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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Jun 20. 2022

더 플랫폼(2020)

영화 리뷰, sf

세계적인 쉐프들이 엄선된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주인공은 수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2인 1실의 방에서 눈을 뜬다.
하루에 한번 내려오는 산해진미의 음식 밥상. 주인공과 그의 첫 룸메이트(?) 할아버지


주인공은 낯선 환경에 어리둥절했지만, 할아버지는 환경이 익숙해 보이는 듯했다. 둘이 통성명을 하는 도화로운 산해진미 밥상이 내려왔는데, 주인공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전부 먹다 남은 음식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음식이 내려올 때쯤 맞추어 익숙하다는 듯 베개를 방석 삼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주인공은 멀뚱멀뚱 할아버지의 먹는 모습을 보며 어렴풋이 상황을 눈치챈 듯했다.


음식은 꼭대기층부터 해서 차례차례 내려오며, 아래 있는 사람들은 위층 사람들이 먹고 남은 것을 먹어야 하는 구조. 밑바닥층까지 음식이 남아나질 않을 터였다. 다만 주인공이 머무는 방은 레벨 48. 운이 좋았다. 비교적 높은 층이라 먹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주인공은 밥상이 내려가기 전에 과일을 하나 챙겼는데, 이곳의 규칙으로, 음식물은 방안에 남아있으면 안 됐다.  방은 급속도로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규칙을 이해한 주인공은 과일을 아래층으로 던진다.


주인공은 할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주인공이 알려주는 만큼만 정보를 주겠다고 했다. 주인공은 이 감옥에 가져올 수 있는 단 하나의 물건으로 책 돈키호테를 가져왔으며, 이를 할아버지에게 읽어주며 친해진다. 먹을 것도 넉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어느 날 무엇인가 아래로 휙 떨어졌고 주인공은 그것이 사람이었음을 눈치채고 패닉에 빠진다.


어느 날은 음식과 함께 어느 여자가 내려왔는데, 그 여자는 주인공의 질문에 아무런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말로는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온다며, 자신의 딸을 룸메이트로 만나기 위해, 기존의 룸메이트는 매달 죽인다고 했다. 49층으로 여자와 밥상은 내려갔고, 49층의 두 사람은 합심해서 여자를 겁탈하려 했으나, 날붙이를 들고 있던 여자는 되려 그들을 제압하고 죽인다.


이곳의 또 다른 규칙. 방은 한 달마다 바뀐다. 주인공과 그의 룸메이트는 한 달간 레벨 48에서 잠시 머무르다 다른 층으로 이동할 운명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주인공도 할아버지에 동화되어 처음에는 과일 정도만 주워 먹었던 주인공도 게걸스럽게 거리낌 없이 먹어치워 대기 시작했고, 그들의 위층은 심심함에 서로를 죽이고, 아래층에서는 굶어 죽어가거나 서로 잡아먹는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그쯤 해서, 한 달이 다 되었고 그들은 가스에 정신을 잃었다. 층 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눈을 뜨고 나니 주인공은 자신이 묶여있음을 깨닫는다. 가스에 익숙한 할아버지가 먼저 깨어나 주인공을 묶어두었던 것이다. 128층.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숫자였다. 할아버지는, 주인공의 고개를 돌려서, 빈 그릇만 내려오는 128층의 현실을 보여주고는, 일주일 정도는 굶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 후에는 주인공의 살을 일정 부분 도려 내어 같이 나눠줄 테니 협조해달라고 말을 건넸다.


주인공은 처음에 강하게 몸부림치다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체념해버린다. 얼마 뒤, 할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양해를 구하고 살을 도려낸다. 주인공은 이 행위의 책임은 탑의 관리자도, 위층 사람들도 아닌 할아버지라고 울부짖는다. 때 맞추어, 아이를 찾는 여자가 밥상에서 내려 할아버지에게 치명상을 주며 떼어내고, 실성한 주인공은 할아버지의 칼을 주워 들고 무참히 할아버지를 도륙 낸다. 여자는 할아버지의 시체에서 살점을 발라내어 주인공의 입에 밀어 넣어주고 물까지 떠다주며 주인공을 보살피다 다음 층으로 내려간다.  주인공은 구더기 들끓는 할아버지의 살점으로 연명하다 한 달을 채워 33층에서 눈을 뜬다.


