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2 노고단

간단 여행기 1

by 호랑이아저씨

사진 한 컷에 짤막한 기억 한토막을 담아 보기로 했다.

첫번째는 지리산 노고단이다.


전날 실상사 인근 선돌마을에서 밤을 보냈다.

좋은 숙소를 찾아 막걸리와 돼지목살을 기분 좋게 먹었다.

지리산물로 만든 막걸리라 맛이 더 깔끔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


차를 직접 몰고 지리산을 간 것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백사실 계곡에 다다르자 어렸을 적 가본지는 몰라도 처음 보는 광경이 이어졌다.

깊은 계곡, 커다란 바위.

북한산이 만든 계곡 따위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계곡.


성삼재까지 차를 몰고 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칼바람이 우리를 맞았다.

단단히 무장하고, 끼지도 않던 장갑을 끼고 오르막을 올랐다.


등산이라하기 애매한 경사와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노고단대피소까지는 1시간 남짓. 어려울 게 없었다.

그대로 노고단까지 직행.


칼바람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우리의 온몸을, 특히 얼굴과 귀를 때려댔다.

날이 추운 것도 있었지만 바람이 너무 버티기 어려웠다.

은 기울고, 귀는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낮은 경사, 한낮의 햇볕 덕에 무사히 올라간다.


도착.

저 아래 섬진강이 펼쳐진다.

나는 섬진강을 처음본다.

지리산은 산에 들어서는 순간(바람은 차도) 푸근한 산이라는 게 느껴졌다.

거기서 흘러나온 강이라니.

섬진강 예쁘다는 얘기는 참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그 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


위에서 한참을 사진 찍고, 바람에 소리지르고, 산에 산들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우리 위를 지나갔다.

나는 소리쳤다. 전투기!

너는 넘어졌다. 으악!


손이 까지고, 무릎과 어깨에 멍이 들었다.

괜히 내 탓을 한다. 왜 소리를 질렀냐며...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다가 억울했는지 엉엉 운다. 그리고는 어이없는지 막 웃는다.

그렇게 한참을 둘다 배꼽잡고 웃다가 추워서 내려왔다.


공군 복무시절 정훈영상에

무슨 비행단이 새해 맞이 노고단 비행을 했다느니 그런 걸 본 것 같다.

장군 하나 태우고 한바퀴 돌았겠지 싶다.

그것 때문에(?) 피 봤으니 보상을 요구해야하나? 웃고 떠들며 내려왔다.


대피소에서 라면을 먹고, 말린 감을 먹고, 카스테라를 먹고,

올라오다 슬러쉬가 되어버린 믹스커피를 먹고, 귤도 먹고, 물도 먹고

든든하게 먹고 내려간다.


몸과 마음이 한층 가볍다.

상처는 성삼재에 있는 산림청 초소에서 치료받았다.

오늘 발령받았다는 어린 산림청 직원이 잘 치료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화엄사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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