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혼내기에 대해서

by 밈바이러스

무라카와 나오카에 따르면 “혼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은 일종의 의존증에 가깝”습니다. 우선 혼내기란 일단 권력의 비대칭성에 기인합니다. 보통은 혼내는 사람이 상급자고, 혼나는 사람이 하급자입니다. 혼낼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은, “나는 높은 지위에 있고, 내가 옳고,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이며, 너는 배워야하니 너를 통제할 거야”가 됩니다.


사람은 남을 혼낼 때 뇌의 보상 회로(배측선조체)가 활성화 됩니다. 이 부위의 활성화가 클수록 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상대방을 처벌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처벌 욕구) 무라카와에 따르면, 혼내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점점 더 혼내기에 의존하게 됩니다. 우리는 심지어 혼내지 않는 사람을 혼내며, 혼내는 사람도 혼내는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동시에 쉽게 제3자 처벌에 가담하기도 합니다(대중 처벌과 동조 효과, “우리는 나쁜 사람들에게 엄벌을 내리는 정의의 수호자입니다.”)





나는 그렇게 강해졌다: 생존자 편향

생존자 편향이란 실패하거나 도태된 사람들의 경험은 고려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례만을 근거로 판단하는 인식의 오류’를 말합니다. 실제로 혼내기에 의존하는 환경, 즉 지속적인 질책과 억압 속에서도 이를 견디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혼나는 과정을 통해 강해져다고 느낄 수 있으며, 그 기억이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의미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환경 속에서 상처받고 좌절하며, 스스로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는 목소리는 주로 발언할 수 있는 사람들, 즉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더 많은 주목을 받고, 더 큰 발언권을 지니게 됩니다. 혼나는 과정을 통해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말하지 못한 다수의 상처와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요?

- 무라카와 나오토, <왜 우리는 남을 혼내는 것을 멈추지 못할까>



절대 다수를 메말라 죽게 하는 능력주의와 목적주의적 사고, 그리고 시스템과 구조를 뜯어고치기는 어렵지만, 언더독의 노력과 능력에 상찬하며 우상화하기는 쉽습니다. 조용히 시스템의 일부로서 종속하다가 죽어야 잠시 보이는 사람이 있고, 역경을 딛고 일어난 신화처럼 눈부신 성공에 계속해 화자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삐끗 달랐을 뿐인데. 제가 우상에게 보낸 열렬한 박수는 어쩌면, 동시에 누군가를 때려잡는 손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4화H. 일단 축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