75.
학기 초 J의 생일이라 ‘생일 축하하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형식적인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건만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76.
J를 포함해 같은 반 다섯이서 팀 게임을 하는데, 자기가 못한 것은 괜찮고 남이 실수한 것은 안 괜찮다. J는 게임 내내 욕을 내뱉더니 게임을 지고 나서 대뜸 내 멱살을 잡았다. J의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순간 화가 확 나서 그의 코에 주먹을 꽂아버릴까 했지만 눌려 몸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주변의 술렁이는 분위기에 그도 아차 싶었던지 멱살을 슬며시 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음 판을 돌린다. 나는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래, 여기까지. 똥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니까. 우연히 같이 듣는 수업 하나. 그때 외에는 거의 마주치지 않을 터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77.
J와 같이 듣는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하라고 무작위로 조를 편성해줬다. 좋다. 그런데 어째서 이름 ‘주민수’와 ‘최준우’가 4조 명단에 사이좋게 자리하는가. J는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내지도 않으면서 내 의견은 사소한 거로 트집 잡거나 아예 묵살했다. 결국, 마감일이 다 되어가자, 그의 머리에서 나온 별 시답지 않은 주제로 과제를 진행했다. J는 발표를 맡는다며 발표 전까지 아무것도 안 해놓고, 발표 때는 남이 써준 대본을 코에 붙이고 읽었다. 그대로 말아먹었다. 그래 놓고 내 탓이라며 정치를 했다. 할 말이 더 있지만 별로 꺼내고 싶지 않다.
78.
과민성 방광염
그래도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는 말해 둬야겠다. J는 과민성 방광염을 앓고 있다. 과민성 방광염은 방광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자주 수축하여 급하게 소변이 자주 마려울 뿐만 아니라 잘 참지 못하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을 수반한다.
79.
J가 화장실로 향하는 것을 보자마자 ‘내’가(현재 나의 몸을 지배하는 인격과 나의 몸을 통칭하여) 화장실로 뛴다. 아니 뭐 어쩌려고?
80.
시야가 흐려지려 한다. 정신을 다잡으며 상황을 뚜렷하게 보려고 애를 썼다.
민수 이야기(5/5)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