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nbrook Academy of Arts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미국사람들에게도 그다지 많이 잘 알려진 학교는 아닙니다. 파슨스는 많이 들어보셨어도, 크랜브룩은 생소하실 거예요. 저도 그래요 줄리어드 음대는 많이 들어봤는데 오벌린이나 커티스는 많이 못 들어 봤거든요. 크랜브룩은 미국 내에서 마피아, 특공대로 불리는 아주 이상한 괴짜 학교입니다. 미시간 주에 위치하고 디트로이트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 크랜브룩이 어떻게 작가를 키워내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대학교 때부터 크랜브룩을 알았어요. 그리고 엄청 싫어했습니다! SAIC 시절, 1학년 3D 선생님이 크랜브룩 출신이었어요. 이름도 잊지 않는 브라이언 선생님 그분은 당시에 막 크랜브룩을 졸업했고 미시간에 살면서 시카고까지 오전 9시 수업을 하기 위해 4시간을 운전해서 오는 젊은 선생님이었어요. 제가 이분을 싫어했던 이유는... 대학교 1학년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어요. 작업하고 하고하고 또 해라, 그리고 다 손으로 하는 것이었죠. 거기에 이 선생님은 크랜브룩을 찬양하는 사람이었어요. 목조 수업을 했었는데 저는 나무 재료를 다루기 어려워하고, 톱도 무서워하는 데다 선생님도 안 좋아하다 보니 정말 너무너무 이 수업이 싫었어요. 브라이언 선생님은 15 주내 내 크랜브룩을 찬양했어요. 그리고 제가 그 수업을 끝날때쯤 생각했죠. 저놈의 크랜브룩 나는 안 간다고!!! 그런 생각을 대학교 1학년때 하고, 졸업즈음에 제일가고 싶은 곳이 크랜브룩으로 바뀌었어요.
저는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석사인 크랜브룩에서 섬유조형을 전공했는데요. 미국 내에서도 섬유조형 전공은 많지가 않아요. 학부에는 간간히 있지만 석사로는 두 곳이 있습니다 바로 SAIC와 Cranbrook입니다. 그래서 저에겐 선택권이 별로 없었어요. 시카고는 다녀봤고, 그리고 남은 하나인 크랜브룩에 가보고 싶었어요. 가장 큰 이유는 Nick Cave 작가 때문이었어요. 닉케이브는 미국의 작가로 크랜브룩 출신인데 Sound Suit이라고 해서 소리가 나는 옷을 입고 퍼포먼스를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어요. 저의 워너비 *_* 작가이고 동경의 대상! 닉 케이브는 사실 SAIC의 교수인데요 워낙 전시 일정이 많아서, 학교에서는 대학원 수업 딱 한 과목만 수업을 해서 학부생은 머리카락도 구경할 수 없어요. 그런 닉케이브가 크랜브룩 출신이고, SAIC 섬유과의 대다수의 교수가 크랜브룩 출신이라는 사실에! 도대체 이 학교는 뭔데 이렇게 자기들만의 세상이 있지?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그리고 하나 더! 나도 혹시 저기 가면 저들처럼 될 수도 있을까? 그런 마음으로 지원을 했습니다.
