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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연선택의 관점에서 냉혹한 진실이 있습니다. 선택의 단위는 집단이 아닌 유전자라는 것입니다. 만약 욕심이 없는 개체들이 모여서 다 같이 손잡고 가는 사회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욕심이 있는 개체 딱 한두 마리만 나타나도 게임 오버입니다.
모두가 자기 몫만 챙기고 더 바라지 않는데, 혼자서 ‘이득을 최대로 끌어당길 기회’를 기가 막히게 포착하는 개체가 있다면, 당연히 그 개체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번식하고, 결국엔 ‘욕심 유전자’가 더 널리 퍼지게 됩니다.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내용입니다. 집단에서 협동이 발휘될 수는 있어도 결국 선택의 진짜 단위는 ‘유전자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은 결국 ‘더 많이 복제된’ 유전자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집단 전체에 도움이 되는 행동이라도, 그 행동을 유발하는 유전자가 스스로를 덜 복제하게 만든다면, 그 유전자는 서서히 사라질 것입니다.
반대로 집단에는 다소 피해가 가더라도, 자기 복제 확률을 높이는 얌체 유전자가 있다면, 그 개체는 번성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욕심 없는 세상을 꿈꾼다 한들 유전자 레벨에서는 ‘가장 잘 복제되는 자’가 곧 ‘선택된 자’라는 차갑고 현실적인 논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집단 전체가 고상한 이념으로 똘똘 뭉쳐있어도, 그 이념보다 자기 복제에 유리한 유전자가 있으면 결국 그것이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유전자의 세계에서만이 아니고, 사회 문화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두를 위한 밈은 이기적인 밈에 의해 착취당하고 묻혀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계속해서 모색할 것입니다. 우리는 유전자와 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더 나은 밈을 설계하고 선택하며, 사회적 공존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주도하는 신집단선택이론에 따르면, 그룹 간의 경쟁이 그룹 내의 협력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이타적인 개체들이 많아 내부적으로는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이타적인 구성원들이 많은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전자가 여전히 선택의 단위로서 중요하지만, 다수준선택이론은 단일 유전자뿐만 아니라, 유전체 전체, 개체를 넘어서 더 큰 단위의 집단 또한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떤 유전 형질이 개별 개체에는 불리해도, 그 유전자를 가진 집단 전체의 생존과 번식에는 유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개별 개체에 유리한 형질이라도 그 형질을 가진 개체들이 모이면 집단의 성공에는 해가 되기도 합니다. 다수준선택이론은 유전자 수준에서의 이기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복잡한 사회성이나 대규모 협력이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며, 특히 인간의 문화 진화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인간 사회의 규칙과 도덕은 (비록, 집단 간 경쟁이 동반되어야 한다지만) 내부 협력을 강화하고, 결국 집단 전체의 적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