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도덕과 위선

부록

by 밈바이러스

로버트 커즈번의 말을 빌려 위선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정치인들은 공연히 도덕적 비난을 표출해야 하므로, 자신이 비난했던 부도덕한 행동을 스스로 저지를 경우 자신이 비난했다는 증거가 뉴욕 타임스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많은 것이 잘못되었음을 천명해야 하고, 여기에 대중의 감시까지 더해져서 정치인이나 공적 도덕주의자들(종교 지도자 등)의 위선은 쉽게 감지된다.” (물리적으로 기록도 많이 남고, 대중의 시선도 많이 받음)

“도덕적 모듈은 다른 사람을 제한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비난이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제한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남들을 쉽게 비난할 수 있다. 우리의 일관성이 부재한 순간을 다른 사람들이 항상 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살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남들의) 위선을 포착하는 모듈이 자신을 향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 로버트 커즈번, <왜 모든 사람은 (나만 빼고) 위선자인가>



우리는 때때로 자신의 ‘위선’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이건 내가 좀 심했네...’ 하고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지는 순간이요. 이럴 때 우리를 덮치는 심리적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뇌는 어떤 전략을 사용할까요? 우리 뇌는 도덕적으로 찜찜할 때 느끼는 ‘도덕적 역겨움’과, 구토나 벌레와 연결되는 청결과 거리가 있는 비위생적 역겨움(미각적 역겨움, 역겨운 냄새)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이 두 경우 모두 뇌의 섬엽을 중심으로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섬엽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더러운 건 더러운 거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더러워진 마음을 씻어내려고 합니다. 이를 ‘맥베스 효과’라고도 하는데, 죄책감이나 도덕적 불결함을 느끼면 신체적인 청결을 추구하게 되는 효과입니다. 한 연구에서는 손을 씻은 참가자들이 죄책감을 덜 느끼고, (거짓말을 하게 되면 구강 청결제, 거짓말을 손으로 기록하게 하면 핸드워시를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도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손을 씻고 나면, 아니면 상쾌한 향을 뿌리고 나면, ‘아, 이제 좀 개운하다!’하고 속 편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욕 재계 같은 경건한 종교 의식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비슷하게, 로버트 새폴스키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무엇인가 “해냈다”, “뿌듯하다”라는 ‘위험한 완료’의 느낌을 얻는다고 하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차가운 머리로 행동을 실행하도록 돕는 합리적 자비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한편,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과해질 경우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말자. 너무 아프면 외면하고 싶어지거든.” -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작은 선행을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서 남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다가, 아니면 부모님에게 짜증을 내다가, 갑자기 현타가 와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싶을 때, 괜히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자처해서 뿌듯해하거나, ‘내가 아까는 조금 위선적이었지만, 지금 지하철에서 어르신께 자리 양보해 드렸으니 됐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위선 체크리스트’가 있다면, 그걸 ‘물리적 정화’나 ‘작은 선행’으로 지워서 내면의 안정을 되찾으려는 시도랄까요.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도덕이란 우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 취하는 태도일 뿐이다.” 이 문장은 우리의 도덕적 판단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얼마나 감정적으로 편향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도덕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우리가 이미 싫어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도덕 모듈은 자기 방어적이고, 모순적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으로 그 모듈의 작동 방식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위선을 마주했을 때 찝찝함을 덜어내려 손을 씻거나 작은 선행을 하듯이, 타인의 위선을 봤을 때도 잠시 멈춰 서서 ‘혹시 내가 지금 오스카 와일드가 말한 그 함정에 빠진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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