Apply
이 학교는 지원부터가 험난했어요 제가 대학원을 지원하던 시기는 모든 학교가 작품 이미지 수를 20장 받던 시절이에요, 그런데 크랜브룩만 25장 받습니다... 이때 알아먹어야 했어요.. 여기는 정말 작업량이 엄청난 곳이라는 사실을, 남들 다 포폴 20장 내는데 25장 내라는 건 작업 더 보여달란 소린데, 그게 그 학교의 교훈 같은 거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25장을 겨우 채워서 제출했어요. 그리고 하나 더! 보통 "SOP 학업 계획서"를 제출하는데 크랜브룩은 거기에 추가해서 하나 더! "자전적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했어요 제가 어플라이 하던 당시에 만으로 23살이었는데 23살이... 뭐 쓸게 많은 인생은 아니잖아요 ㅠ0ㅠ 그럼에도 열심히 썼어요. 학교가 워낙에 작업을 많이 보는 곳으로 알려져 있고 여기만 가면 다들 무슨 작업 귀신이 붙은 것처럼 작업을 하기에 저는 어플라이 할 때 하나 더 승부수를 걸었어요. 바로 포폴 케이스를 만드는 일이었어요. 지금이야 모든 서류 가다 인터넷접수지만 그때만 해도 성적표나, 추천서, 포폴을 실제로 보내야 했어요 (cd에 구워서 보내거나 slide를 만들어 보내거나) 그래서 저는 제 당시 작업의 한 부분을 떼서 (노방으로 만든 인체 부분에서 얼굴만 빼서) 파일 케이스를 만들고 그 안에 온갖 서류와 포폴을 넣고 상자에 담아서 보냈습니다! (훗날 학교 가서 제가 제일 처음 학교 직원분들께 들은 애기가 바로 "너구나! 그 포폴 케이스" 였답니다 (뿌듯)
일단 어플라이를 하고 기다리고 있으면 (그것도 피 말리게 기다리고 있으면) 이메일이 옵니다! 그건 바로 "인터뷰요청" 미국 대다수의 석사과정은 인터뷰 요청이 있고 없으면 거의 떨어졌다고 보셔야 합니다. 당시에 저는 2월 초에 인터뷰 요청을 받았어요. 직접 가서 인터뷰해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보여서 좋다고 들어서 저는 답장에 직접 가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올필요 없다고 ㅠ0ㅠ 그래서 전화 인터뷰를 했어요. 당시에 인터넷상에서 인터뷰 예상질문이 돌아서 저는-_- 그걸 준비했어요. 보통 일반적으로 인터뷰할 때 많이 물어보는 게 "학교 와서 어떤 작업하고 싶니?"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야?" 등등인데.... 저는 나름 다 준비했는데 첫 인터뷰 질문은 "자기소개해보세요" 하고 다음 질문은 "꿈의 작업실을 설명해 보세요" 네 그리고 인터뷰 끝..
난생처음 해본 인터뷰여서.. 이게 망한 건지 잘된 건지 전혀 감을 못 잡았어요. 결과적으로 저는 붙었고 나중에 학교 들어가서 알았어요 제 동기들은 예상 질문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해요 저만 빼고.. 저에게 그런 것을 물어본 이유는.. 확실히 붙이려고 생각했어서,,, 안 물어봤데요 ㅎㅎㅎ 너무 기분 좋은 애기였습니다. 크랜브룩은 섬유 전공으로는 독보적이라서 보통 크랜브룩을 붙으면 시카고 섬유과는 당연히 합격이고 두 학교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해요. 제 동기들도 모두가 시카고 섬유과를 붙었다고 합니다 저만 빼고요 저는 떨어졌어요 ^-^ 웨이팅리스트에도 못 올라갔답니다 ㅎㅎㅎ 지금 생각해 보면 제 교수님의 취향이 특이했나 봐요
그렇게 저는 2월 초에 인터 뷰과, 합격 통보를 받고 크랜브룩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수업 방식
크랜브룩은 일반적인 학교랑 방식이 많이 달라요. 전공은 일단 10개 (현재는 4D가 추가되어 11개입니다) 대학원 1-2학년 합쳐서 과당 15명의 학생이 있어요, 즉 전교생은 150명 아주 아담한 곳입니다. 그리고 제일 신기한 건 이곳에 교수는 딱 10명입니다. 과별로 담담 교수가 한 명씩 있고, 그 외에 교수는 없어요. 마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담임선생님 체제로 교수와 15명의 학생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수업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으실 텐데요 정말로 수업이 없어요.. 학교에서는 보통 수강신청이란 걸 하잖아요, 내가 어떤 수업을들을지 일정도 짜고... 네 크랜브룩엔 없어요. 수업이 없어서 수강신청 할 게 없어요. 담임선생님의 방식을 따르게 됩니다. 평균적으로 주 1회의 크리틱과 주 1회의 세미나 총 2번 만나고 나머지는 "작업" 하면 됩니다. 물론 교수님도 "작업"하느라 바빠서 많이 챙겨주지 않아요. 모든 일정은 교수의 공지로만 이뤄져서 다음 달에 뭐 할지 저도 모른답니다 ㅎㅎㅎ 첫날 종이를 주고 크리틱 날짜를 정해요 1인당 1학기에 총 3회의 크리틱을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날짜를 본인이 알아서 정하면 돼요. 그리고 세미나는 돌아가면서 자신의 작업 주제와 관련된 참고 자료/책/논문 등등을 나눠주고 그걸 가지고 얘기하는 시간인데 그 세미나도 본인이 이끌어가야 합니다. 한 학기가 15주니까 한 사람당 한 번씩만 하면 돼요 ^-^ 세미나는 3시간이고 본인이 주제 정하고, 자료 찾아서 미리 나눠주고 3시간의 세미나를 이끌 준비를 해야 해요. 이 모든 것을 첫 주에 어리 머리 하게 바라보면서 어쩌다 보니 일정도 다 잡게 됩니다. 크리틱은 매주 4명을 하고요, 1인당 1시간씩 합니다. 제대로 준비를 안 해오면 타인의 시간을 뻇는거라고 생각해서 무시하고 넘어가요 1시간을 할애하기에 넌 준비가 안되었다는 말이죠. 이곳에서 차가운 정글의 맛을 보게 됩니다.
