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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론자 Nov 18. 2022

바라봄의 실종

유령 같은 사람들

지하철에서 정말 특이한 경험을 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은 아이를 5분 동안 바라봤고, 그 아이도 나를 5분 동안 바라봤다. 우리는 서로 눈 마주쳤고, 눈 돌리지 않았다.


아이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바라봄의 대상은?

스마트폰이었다. 요즘 아이랑 같이 다니면서

아이를 바라보지 않고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양육자의 모습이 종종 보인다. 분명히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는데, 정신이 머무르는 곳은 여기가 아닌 가상공간이다.


지금 여기, 아이와 실존하는 현실에 집중하지 않고

정보로 디지털화된 세계에 정신 팔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바라보여짐임을 필요로 한다. 양육자가 아이를 바라보지 않으면 누가 이 아이를 바라본단 말인가.


디지털화된 세계는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디지털화된 세계는 무엇이든지 ‘처분’ 가능하다.

보기 싫은 정보는 관심 없음 버튼으로 처분하고

소통하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차단하면 된다.

원하는 것만을 취할 수 있는 세계다.


정보뿐만이 아니라 사람마저 손쉽게 처분 가능해지고, 타자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로 전락한다. 우리는 독단자가 되어버리기 너무나 쉽다. 나는 이 아이에게서 어렴풋한 희망을 느꼈다.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이 독재자가 될 수 있는 세계에 물들지 않았구나, 아직 바라봄으로써의 타자로 존재하는구나. 


하지만 이 아이가 자라 가상공간에서 많은 시간 머무를 것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다. 모두가 정보 획득과 소통에 도취되고 진심인 시대. 그러나 정보 획득과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은 디지털 세계.


우리는 현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다.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아이가 내린 뒤 나는 눈 마주칠 또 다른 상대를 포착했다. 나도 사람 눈 마주치기를 잘 못해서 어색했지만, 온화한 마음으로 그 낯선 타자와 눈 마주쳤다.


*한병철 철학자의 책 '사물의 소멸' 내용이 반영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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