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삶의 모든 요소는 우리를 바로 그 초기 오류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 데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 존채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데 맞춰져 있다. 우리가 삶을 더 자세히 그리고 편견 없이 들여다본다면 삶은 대놓고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처럼 보인다. 삶의 구성 곳곳에 우리가 역겨워 할만한 그리고 실수라고 격하할 만한 것이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의 마음은 쾌락 중독으로부터, 결국 삶 중독으로부터 치유되며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
- 쇼펜하우어
세상에 행복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난 너무 불행한 것 같아”, “행복하고 싶어”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행복’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언제, 그리고 왜 행복을 느끼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번 장에서는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과 그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행복의 실체와 비밀을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서은국 교수는 인간 역시 100%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진화심리학적으로 우리가 왜 행복을 느끼는지 설명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이유와 그 원천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분명 행복한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겁니다.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문명을 영위한 것은 길게 잡아도 고작 6천 년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선 것은 대략 6백만 년 전입니다. 6백만 년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인간이 문명 생활을 한 시간은 1분 30초가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1분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불과한 현재의 모습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습니다. 고층 빌딩, 그리고 첨단 AI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동물이 아니라는 오만을 품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양복을 입은 유인원이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인간이 현재 지닌 신체적 모습과 생각, 감정, 마음은 우연히 살아남은 특성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유하게 된 특성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감정은 생존에 어떤 도움을 주었을까요? 인간은 무엇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일까요? 동물의 최우선 과제는 생존과 번식입니다. 우리의 모든 직계 조상은 그 임무를 충실히 해냈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생존을 위한 도구입니다. 인간은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쟁취했을 때 행복감을 통해 보상받았습니다. 생존을 위해 고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물 때,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감정 역시 진화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감정은 쾌 또는 불쾌로 나뉩니다. 모든 동물은 쾌와 불쾌의 잣대로 경험을 구분합니다. 왜 그럴까요? 생존과 밀접한 결정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나콘다, 절벽, 사기꾼, 썩은 음식을 상상해 보면, 두려움이나 역겨움의 감정이 즉발적으로 발생하지 않나요? 감정과 느낌은 그 어떤 생각보다 즉각적이고 강력하며 효율적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빠른 판단과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단지 순간의 위험 상황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낯선 땅, 매력적인 이성, 절벽에 붙어 있는 꿀 가득한 벌집. 지금 당장 손에 넣지 못한다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이러한 자원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의욕과 에너지를 요구하며, 그 노력에 상응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합니다. ‘쾌감’을 유발하는 정서들이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합니다. 희열, 성취감, 뿌듯함, 자신감과 같은 감정이 있지요.
우리는 목표물을 획득했을 때, 그리고 목표물에 근접해갈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생존 번식 게임은 일회전이 아닙니다. 엄청난 장기전입니다. 행복감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우리는 영원한 포만감에 배를 두드리며 내일 먹을 먹거리를 찾으러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도, 다리를 하나 잃은 사람도 3개월 후에는 다시 원래 수준의 행복과 불행으로 회복됩니다.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복 점수를 기록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장기적으로 보면 인간의 행복 지수는 7로 수렴하는 ‘행복 오뚝이’와 같았습니다. 10점을 향해 몸을 기울이려 하지만 10점은 가능하더라도 아주 잠깐만 가능한 환상 같은 점수입니다.)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초창기 생물들을 역설계해 본다고 합시다. 매 순간 행복 버튼이 자주 눌리는 생물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위험 요소를 알아채서 경보기(편도체)를 더 많이 울리는 민감하고 예민하며, 조심스러운 생물이 더 많이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항상 행복한 생물보다는 간헐적인 보상을 통해 생존과 번식 과제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받는 생물이 더 유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이나 여타 감정의 메커니즘이 이해되셨나요? 행복은 우리의 생존 번식에 도움이 되는 자원에 근접하거나 자원을 확보했을 때 발생하는 쾌감 신호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이 쾌감 신호가 자주 울리는 뇌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생존 번식에 도움이 되며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 사이렌을 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상이 되는지요?
그렇습니다. 결국에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너무나도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집니다. 150명 정도의 부족을 이루었던 인류 원시 사회를 생각해 볼까요? 그 시절에는 집단으로부터의 소외나 고립은 곧 죽음과 같았습니다. 소외나 고립은 우리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기에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인간 무리에서 소외되거나 고립되지 않도록 ‘사회성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뇌는 신체적 통증과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를 통해 발생하는 고통을 분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의 뇌가 폭발적으로 진화하게 된 계기도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집단에서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라는 ‘사회적 뇌 가설’ 이론이 있습니다. 남의 생각과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쓰면서, 사회생활을 잘해보려는 과정에서 뇌가 폭풍 성장한 것입니다.