학교 생활의 즐거움
도시에서 자란 저로써는 크랜브룩의 환경은 정말 난감해요. 이곳은 정말 정말 시골에 있어서 (대중교통 없음, 버스 없음, 택시 없음) 미국 내에서 급하게 차를 사야 하는 학교 중에 아트센터와 크랜브룩이 포함됩니다. 시골에서 살면 너무 심심할 거 같은데 심심할 틈 없이 학교에서 재미난 일들이 많아요 그중 하나는
크랜브룩의 전통 "Regatta rafting"
학교의 첫 전통행사는 래프팅 대회예요. 크랜브룩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원으로 되어있고 캠퍼스 안에 이 모든 학교가 같이 있어요. 학교 안에 작은 호수가 있답니다 (인공) 이곳에서 입학 첫 주에 래프팅 대회가 있습니다. 토요일에 래프팅 대회가 있고 지령은 24시간인가 48시간 전에 이메일로 받아요. 전해 우승과 (당시에는 2d)에서 래프팅 대회의 조건을 붙입니다. ~~를 사용해서 만들 것 이라던지. 시간이 오래돼서 기억은 세밀하게는 안 나는데, 저희에게도 래프팅 대회를 위한 "똇목" 만들기 지령이 떨어졌어요. 이걸 목숨 걸고 만드는 과는 조소과와 3D과 입니다 (이것떔에 진짜 톱질도 하는 애들임) 섬유과는 진즉에 기권을 선언해서 제가 할 일은 없었지만 구경은 실컷 했어요 토너먼트로 진행되고 진짜 만든 뗏목을 타고 반환점을 빨리 돌아오는 팀이 우승하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첫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무척 친해진답니다. 시골에서 너무 심심하다 보니 우리끼리 여러 행사를 만들어서 즐기다 보니 정말 끈끈하게 친해져요. 저는 저희 과 유일의 외국인에다가 제가 좀 어릴 때 들어가서-_-; 언니들이 약간 모자란 애 챙겨주듯 잘 데리고 다녀줬어요 그래서 정도 엄청 들고 ㅎㅎ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랍니다
아름다운 캠퍼스
크랜브룩은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캠퍼스가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작품인 곳이라서 매우 역사가 깊고 유명해요 학교 내의 미술관도 있고, 세린하우스도 보존이 잘 되어있답니다. 실제로 관광객들이 학교 캠퍼스만 보기 위해서도 방문하는 곳이에요.
