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나는 30년을 살았다”고 말하며, 그 30년이라는 시간을 마치 끊어지지 않는 끈처럼 연속적으로 경험한 ‘나’라는 주체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순간순간의 경험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순간들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멍하니 있는 동안, 혹은 특정 활동에 깊이 몰입하는 동안에도 ‘나’라는 의식적인 주체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우리에게는 항상 똑같지 않습니다. 즐거운 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지루한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지죠. 이는 뇌가 감정이나 주의 집중, 각성 정도에 따라 시간 지각을 유동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은 관찰자의 속도나 중력에 따라 다르게 흐르는 상대적인 개념임을 밝혔습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더 나아가, 시간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것처럼 연속적인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들의 총체라고 주장합니다.
김범준 물리 교수도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직접 경험하지 않습니다. 숫자를 세고, 변화를 측정해서 시간과 연결 짓습니다. 가령, 과학자는 세슘 원자의 진동수를 측정으로써 1초를 파악합니다. 우리가 시간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사실은 변화나 사건의 연속이며, 우리는 그 변화를 측정하거나 숫자를 세는 행위를 통해 시간을 가늠할 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하루’나 ‘년’이라는 단위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특정 물리적 현상을 기준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또한 자연의 변화를 통해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입니다.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시간 감각은 생물학적으로 유용한 환상입니다. 시간은 물리적으로 불연속적인 ‘점(사건)’들의 집합이며, 뇌가 이 파편적인 ‘점’들을 매끄러운 ‘선’으로 이어 붙여 ‘시간이 흐른다’는 일관된 경험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18분의 1초 미만의 시간을 지각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24프레임으로 상영되는 영화를, 깜빡거리는 사진의 연속으로 느끼지 않고 동영상으로 인식합니다. 마치 ‘플립북’의 낱장 그림들이 빠르게 넘겨지면 연속적인 움직임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작은 원자의 세계, 미시적인 양자의 영역으로 가면 세계는 불연속적인 곳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이 연속적이지 않고, 특정 값의 정수 배를 취합니다. 공간과 시간마저, 최소 단위인 플랑크 길이와 플랑크 시간으로 쪼개지는 것입니다. 로벨리는 양자 중력 이론을 통해 시간이 아주 작은 양자 단위로 쪼개질 수 있으며, 심지어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거나,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시간은 근본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건들의 상호작용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창발(emergent)하는 현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동시성의 상대성’ 때문에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동시라고 인식되는 사건들이 달라집니다. 저 먼 은하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현재’가 수십억 년 전의 ‘과거’일 수도 있고, 반대로 수십억 년 후의 ‘미래’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우주에 적용되는 단 하나의 “지금”이라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각 개체는 저마다의 ‘지금’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오직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즉 열역학 제2법칙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립된 계에서는 무질서도(엔트로피)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진행됩니다. 이 통계적인 경향성 때문에 우리는 질서 있던 과거와 무질서해지는 미래를 경험하게 됩니다(저절로 어질러지는 방을 생각하면 됩니다). 이것이 “시간의 화살”을 만드는데, 이 화살이 없으면 과거와 미래를 구분할 근본적인 이유는 사라집니다. 우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고립계로 본다면, 우주 역시 거시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빅뱅 직후의 우주는 ‘초기의 미세한 불균형’을 지닌 극도로 낮은 엔트로피 상태였으며, 이러한 낮은 엔트로피 상태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더 큰 균형(열역학적 평형)을 찾아가는 과정,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 우리가 경험하는 우주의 ‘시간의 화살’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시’라는 개념과, 과거-현재-미래의 날카로운 구분선이 희미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습니다.