33층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룸메이트를 만난다. 근데 자세히 보니 이 감옥의 직원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오래 일하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직접 경험해보니 이곳은 처참한 지옥 그 자체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아래층을 설득하는 방식으로 자발적 연대(모두가 음식을 나눌 수 있게 양심껏 먹기)를 주도하고 싶어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녀는 아래층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보다 운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여기서 잠깐, 이 환경은 극단적으로 수직적으로 계층적이고 이 계층을 뛰어넘을 방법은 한 달에 한번 있는 뽑기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파이는 정해져 있고 위층에 있는 운 좋은 사람들은 전체 파이에서 먹고 싶은 것을 쏙쏙 골라먹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와 크게 다를까?


우물 안 개구리의 소견일지도 모르지만, 태어나 보니 이 세상은 이미 잘 돌아가고 있었고, 내가 여기에 주도적으로 낄 자리는 없어 보였다. 기껏해야 숟가락 얹기 정도밖에 할 수가 없다.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주는 것이 현실이고, 노동은 점점 기계에 의해 대체되어간다. 가치 창출은 공룡 기업, 유니콘 급 스타트업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와 경쟁하기란 정말 계란으로 바위 치기로 보인다.


차이가 있다면 층 이동이 달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태어날 때 최초 1회만 이루어진다. 애석한 말이지만 이것은 현실 아닌가. 누구는 강남 자가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달동네에서 태어난다. 자신의 순수 노력으로 이 간극을 메울 자신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오히려 기회도 돈 많은 사람한테 더 많이 돌아간다. 그리고 능력을 키운다고 해도, 낮게 열린 열매는 이미 누가 따먹은 상황이다. 높게 열린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는 엄청난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최초 태어난 층에서 평생 머물다 죽는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다시, 주인공의 새 룸메이트는 사실 암이 진행될 대로 진행되어 있었고,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간다. 30일이 지났고, 주인공은 일어나서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동시에 마주한다. 208층이었으며, 룸메이트는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그냥 투신해서 죽을 수도 있었을 텐데, 주인공에게 선물을 주고 떠난 것이다. 주인공은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잡고 견뎌보지만 굶주림에 눈이 돌아가버리고 만다. 또 30일이 지났다.


주인공은 그의 새로운 룸메이트의 호들갑에 눈을 뜬다. 6층이다. 룸메이트는 밧줄을 소지하고 있었는데, 0층으로 올라가 탈출할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5층 사람들에게 열렬히 설득한다. 자신을 도와주면 신의 가호가 평생 따를 것이라고. 하지만 5층 사람들은 도와주는 척 밧줄을 놓아버리고 지하까지 추락할뻔한 룸메이트를 주인공이 구해준다.


주인공은 극심한 환경과 충격적인 사건들 사이에서 할아버지와 전 직원이 나오는 환각에 고군분투한다. 그러는 도중 자신이 6층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며 사람들에게 배식을 해줘야겠다는 미친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주인공은 룸메이트와 함께 내려가며 온갖 지옥 같은 풍경을 본다. 그러다가 룸메이트는 스승님이 있는 층에서 깨달음을 받고, 각인시킨다. "0층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라!" 룸메이트는 판나 코타라는 디저트를 끝까지 사수해 위로 올려 보내겠다는 결심을 한다.


둘은 치명상을 입어가며 밑바닥 층에 도달한다. 그런데 왠 걸, 사람이 없는 층에는 서지 않는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아이가 침대 밑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룸메이트는 판나 코타를 끝까지 지키려다가 굶주린 소녀에게 판나 코타를 내민다. 룸메이트는 과다 출혈로 죽어가며 소녀가 메시지라고 중얼거린다. 원래 이 탑에는 16세 이하의 아이가 들어올 수가 없는데 시스템에 허점이 있던 것이다.


죽어가는 주인공은 소녀와 함께 0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겸 밥상에 올라탄다. 주인공은 환각에서 할아버지와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할아버지가 너(전달자)는 필요 없다고 하고 주인공은 인정한다. 주인공과 할아버지가 어깨동무를 하고 퇴장하는 것을 연출하며, 또 소녀를 태운 엘리베이터가 올라갈 준비를 하며 빛을 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현대 사회를 빗댄 잔인한 성인 동화 같았다. 언제 아래층에 배정될지 모르며 벌벌 떠는 위층 사람들은 이때다 싶어서 이기심에 필요 이상으로 음식을 먹어치우고, 운이 나빠 아래층에 배정된 사람은 말라죽는다. 위층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위층 사람들에게 분노하면서도 아래층 사람들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감옥의 관리자는 이 모든 것을 보고만 있다. 심지어 최약체인 소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는지, 못 본 척 한건 지도 잘 모르겠다. 90분의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느끼게 된 영화였다. 요 근래 아이들은 장래희망이 무엇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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