작업하는 최적의 조건
모든 학생은 각자의 고유 스튜디오를 배정받아요. 건물에 따라서 새 건물이라 좀 더 좋은 것도 있고 고풍스러운 옛 건물도 있어요. 저는 뉴빌딩이라고 해서 신식 건물에서 지냈는데요. 크랜브룩에서 17년간 교수를 하고 20년간 교장을 한 미국 섬유예술계의 대부인 게리하트 할아버지가 교장이던 시절에 뉴빌딩을 지어서 자신의 애정하는 섬유과를 2층 제일 좋은 곳에 줬다는 얘기가 있는데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 생각됨... 게리하트 할아버지라면 하고도 남으실 분일정도로 기가 세고, 학교 내에서 히틀러 수준이십니다) 여담입니다만 어느 정도로 드세시냐면.... 은퇴 후에도 매년, 섬유과에 신입생이 들어오면 본인의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학기 중에 방문도 하셔서 학생들 크리틱도 하시고, 본인 작업실에 초대해서 작품 설명도 해주세요. 어찌 보면 월권일 수도 있는 일인데 제 교수님은 할아버지의 즐거움을 막을 수가 없어서 그냥 하시게 내버려두어요... 개인 작업실이 있고 어느 건물이던 24시간 사용가능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공간 없었다는 핑계 따위는 안 통해요. 그리고 전교생들이 서로 다 알고 있어서 새롭게 작업을 하고 싶으면 친구에게 도움을 받거나, 콜라보 형태로 작업도 가능해요
Visiting artist lecture
이 시골에 매달 초대작가가 방문합니다. 시골이다 보니 보통 1박 2일이나 길게는 2박 3일도 보내요. 매번 방문하는 초대작 가는 초청하는 과가 다른데요, 보통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공개 강연이 있고, 초대한 과와 따로 저녁 식사를 하고, 그 과의 학생들과 초대작가가 1;1로 만나서 크리틱을 받는 시간도 있어요. 제가 지낼 때 제일 유명한 작가가 왔던 건 "Ann Hamilton"이었어요 ㅎㅎ 그것도 우리 과 초대로 온 거라서 학생들과 식사도 하고 애기도 하고 그러고 가셨답니다 (시카고에서 봤던 최고의 유명 초대강연자는 스타워즈 감독이던 조지 루카스였어요.. 그날 학교 터지는 줄 알았네요). 이 초대작가 시스템으로 우리는 비록 시골에 살지만 ㅎ 엄청난 작가들을 만나게 돼요 그들이 어떤 작업을 했는지도 보고 현역으로 잘 나가는 작가들과 1;1 면담 시간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시야로 본 내 작업을 듣기도 합니다. 엄청난 매력이죠. 과별로 부엌이 있어서 학생들이 모두 초대작가를 위한 식사를 준비합니다
교수이기 전에 작가
입학하면 첫 주에 하는 행사 중에 하나가 10명의 교수들의 자기 작품 발표시간입니다. 전교생이 모이는 강연장에서 매일 2명씩 저녁에 교수당 1시간씩 자신의 작품을 발표합니다. 학생 앞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며 너희를 2년간 이끌 수장이 어떤 사람인지 보라!라고 합니다 전교생이 10명의 교수의 모든 작품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교수들도 긴장해요, 자신들도 학생들 앞에서 창피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교수들도 교수이기 이전에 작가이고 열심히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랍니다.
선배작가
교수들의 작업 발표 주간이 끝나면 2학년의 작업 발표시간이 이어집니다. 과별로 요일을 정해서 밤마다 2학년들이 나와서 5분간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요 1학년들 앞에서 본인이 1학년때 무엇을 하였는지 보여줍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작품을 보여주기 때문에 서로 첫 주에 다 알게 됩니다. 아 ~ 저 친구 작업 열심히 하는 사람, 아~ 저 친구 작업 재밌던데 그렇게 서로를 파악합니다.
작업 작업 작업
시골에 살다 보니 놀 곳도 없고 갈 곳도 없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답니다. 엄마들이 그런 애기 가끔 하시더라고요, 아이가 심심하게 커야 스스로 뭔가 찾아서 한다고. 저는 그것을 20대에 느꼈습니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작업을 해요. 지치면 자고, 일어나서 또 작업하고
Review
과별로 크리틱은 너무 기본이고요, 종합 기말세트 같은 게 있습니다. Year Review!인데요 2학년은 12월에, 1학년은 1월에 Year review가 있어요. 이게 무엇이냐면 마치 기말고사 시험기간처럼, 과별로 요일을 정하고 해당 학년이 학교 내에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고 하루 종일 본인과 교수 외의 교수의 크리틱을 받는 시간입니다!! 이날을 위해서 서로가 원하는 학교의 자리를 예약하고, 자신의 작품을 설치합니다. 그리고 아침 10시부터 시간을 교수가 등장하길 기다려요! 이건 당일에 뽑기로 하기 때문에 누가 들어오는지 몰라요 ㅎ그렇게 5시까지 크리틱을 받고 나면!!!! 같은 과 다른 학년 친구들이 준비한 식사를 선물 받게 돼요 보통 고생했다고 아랫학년이, 혹은 윗학년이 파티를 준비해 줘요 식사, 디저트 요게 또 엄청난 즐거움이에요. 그간 준비한 것 긴장한 거 다 내려놓는 순간이에요. 여기에 가끔 ㅎㅎㅎ 교수님들끼리 싸움도 나요, 내 새끼를 왜 네가 그렇게 평가하냐고 싸움 나기도 하는데 음.. 저 때문에도 저희 교수님이 한번 그러셨어요 ㅎㅎ 제 작업을 보고 건축과 교수님이 인종 차별적인 작업 아니냐고 하는 바람에 (저는 인체를 색실로 감아요) Racist!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_- 이 작은 학교 내에 문자로 빠르게 쭌이 작업 인종 차별 아니냐고 태클 걸렸어~~~~ 가 sns까지 타고 나가서-_- 그 주 내내 저만 보면 친구들이 웃느라 바빴어요. 제 교수님은 해당 발언 건축과 교수에게 가서 뭐라 따지고...