* 동물마다 초당 처리할 수 있는 최대 프레임이 다릅니다. 즉, 각각 다른 시간 해상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팽이는 4분의 1초 미만의 시간은 인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 실험이 있습니다. 달팽이는 앞에 정지한 막대기가 있으면 막대기에 오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막대기를 천천히 돌리면(초당 1~3회 회전) 달팽이는 움직이는 막대에 오르기를 피합니다. 하지만 초당 4회 이상 빠르게 회전하는 막대기를 만나면, 그 회전 속도는 달팽이의 인식 한계를 넘어 달팽이는 개별 회전을 인식하지 않고, 정지된 막대기로 인식해서 오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빠른 움직임이 달팽이에게는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시간이 연속적인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점’의 가치가 극대화됩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에 매몰되기보다, 지금의 경험에 온전히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과거의 점 사건에 얽매이지 않고, 이 순간에 점을 자유롭게 찍으며 (또, 미래의 점을 계획하기도 하면서) 우리의 삶이라는 별자리 혹은 점묘화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또한, ‘나’라는 것이 몇십 년의 흐름을 그대로 살아낸 단일한 ‘내’가 아닌, 매 순간 새롭게 구성되는 유동적인 이야기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나’라는 것은 끊임없이 새로 쓰여질 수 있는 역사 소설에 가깝다는 것을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이다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면의 갈등이나 ‘과거의 원망스러운 나’처럼 자아가 만들어내는 자기 분열과 자책에서 벗어나,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타인 또한 각자의 점들로 이루어진 주관적인 시간의 경험을 가진다는 것을 이해하면, 우리는 남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가 각자의 UI 속에서 자신만의 순간과 희로애락, 그리고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순간, 매 순간 단 한 번 뿐인 점에서 함께 울고 웃고 사랑할 수 있다니, 얼마나 이 순간이 소중하고 당신이 고마운지요. 시간의 흐름과 ‘나’의 연속성이 뇌가 만들어내는 유용한 허상이라는 인식은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에 집중하고, 자신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타인을 이해하고, 삶을 더욱 능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간과 공간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 통찰 중 하나입니다. 이 이론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밝혀냈지요.
모든 존재는 광속으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을 합한 ‘4차원 시공간’에 살고 있습니다. 이 4차원 시공간에서 모든 물체는 항상 ‘광속(빛의 속도)’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지 이 움직임이 공간 방향으로만 집중될 때도 있고, 시간 방향으로만 집중될 때도 있으며, 혹은 두 방향으로 분배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움직임의 총합을 ‘4-속도’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공간적으로 ‘정지해 있다’고 느낄 때는, 사실 우리의 4-속도 대부분이 ‘시간 축’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시간을 따라 미래로 광속과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공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일수록, 우리의 4-속도 중 공간 축 성분이 커지고 시간 축 성분은 줄어들게 됩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 즉 ‘시간 지연’으로 나타납니다.
빛의 입자인 ‘광자’의 경우, 모든 4-속도가 공간 축에만 할애됩니다. 즉, 광자는 시간 축 방향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습니다. 외부 관찰자에게는 태양 빛이 지구까지 오는 데 약 8분이라는 유한한 시간이 걸리지만, 광자 자신에게는 출발과 도착이 동시에 일어나는 하나의 순간일 뿐입니다. 저 멀리 다른 은하에서 출발한 빛의 수십억 년이라는 우주의 긴 여정도 광자의 입장에서는 단 한 점의 시간으로 압축되는 것이지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로렌츠 인자는 극적으로 커지는데, 광속에 도달하면 무한대가 됩니다. 이는 광자의 관점에서 시간 팽창이 무한대가 되고, 운동 방향의 공간은 운동 방향으로 완전히 수축하여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규철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면, 광자의 세계는 “영원이 순간에 갇히고, 무한은 점에 갇힌 세계”입니다.
요악하자면, 우리는 언제라도 시공간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광속의 여정 길에 올랐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공간 개념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세상 한가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나름의 전력(광속이자 최대 속도)으로 울고 웃으며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가능한 최악의 세계도 최선의 세계도 아니며, 세계는 대안 없이 하나다.”
+ 똑딱임: 책 <1초의 탄생에서> 시간 측정의 역사는 표준적인 똑딱임과 그것을 모델화한 수단이 축적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포유류의 심장이 평생 뛰는 횟수는 평균 15억 회며, 인간의 경우 수명이 늘어나면서, 평균적으로 심장이 15~30억 번 뛰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15~30억 번의 똑딱임을 가진 셈입니다.
++ 하이데거는 우리는 시간을 소유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순간 그 자체’이며, 시간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아인슈타인이 본 공간과 시간, 물질과 에너지
특수상대성이론: 시간과 공간은 분리할 수 없으며, 서로 얽혀 있어 하나의 통일된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일반상대성 이론 및 장 방정식: 중력장과 시공간은 구분할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시공간의 형태는 물질과 에너지, 즉 중력장에 의해 결정된다. 동시에, 중력장은 시공간의 특정 형태(곡률)를 의미한다. (물질이 시공간에게 어떻게 휘어야 할지 알려주고, 시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알려준다. 시공간은 단순한 컨테이너나 배경이 아니라, 동적인 실체다.)
또한, 질량 에너지 동등성(질량과 에너지는 상호 전환될 수 있음) 및 열역학 1법칙 (에너지 및 질량 보존 법칙)에 따라서 시간과 공간,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