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통영에서 쓴 편지
통영 중앙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쳤다. 시인 유치환이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 통의 편지를 부쳤던 곳이라고 우체통 옆에 팻말이 적혀있었다. 다른 날의 편지를 부칠 때 보다 먼 거리에서 서울로 보내는 편지라는 점, 한 시인이 5천여 통의 편지를 부쳤던 의미 있는 곳에서 편지를 보낸다는 점 등이 이 편지를 쓰는 행위에 대해서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편지는 약 2년 전쯤, 요조 작가와 임경선 작가의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책방 무사에서 구매했던 책이었다. 그때 당시에 독립서점에 가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의 책을 한 권씩 사는 것이 나만의 룰이었는데, 그 룰 때문에 구매하게 되었던 책이 내 인생과 동료들에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이야.
2년 전쯤 나는 전전 직장동료들과 소소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임에서 얘기를 하다 보면 이직, 결혼 등의 환경의 변화로 힘들어하는 우리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었다. 결혼 후 집들이 모임을 했던 한 동료의 집에 갈 때, 내가 읽었던 그 책을 선물했다. 두 명의 여성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위로받는 그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항상 일을 벌이는 내 입은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우리도 이렇게 편지 써볼래요?
요조&임경선 작가는 메일을 통해 서로의 일상과 안부를 나누었다. 우리의 매체는 어떤 것이 좋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나눴다. 아날로그 감성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는 결론에 손편지를 네 명이서 서로 돌아가면서 쓰기로 했다. 바쁘게 치여가는 삶에 편지가 세 달만에 한 번씩 돌아오기도 했고, 빠를 때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돌아왔다.
네 명이서 편지를 쓰다 보니 두 명이서 편지를 쓰고 답장하는 것과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편지를 쓴 사람의 글 밑에 각자의 색을 지정해서 펜으로 댓글을 남기기로 했다. 답장은 댓글로, 편지는 다시 이어서. 그러다 보니 편지가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과 더불어 그날의 나의 기분, 감정, 최근의 사건 등이 가득 담긴 일기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돌아온 편지를 읽어보면 나의 사적인 일기장에 공감하며 달아주는 댓글들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통영에서의 기분, 감정, 그날의 날씨 등 하루가 오롯이 담긴 편지를 위해 포에티크에 들렀다. 포에티크는 통제영 맞은편에 위치한 작은 소품샵이다. 노우경 작가가 그린 통영과 관련된 일러스트 엽서, 스티커, 노트 등 굿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충무김밥 책을 읽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귀여운 충무김밥에 꽂혀버렸다. 편지에 붙일 스티커를 사러 갔다가 엽서와 노트까지 충동구매해버렸다.
편지를 쓰는 시간과 장소도 편지에 다 남는다. 지난번 여행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냈던 카페 하치에 다시 방문했다. 그때 맛보지 못했던 버터바를 먹으며, 달달한 기분으로 편지를 써 내려갔다. 편지를 쓸 때 하치가 점핑을 한 번씩 해서 아마 편지에 하치 이야기도 적었던 것 같다.(하치는 카페 사장님의 반려 강아지 이름이다.) 통영에서의 즐거운 순간들을 눌러 담아서 전달할 수 있어 행복했다.
내가 요조와 임경선 작가의 책을 읽고 삶이 변화한 것처럼, 이 글을 읽고 통영을 방문하는 누군가가 편지를 써본다면 좋겠다. 단순한 카페 투어에서 벗어나 나만의 추억이 생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