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수업 들으러 학교 가는 길, 빠듯하게 나왔지만 괜찮다. 출석 체크가 없는 수업이므로.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다. 전장연 지하철 시위로 지하철이 중간에 멈춘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나왔다. 서울 지하철이 참 편리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학교에 버스로 가보기는 처음이다. 버스 앞문에서 승차하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런데, 버스가 오자마자 사람들이 뒷문으로 달려들었다. 흡사 좀비 떼였다.
줄 앞쪽에 서 있었는데도 버스를 보내고 나니 당황스러웠다. 다음 버스 때는 나도 참지 못하고 뒷문을 비집고 들어갔다. 전쟁터였다. 버스에 사람이 꽉꽉 들어찼다.
“계단(출입문 계단)에 서 있으면 버스 문이 안 닫혀요!!” 버스 기사는 매 정거장마다 소리쳐야 했다. 그렇게 자리가 없는데도 자신까지는 버스에 타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낑겨있으면서 불현듯, 하나의 질문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게 까지 해서 가고 싶은 곳이 있는 거야?” 다들 그렇게 바삐 어디로 가는 걸까. 아마 가야만 하는 곳에 가기 위해 치열한 것이리라. 그럼 그다음 목적지는?
타의와는 관계없이 가고 싶은 곳이 있을까? 보고 싶은 풍경이 있는 걸까? 그곳은 어떤 경치지? 어떤 경치와 어우러지며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 걸까. 그들이 맹목적으로 달려서 다다를 곳은 나락이 아닐까? 어차피 이르나 늦으나 사신(死神)의 인도를 받을 운명일 텐데.
그럼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딱히 가고 싶은 데는 없다. 사실 별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오늘 딱히 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았다. 우리의 뇌는 다음에 할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며, 주변을 살피게 하고 정보를 흡입하게 만든다. 나 역시 그런 뇌를 마비시키기 위해 열심히 게임도 하고 유튜브를 본다. 책도 읽고 노래도 듣는다.
싫다 싫어. 모든 것이 갑자기 헛되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밥 먹여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도 사회에서 자리를 얻지 못할까 불안할 때 있었는데 요새는 왠지 그 불안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내 인생 비상인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혁명을 일으키고 싶다. 무위(無爲)의 미학을 최고의 가치로 쳐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남은 몰라도 적어도 자신까지는, 늦지 않게, 또, 낙오되지 않게 가야만 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려는, 한 자리하려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