Open
학교에서 일어나는 최대의 행사입니다. 학교가 위치한 Bloomfield Hills는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부촌이라고 해요 (저와 상관없음) 그 부촌에 사시는 부자양반들은 학교 행사에 오셔서 기부도 하고 자신들이 젊은 예술인을 후원한다는 자부심이 크신 분들이에요 실제로 그런 분들 덕분에 제가 이 학교도 다닐 수 있었고 또 작가가 되기도 했고요. 이 행사날은 학교에서 제일 큰 행사 중 하나인데요 모든 학생의 스튜디오를 열어서 공개합니다. 어떤 작업을 하는지도 보여주고, 손님들도 만나고 학생이 원한다면 작품을 판매할 수도 있고, 손님들도 원하시면 구매를 하십니다. 보통 회화, 사진, 도자 쪽에서 판매가 잘 이루어져요. 섬유과는 재료 특성상 판매가 잘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입학한 지 1달 만에 일어난... OPEN 행사애서 제가 작품을 팔았답니다 ㅎㅎㅎ 정말 너무 예상도 못했고 기대도 안 했어서 어리바리하게 있었는데 학교 행사에 참여하신 Tim이라는 멋쟁이 노신사가 작업을 보시다가 (저 없었음) 구매를 원하셔서 다른 쪽에서 과자 먹고 수다 떨다 급하게 불려 갔어요. 제 인생에서 첫 판매를 했던 작업인데요. 학교 입학하고 처음 만든 작업이라 이거 하나밖에 없었어요 판매 자체도 처음이라서 가격도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노신사는 저를 부르시더니 가격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어리바리 말을 못 하니까 수표를 꺼내시더니 그곳에 본인이 생각하는 가격을 적으시고는 제 손에 쥐어주시고 갔어요 ㅎㅎ
저는 그때의 그 기분을 잊지 못해요. 새벽 4시까지 정말 각성된 상태로 초 흥분했었어요. 저는 그때의 그 기분을 못 잊어서 작가가 된 거 같아요. 정말 이름 없는 아무것도 아닌 학생의 작품을 산다는 것, 그것이 그 학생으로 하여금 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해 주었어요. Tim 신사분은 제가 졸업할 때도 작품을 구매하셨답니다.
