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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Jul 09. 2022

악마의 심판

이야기, 도둑

초등 시절 문방구에서 딱지를 훔치는 것이 시작이었다. 딱지는 팽이가 되었고 팽이는 레고가 되었으며 레고는 건담이 되었다. 민수는 나름 명문대학교의 학생이 되었음에도, 그의 도벽 기질은 멈출 줄 몰랐다.


그는 이런 자신의 절도 행위에 희열을 느꼈다.
그 다른 무엇도 그를 이만큼 흥분 상태에 놓이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편의점에서도, 잡화점에서도 스리슬쩍 숨 쉬듯 자연스럽게
그의 욕구를 채워나갔다. 그의 솜씨는 이미 프로 수준을 넘어섰다.

한편, 민수는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불안에 떨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갑갑한 마음에 호로요이를 홀짝이며 새벽에 홀로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금은방을 지나친다. 민수는 그날, 책임 없는 쾌락에 온 몸을 지배당한다.

다음날 7급 공무원 시험 결과가 나왔고, 민수는 합격이었다. 민수는 얼떨떨해있었으며 그 순간 누군가 민수의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경찰이었다.

사실 민수는 엄청난 불안에 흽싸여 있었다. 자기가 이제껏 저질러 왔던 모든 죄악들을 감내해야 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만두자 그만두자 하면서도 민수는 계속해서 일을 저질러 왔다. 드디어 그날이 도래했고 민수는 묘한 안심을 얻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다만 바보 같은 생각이 문득 그의 머릿속을 지나쳤다.

'어렸을 적 딱지를 훔칠 때 문방구 아저씨한테 들켜 부모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면 이 사단은 나지 않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빨리 들켰다면 좋았을 텐데. 민수는 좌절했고 오열하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조심하시라. 악마는 욕심 많은 사람들을 항상 주시하고 있다. 사람이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순간을 희희덕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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