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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Jun 24. 2021

포춘 쿠키

단편, 이야기

0.

포춘쿠키

포춘쿠키를 반으로 뽀갰을 때 나오는 운세 종이처럼 내 두개골을 쪼개고 손을 뇌에 찔러 넣어 주물럭 뒤적이다 보면 종이 한 장이 나온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종이에 나의 운명과도 같은 내 인생의 테마가 한 단어로 적혀 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 단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얼추 그 단어에 적힌 대로 살게 되도록 원초적으로 유전전자에 프로그래밍돼 있다고 했을 때. 만약에 그런 것이 실재한다면, 내 인생의 테마로 시시껄렁보다 더 적합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겠지.         
                                                     
                                                       2021.03.13    


1.

민수는 거의 아무도 보지 않는 자신의 블로그에 정말 가끔씩이지만 내킬 때, 꽤나 괴팍한 글을 올리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거의 오르지 않는 좋아요기다리곤 한다.


2.

'시시껄렁해', '시시가 껄렁해', '껄렁이는 시시함'.
민수는 주변 친구들의 지겹다는 말에도

아랑곳 않고 위의 말버릇을 끊임없이 되풀이하고

카톡 단톡방에도 꾸준히 올린. 그는 요새 지나치게 시시껄렁하다는 말에 꽂혀 있다.


3.

그는 요 근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가끔 단편적인 글이나 자기반성적인 시를 쓰고 올릴 뿐이었다.


4.

누군가 그의  포춘쿠키 글에 '좋아요' 했다는 알람이 떴다. 기본 프로필 사진에 대충대충인 듯한 닉네임. 좋아요와 함께 댓글까지 달렸다. 그 댓글은 곧바로 삭제되어 확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5.

그는 망치로 사람의 두개골을 깨부수는 데에 도가 텄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손을 거쳐간 두개골의 수만큼 누적된 경험이 그를 숙달시켰다. 그렇게 깨부수어진 사람의 머리통은 그의 반지하의 좁은 작업실로 운송됐다.


6.
그는 사람의 머리통에서 파낸 뇌를, 그중에서도 편도체를, 물과 중탕시키다가 으깨고 이를 계란과 밀가루, 버터와 설탕과 함께 반죽다. 또, 반죽을 치대다가 밀대로 밀고 포춘쿠키의 모양을 내주며 그 속에 기름질 종이 한 장을 끼워 넣는다. 오븐에서 적당히 구워내면 그럴싸한 쿠키가 완성된다. 그는 그것을 낱개로 포장한 뒤, 재료를 내어준 인간의 지인에게 배송한다.


7.

어느 날 딸이 사라졌고, 다음 주에 그 부모에게 의문의 포춘쿠키가 배송됐다. 딸의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도, 전 남자 친구에게도, 그녀의 과외 학생에게도 배달됐다고 한다. 과외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빠그작, 쿠키를 부수었다.

8.
조사를 맡은 경찰은 작은 종이 쪼가리를 집어들며 난해한 표정을 짓는다.


9.

민수는 요새 만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발견해준 사람. 어째서인지 자신에 대한 것을 구하는 사람.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실제로 자신을 찾아온 사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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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너를 만나게 된 것일까. 너는 영특했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반듯했다. 나는 너를 차마 깨부술 수가 없었다. 너의 반듯함이 나의 범죄를 멈췄다.


11.

수현은, 민수 블로그의 첫 번째 구독자였다. 수현은 민수의 시잘데기 없는 글들에 반응해주었다. 민수는 그런 수현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과 얼굴도 모른 채, 텍스트만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민수는 수현과 자신이 공명 진동수를 공유한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통화와, 실제로 만난 이후, 그 예감은 확신이 되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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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아이디어를 포착했다.


13.

어느 날, 민수가 블로그에 올렸던 글, 포춘쿠키유튜브에 담기면서, 민수의 블로그는 엄청난 폭격을 맞았다. 세간에 무관심한 민수는 그제서야 쿠키 굽는 인간의 존재를 인식했다. 민수의 블로그는 민수가 범인이 아니냐는 댓글부터, 민수가 범인이 확정인 양 욕설 및 패드립이 담긴 댓글들의 폭격을 받았다. 민수는 겁을 잔뜩 먹고 블로그를 비공개 처리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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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껄렁한 데에 다채로운 이유가 필요한가. 그냥 단순히 모든 것이 무채색으로 보인다. 내가 핸드폰 이용을 줄이기 위해 핸드폰 디스플레이를 흑백으로 해두었듯이. 가상과 실제는 분명히 구별해두어야 한다는 것이 내 신조이기 때문에. 아무튼 내 주변의, 그리고 내 앞길의 모든 것들이 그저 무채색으로 보였다.


15.

요 근래에 수현은 연락두절이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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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색깔 입은 사람들이 간혹 내 눈에 들어오는 거야. 내 뇌는 금세 흥미를 잃어 영원할 것 같았던 너의 색도 금세 벗겨져. 보통의 센서가 망가진 거지. 모든 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말도 있더라고.


17.