학교 주최 판매 전문 행사
학교에서는 수업은 없어요 대신 실전은 존재합니다. 학교 내 갤러리에서 전시를 끊임없이 돌려요, 과별로도 해보고 다른 과학생들끼리도 모여서 해보고, 매주 오픈 행사를 할 정도로 계속 전시를 하게 해요. 그리고 1학년이던 시절 학교에서 대놓고 판매 목적의 행사를 했어요 OnexOne이라는 행사로 하나의 작업을 색을 바꾸거나 에디션을 뽑을 수 있는 작업을 하게 하고 그것을 판매하는 행사를 했어요. 팔 수 있는 작품의 한 종류를 어찌 만들고 판매를 하게 되는지 경험시켜 주는 행사였습니다
공모전
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시도때도 없이 이메일이 날아옵니다. 과별로 다를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교수님들은 전시공모, 레지던시 기회 등등 수많은 정보들을 보내줘요. 자꾸 해보게 하는 겁니다. 저의 첫 공모전은 디트로이트였어요. 공모전을 동기들이랑 다 같이 냈고 운 좋게 저는 전시에 참여를 했어요 그리고 수상도 해서 상금도 타구요. 제가 수상하게 된 사실을 알고 교수님도 오프닝 당일 찾아와 주셨답니다
저는 학부 때 참 많이 못하고, 장학금 구경도 못해본 평범하다 못해 모자란 학생이었어요. 정말 아등바등 겨우겨우 따라가는 신세였는데 크랜브룩에서는 시카고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을 배우고 와서 그런지 지낼만했어요. 많은 공모전에 참여하고, 떨어지고 붙고, 전시를 경험해 보고, 그렇게 갤러리를 만나고, 손님을 만나고 2년 동안 정말 많은 실전을 쌓았어요. 섬유계의 대부 게리하트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전시 신인 파트에서도 전시를 함께 하는 영광도 경험했어요.
졸업 전 참여한 공모전에서 섬유미술계의 선배들과 전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이 기회를 발판으로 저는 필라델피아 갤러리와 계약을 하게 되었고 손님도 많이 만났어요 덕분에 아직도 그 디렉터와는 일하고 고 있답니다.
졸업
학교마다 졸업의 요건은 다르지만, 이곳은 두 개를 다 해야 합니다. 전시 그리고 논문! 논문은 심지어! 제본할 수 있게 모두 다 출력해서 정해진 시간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졸업 불가"입니다. 졸전은 어느 미대나 가장 큰 행사인데요. 크랜브룩의 졸전은 조금 더 큰 행사예요. 이유는 학교에 미술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 내 미술관이 있고 그 미술관이 1달간, 학생들의 전시를 위해서 공간을 내줘요. 실제로 미술관 큐레이터가 졸전을 진행합니다. 한 명 한 명 면담을 통해서 작업이 무엇이 될지 확인하고 자리를 배치해 줍니다 그리고 자리 배치표가 벽에 붙는 날 본격적인 전시 설치에 돌입합니다. 사회를 나가는 첫 전시가 미술관이라는 거 엄청난 매력이죠. 거기에 심지어 미술관 큐레이터가 직접 진두지휘를 하기 때문에 미술관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게 됩니다.
논문의 형태는 정해진건 없어요 그러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글과 이미지를 이용해서 만들어야 해요 학교 도서관에 가면 졸업한 사람들의 논문이 가득한에 그곳에는 저의 우상 Nick Cave의 논문도 있었어요 언젠가 제 후배들도 제 논문을 보는 날도 오겠죠?
저는 시카고에서 하위에 속하는 학생이었어요. 과연 내가 미대를 온 게 맞는가 싶은 그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요. 그런데 크랜브룩에서 2년간 생활하면서 제가 의도하거나 목표하지는 않았는데, 졸업할 때가 되니 작가가 되었어요. 학교에서 학문적으로 무엇인가 배운 것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없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실전을 배울 수는 없었어요. 시카고에서 4년간 바닥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지 못했었지만 그 시간이 크랜브룩에서 지내는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하고 작업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 저는 이것이 작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부 4년간 치열하게 "네 작업을 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한 계단도 못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 시간이 대학원에 와서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습니다. 크랜브룩에서의 생활은 절대 학문적이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가장 실전이었습니다. 콜렉터를 만나고, 전시를 참여하고, 전시를 이끌고, 자기 작업을 소개하고 작가가 되기 위한 모든 훈련을 2년간 응축해서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크랜브룩을 특공대라 하는 것이구나
제 학생들이 저에게 많이 물어봅니다, "어떻게 해야 작가가 되냐고" 저는 정말 늘 딱 한마디만 합니다 "미련하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에 목매지 않고, 작은 것에 반응하지 않고 너무 계산하지 않고, 결과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행위지만 끊임없이 해보다 보면 언젠가는 응답이 있을 것이라고요. 저는 지금도 미련하게 작업합니다. 제가 배운 것은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미디에서 보이는 것처럼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영감 올 때 즉흥적으로 작업하는 사람이 아니고, 남들 직장 생활하듯 똑같이 하루에 일정 시간 작업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 그것이 작가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정직하게 작업하고 노력하면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