한편, 한 연구에서 행복에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성향을 찾아냈는데, 바로 ‘외향성’이었습니다.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이 더 높은 행복지수를 보였습니다. (물론, 회식과 같이 긴장과 피로가 수반되는 분위기에서 함께한 시간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자원을 남과 많이 나누는 사람의 평균적 행복감이 높았다는 사실도 인상 깊습니다.
“저는 혼자가 좋은데요?”하며 반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향인 역시 사실 외향적인 사람과 본질은 같습니다. ‘집에서 시집 읽을 때 더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흥미롭게도 오히려 내향인이 타인과 교류할 때 행복감 증가의 폭이 더 큽니다. 교류를 더 만끽하는 사람이 더 내향적이라고 설명하여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내가 외부 자극이 5개면 충분한데, 10개면 피곤해’라며 ‘집에 갈래’ 하는 것이 내향인입니다. 그래서 대형 모임보다는 소규모 소모임에서 내향인들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재밌는 자극은 다른 인간입니다. 외향적인 사람은 이 재미있는 자극인 ‘사람’을 계속 찾아 나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치 있는 삶이 곧 행복이라는 해석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행복을 거창한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서은국 교수에 따르면,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닙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입니다. 행복과 같은 긍정적 정서는 뇌에서 발생하는 현상이기에 생물학적 논리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만큼 다양한 곳에서 행복을 느끼는 동물이 없습니다. 쇼팽의 음악과 셰익스피어의 희곡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관계를 맺을 때, 더 넓게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이 두 가지 자원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는 먹을 때와 대화할 때라는 설문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문명 속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두 가지입니다. 음식, 그리고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는 것이 최상입니다. 서은국 교수는 이것이 행복의 본질이며, 나머지는 디테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결국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목적론적 사고의 함정에 빠지면 안됩니다. 눈은 태초부터 보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닙니다. 눈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그 구조와 기능이 유전되어서 고정적인 특성으로 자리잡은 것이죠. 행복도,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행복을 위해 사는 것도, 사랑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을 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실제로, 사랑의 능력을 잃어버리면 여러 의미로 죽게 됩니다.) 행복을 거창한 것으로, 사랑을 초월적인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주환 교수는 도파민 회로에서 오는 일시적 쾌감(가짜 행복)과 전전두피질 활성화로 인한 심리적 안정과 만족(진짜 행복)을 구분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만족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며, 이것이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고 합니다. 김주환 교수의 행복은 뇌과학이 기반이기는 해도 영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서은국 교수는 가짜 행복도 주관적으로 즐겁게 느껴진다면 모두 행복이라고 주장합니다. 행복에 고급과 저급은 없고, 행복은 외부의 상황이나 사건에 의해 발생하며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 스스로를 잘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서은국 교수는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를 타인의 평가와 인정에 과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 봤으며, 김주환 교수는 특정 조건이 충족돼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불행의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복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명랑함이다. 명랑한 마음이 행복의 관건이다.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명랑한 마음만 있으면 모든 것은 즐거운 상황으로 변한다. 그래서 마음속에 명랑함이 들어오면 그것을 소중히 고이 간직해야 한다. 명랑함이 다시 나가지 않도록 온 정성을 쏟아 보듬어야 한다. 명랑함을 잃으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 보려면 그 사람이 명랑한지 보면 된다. 그 사람이 부자든 가난하든 늙든 젊든, 명랑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고 명랑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해야 한다.”
자신을 유쾌하게 비웃지 못하는 자들을 조심하라. 만일 당신이 스스로를 유쾌하게 비웃지 못한다면, 당신은 스스로를 가장 조심해야한다.
- <은둔기계>, 김홍중
+ 매슬로 5대 욕구 피라미드 뒤엎기
사람들은 왜 자아실현을 추구할까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이를 새롭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아실현을 하는 것이 (자신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루거나 거장이 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적 욕구(식욕, 성욕, 소속감, 타인의 인정)를 채우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자아 실현을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물은 자신에게 맞는 구체적인 적소를 찾아갑니다. 세계에는 정말로 수많은 적소가 있습니다. 어떤 생물은 썩은 물웅덩이를 자신의 적소 삼아 번성합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물리학에도 다양한 세부 분과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아 사회적 적소를 찾아갑니다. 그것을 자아실현이라고 합니다.
봉사 등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남을 돕는 것이 자기 효능감 측면에서나 다방면으로 자신의 행복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봉사를 하면,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맨 꼭대기에 있는 것 같던 자아실현이 다시 인간의 본질적 욕구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되니, 인간의 여러 욕구는 피라미드처럼 꼭 계층적으로 이루어져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나가야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있고, 상호 연결된 복잡한 ‘욕구 그물망’에 가까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