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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Sep 15. 2022

나의 바다, 나의 청새치

노인과 바다를 읽고


0.

평생 동안 크고 작은 물고기를 낚아온 베테랑 어부인 노인은 84일 동안 월척을 낚지 못한 채 조각배를 타고 홀로 먼바다로 나간다. 삼 일간의 밤낮 없는 사투 끝에 그의 생에 있어 가장 큰 청새치를 잡지만,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상어 떼에 의해 청새치는 머리와 뼈만 남아 버렸다.


1.

나는 이 늙은 어부의 이야기를 이렇게 받아들였다.

“당신은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평생에 걸쳐 어떤 물고기와 사투를 벌일 것인가”    


2.

'내 선택은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닿지 못하는 그곳에 가서 너를 찾아내는 것이었어.'

'아쉽지만 너도 나도, 도움을 구할 이는 없다.'

노인은 그 청새치는 자신만이 만날 수 있고, 그 청새치와의 사투는 혼자 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청새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저마다의 인생 숙제가 아닌가 싶었다.    


3.

‘노인은 바다 저편을 바라보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외로운 지 깨달았다.’

‘지금은 한 가지만 생각할 때야. 내가 태어나서부터 잘한 일 말이지.’

‘지금 네게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여기에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있다. 숙제는 고독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서야 진정하게 설정할 수 있고, 각자 중요히 여기는 가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숙제를 해가는 과정 역시도 고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거창한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좋다. 주어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나가면 된다.    


4.

노인은 그 거대한 청새치를 잡기 위해 그가 평생에 걸쳐 익혀온 크고 작은 기술들을 전부 발휘한다. 그가 지금껏의 어부 경험을 통해 익혀온 기술과 길러온 상황 대처 능력은, 오직 그 거대한 청새치를 잡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숙제를 제대로 설정했다면, 지난 삶과 경험이 알게 모르게 발판이나 도구가 되어 줄 것이다.    


5.

청새치와 분투 중인 노인의 조각배 위에 지친 휘파람새가 내려앉는다. 노인은 생각한다.

‘넌 몇 살이나 먹었니, 너희 새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 그래? 너희를 맞으러 이 먼바다까지 행차하는 매한테 가려나?’

하지만 노인은 그런 말을 새에다 대고는 절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뿐더러 이제 머지않아 매에 관해 저 스스로 알게 될 터였다. 사람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많다. 몸으로 겪어봐야 충실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너도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사람이나 새나 물고기처럼, 너도 네 몫의 기회를 잡아보렴”

태어난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확실하게 잡아보라고, 젊은이들에게 해주는 조언 같다.    


6.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인내할 수 있는지 저 물고기에게 보여주고 말겠어'

'물고기야. 내 죽을 때까지 너와 함께 해주마'

'나 죽을 때까지 싸우리라'

인간 승리의 의지와, 이미 늙고 지쳤음에도, 평생의 숙제를 끝까지 끌고 가겠다는 노인의 의지를 보았다.    


7.

‘노인은 몸이 뜯겨난 물고기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물고기가 습격을 받던 순간은 꼭 자신이 당하는 것만 같았다.’

노인은 결국 청새치의 목숨을 끊는 데에 성공하고 배 옆에 묶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어 떼와 사투하지만 결국에는 청새치의 살을 전부 내어주게 된다. 상어 떼는 무엇을 상징할까. 숙제의 가치를 멋대로 훼손하려는 공격적인 사람들로 이해했다. 노인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실현한 가치가 공격을 받으니까 청새치에 이입돼서 아팠던 것이다.    


8.

'나는 무엇에 패배했나? 아무것에도 패하지 않았어.'

결국 청새치는 머리와 뼈만 남았지만 노인은 자신이 절대로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인은 처음 한 두 마리의 상어는 필사적으로 때려잡지만 대항할 수단이 사라진 나중에 가서는, 상어 떼에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집으로 돌아가는 데에 집중한다. 상어 떼에게 살점을 빼앗겼으면 어떠한가. 노인이 혼자의 힘으로 청새치를 잡아낸 것은 사실이다. 그 증거로 생선의 머리와 뼈가 남았다. 그리고 증거가 없다 하더라도, 노인이 그 사실을 알뿐더러, 꼭 남에게 입증해야 할 필요는 없다.    


9.

'희망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야'

'이리 늙은 지금도 문제없어'

살아만 있다면 다음이 있다. 나도 아직은 조금 더 살아야겠다. 그리고 또, 급할 필요 없다. 나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10.

'인간은 파괴당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떠한 시도라도 해봤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그리고 죽더라도 다음을 잇는 사람이 있다. 노인을 제 할아버지처럼 보살피고, 어린 시절부터 노인에게 낚시를 배웠던 소년이 노인을 이어 또 소년의 청새치를 잡을 것이다.


나 또한 고독하게 인내심을 갖고, 평생에 걸쳐서 나의 바다에서 청새치를 낚아 올리리라. 막상 잡아 올렸을 때 작든 크든, 실패했든, 청새치에게 끌려가 바닷속에서 익사한들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나도 무엇인가를 이어보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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