민수는 요즘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올렸던 글과, 화제의 쿠키 굽는 남자의 존재. 설마 자신의 똥과도 같은 글에 어떤 미친 사이코패스가 영감이라도 받은 것인가? 왜 자신이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숨어 지내야 하는 것인가. 민수의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요새 민수의 휴대폰에 전화가 끊이질 않아서 민수는 휴대폰 번호를 정지해두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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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가는, 끌리는 사람을 포착하고 알아가다가, 그 역시 별 볼일 없는 시시한 사람이라고 결론이 나면, 구워버렸다. 나는 사람의 뇌에 아주 관심이 많다. 사람의 뇌라는 게 여간 복잡하지 않은가. 나는 알 수 없어서 으깨버렸다. 그의 인생을 종결시키고 테마를 한 단어로 규정지었다. 어차피 내가 보기에 그들은 그 단어 이상의 인생을 살 수가 없어서, 오히려 객관적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열려 있을 때, 좌절하기 전에 안식을 선사한 것이니 구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죽음은 안락한 것이다. 그들의 승화는 곧 나의 구원이다. 나의 존재에 의미가 부여된 것 아닌가. 서로 구원받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19.

민수는 자신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20.

수현이 연락두절되고 나흘 뒤. 민수에게 쿠키가 배달됐다. 영감을 불어넣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의 단어를 확인해달라는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21.

민수가 쿠키를 받은 그날 저녁에, 누군가가  민수의 자취방에 찾아왔다.


22.

그는 유튜버, 해결사 용성이었다. 사건을 해결해주는 콘텐츠로 흥행하고 있는 초대형 유튜버. 실제로, 그는 민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올렸는지 한차례씩 읽어보는, 한발 더 앞서 범인의 정체를 알아낸 이력이 여러 번 있다. 그의 인맥과, 구독자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23.

그는 민수의 글을 이미 알고 있었다. 민수의 글이 심상치 않다는 제보를 수없이 받았던 터였다. 용성은 다른 수많은 제보를 통해 이미 범인을 꽤나 좁혀놓은 상태였다. 이제 용성에게 필요한 퍼즐 피스는 한두 조각. 용성은 민수에게, 고작 5였던 조회수에 좋아요가 두 개 달렸었는데, 혹시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냐고 물어왔다.


24.

상일동 먼지. 대충 지은듯한 닉네임을, 민수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민수는 어째,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그 부분은 용성에게 흘리지 않았다. 되려, 민수는 용성에게 듬성 듬성이지만, 쿠키 굽는 인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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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보다 민수가 빨랐다. 민수는 상일동 반지하의, 쿠키 굽는 인간의 작업실을 찾아낼 수 있었다.


26.

민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들이 어떤 글을 올렸는지 한차례씩 읽어보곤 했다.


27.

그는 나와 너무나 닮은꼴이었다.
마치 내가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민수는 쿠키 굽는 인간과 자신이 너무 닮아있음을, 그가 올린 글을 통해 알고 있었다.


.28

민수는 쿠키 굽는 인간, 상일동 먼지의 반지하 방에 도달했다. 어째서인지 문이 열려 있었으며, 남자가 하나 묶여있었다. 민수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고, 쿠키 굽는 인간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29

민수는 늘 해왔던 일이라는 듯, 쿠키 굽는 인간의 뇌를 통째로 재료로 사용해 능숙하게 십 개의 쿠키를 모양내고, 오븐에 넣었다. 시시껄렁한 인간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그에게 걸맞은 테마는 시시껄렁. 쿠키 굽는 인간의 PC에는 그동안 쿠키를 전달받은 사람들의 주소록이 엑셀 파일로 정리되어 있었다. 민수는 구워낸 쿠키를 주소록에 담겨 있던 사람들의 주소지로 어떻게 보낼까에 대해 멍하니 생각하며 오븐의 작동 완료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누군가 들이닥쳤다. 경찰이었다.


30.

예, 제가 했습니다.


31.

모두 민수의 꿈이었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허탈했다. 영웅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무의식의 저변에 살포시 깔려있었던 것인가. 영웅은 무슨, 민수는 별 볼 일 없는 관찰자 인생을 영위하다 갈 운명이었다.


32.

쿠키 굽는 남자를 잡아낸 것은 경찰도, 용성도, 민수도 아니었다. 그는 자백해왔다. 그는 수현을 작업한 이후, 쏟아져오는 허탈감을 견뎌낼 수 없었다고 한다. 수현을 만나고 나서, 정말 그만둘 기회가 있었는데, 차마 순간의 시시껄렁함을 못 참고 깨뜨려버렸다고 했다. 반듯했던, 수현을.


33.

민수는 꿈을 곱씹었다. 허무감이 배어 나올 뿐, 정말 그 외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주머니에 볼록히 들어있는 것이 신경 쓰였다. 수현의 쿠키 봉지였다.


34.

아그작. 민수 자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다만 적당히 삼켜버렸다. 내용물도 확인하지 않은 채.


35.

민수는 메모장을 켜서, 수현에 대한 메모를 뒤적인다.


36.

나는 처음부터 너에게 끌렸었다.
너는 설정부터 비범치가 않았다.
너는 단언컨대 너무나도 특수한 존재였다.


37.

민수가 수현과 알고 지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만큼, 수현과의 관계의 가능성은 정말 미지수로 남았다. 수현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민수를 지나쳐버렸다. 민수는 다만, 뻑 꿈뻑.


38.

쿠키 굽는 남자의 메모장은 세간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의 메모장은, 그에 대한 사회의 몰매의 장작불을 더욱 활활 지폈다.


39.

민수는 허무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살아가다가, 대학의 한 교양 수업에서, 꼭 알고 싶은 사람과 마주한다.


40.

하지만 역시,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았다. 수현을 대체할 수 없었다. 민수는 일어날 수 있었던,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던 가능성들에 대해 곱씹으며 살아간다.


41.

민수는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싶다. 그가 다시 시작한 블로그에 올린 글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게 울려 퍼지고 있다.


42.

이야기는 나의 또 하나의 가능성.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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