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2023년 7월 2일. 31살 중반.
드디어 게임을 모두 끊었습니다.
주로 모바일 게임을 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농장 게임과 방치형 게임 그리고 퍼즐 게임들입니다. 한 게임은 출시와 동시에 시작해서 거의 10년을 함께 했었어요. 4~5개의 스마트폰이 바뀌었지만 이 게임만은 항상 함께 했었습니다. 나름 최근 시작했던 방치형 게임도 약 2년을 했네요. 우연히 친구들과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혼자서 최근까지도 계속 꾸역꾸역 하고 있었던 재밌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퍼즐 게임들을 가끔씩 하곤 했는데 한 번 시작하면 최소 2시간 정도는 붙잡고 있었습니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항상 "왜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계속하고 있었어요.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거나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을 책의 한 구절로 인해 그 자리에서 바로 게임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게임을 지웠다고 공표했어요. 한 때 많이 좋은 쪽이든 아니든 큰 화제가 되었던 김난도 교수님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지금의 그대는 미래의 그대에게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라. 미래의 그대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P. 211)
우연히 부모님 댁에 꽂혀 있던, 10년 전에 읽은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정말 호되게 책에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그때는 이렇게 좋은 내용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을까요.
매일 기계적으로 자투리 시간만 나면 해오던 게임들을 모두 삭제하고 나니 생각보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실은 게임기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게임을 끊은 지 2일에서 3일쯤 되면서 약간의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켜서 이것저것 아이콘들을 휙휙 넘기면서 구경을 하기도 하고 1분 전에 본 SNS에 들어가서는 업데이트된 내용이 없으니 그냥 끄는 등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행동들을 종종 하고 있었습니다.
5일 정도가 지나고 나니 평소라면 게임을 했던 시간대가 공허함으로 차고 있었습니다. 딱히 다른 걸 하지도 않았어요. 머리로는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면 좋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아직 이 공허함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는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자투리 시간이 많음을 점점 느끼고 있습니다. 하루에 고작 5분, 10분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게임을 켜고 끄는 시간과 일일 퀘스트를 항상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던 거죠. 퀘스트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아무리 잠들기 전이라도 한동안 스마트폰을 붙잡고 꾸벅꾸벅 졸면서 꼭 해내곤 했습니다. 당연히 잠의 질은 좋을 리가 없었죠. 이 짓을 10년 동안 했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무엇으로 이 시간을 채울까 하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의 나라는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미뤄뒀던 공부들을 시작하기 그리고 운동 정도가 전부였어요. 다행히 꽤나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시간을 억지로 짜내서 독서를 하곤 했는데, 지금까지 버려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니 지나간 과거가 정말 더 아깝네요. 영어 단어와 문장을 외웠어도 수천 개는 외웠을 시간이고 운동을 했으면 최소한 한 종목에서 중급자는 되어 있었겠지요.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뭉텅이 시간이라곤 없이 조각조각 토막 난 자투리 시간만 남게 되는 것은 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시대의 보편적 특징이다. 그런 사회에서 결국 시간관리란 곧 자투리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동의어다. 충분한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틈틈이 나는 작은 시간을 그러모아야 한다. 내가 가장 먼저 실천하겠다고 마음먹고 세운 것은 15분 내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바로 해결한다는 원칙이다....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토막 내기 쉽고 반복적인 것이 좋다. 내 경우에 애매한 시간에는 주로 잠을 청하거나 신문을 읽는다. (P.207)
김난도 교수님은 자투리 시간에 신문을 읽거나 잠을 잔다고 합니다. 무엇을 하는지보다는 자투리 시간이 났을 때 할 만한 일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네요. 저에게는 그게 게임이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것이 옳다, 그르다 혹은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하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는 그리 가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킬링 타임"이라고 하죠. 정말 저는 제 시간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게임을 끊은 지 고작 일주일이지만 체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산성입니다. 이번 한 주는 회사에서의 일이 정말 잘 되었습니다. 일의 난이도가 쉬웠을 수도 있고 평소보다 많이 바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일단 기분이 그렇습니다. 시간도 정말 빨리 지나갔어요. 다음 주 그리고 그다음 주는 어떨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내일이 기대되는 삶이 얼마만인가 싶어요.
글을 쓸 시간도 생겼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동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온몸의 근육이 뭉칠 정도로 쇠를 들었더니 뿌듯하면서도 내가 내 몸에게 얼마나 잘못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도 더 읽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공부도 하게 되었고요. 블로그를 쓸 시간도 얻었습니다. 물론 잠도 더 잘 잡니다. 이 모든 것이 게임을 끊었다는 행동 하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그만큼 게임이란 것이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끊어야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게임을 끊는 것과 같은 행위, 즉 내가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스스로 그만했다는 것이 큰 의의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책에서 얻은 동기부여를 실천으로 옮겼다는데서 일차로 뿌듯함을 얻었고 실천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고 나니 다른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힘이, 동기가 생기는 듯합니다. 고작 일주일이지만 말이죠.
비 오는 날 오후. 카페에 앉아서 지난 일주일 동안 달라진 점을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끊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용기를 못 내고 있네요. 하지만 하나씩 비워나가려고 합니다.
더 좋을 것을 채우기 위해서.
어느 책 제목처럼 바보들은 결의와 각오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나태와 타성으로 포기하기 일쑤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실천이요, 용기다. 그것이 혁명이다.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