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될 생각 없었는데, 학교가 만들었어요-1

SAIC

by 장돌뱅이

작가들이 전시 때나 외부 강연에서 자주 듣는 단골 질문이 있는데요 "작가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언제부터 작가 꿈을 꾼 거예요?"라는 질문을 저는 많이 들었어요. 답부터 한다면 저는 작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ㅎㅎ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자체가 크게 없었어요. 요즘 친구들은 무척 성숙하기도 하고 똑똑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잘 아는 경우도 많고 이것저것 배우고 경험하면서 본인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렇지는 못했어요. 저때만 해도 인터넷에서 정보가 많이 흘러나오는 시절도 아니었고, 학교에 요청해서 학교 책자 우편으로 한 달 기다려서 받아보고 그랬답니다 (완전 옛날사람)


저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다니고, 입시를 미국으로 준비했었어요. 그리고 지원하고 합격한 학교 중에 "시카고 예술대, The School of the Art Instittue of Chicago"를 선택했어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저는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지는 않았어요. 뉴욕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작가든 디자이너든 무엇이나 선두주자인 뉴욕이 학생들에게 엄청난 볼거리와 영감을 준다고 듣긴 했는데 저는 그곳이 너무 무서웠어요. 지금도 출장차 며칠 머무는 것은 괜찮은데 살 자신은 없어요. 서울 한 복판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뉴욕은 더더욱 사람 많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쥐가 많다고 해서!!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그래서 일단 뉴욕은 제외하고, 제가 붙은 학교는 시카고와 메릴랜드였어요. 당시 저는 전공을 Painting으로 생각했는데요 시카고와 메릴랜드 두 곳 모두 회화과가 잘 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시카고를 선택했습니다! 시카고는 나름 도시지만 뉴욕만큼 복잡하지도 않고! 시카고는 회화과가 좀 커서 회화를 전공하는 친구들에겐 꿈의 대상이기도 했어요. 더불어 학교 내에 미술관이 있어서 4년 내내 무료 관람이라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저는 시카고를 학부로 선택했습니다.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소장목록이 화려한 편)

대가와 명작을 보고 꿈을 꾸라!

SAIC의 최대 장점은 학교 내 미술관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실제로 미술사 수업을 할 때 미술관에서 하기도 합니다. 책에서 볼 필요 없어요 바로 미술관에 가면 피카소도, 고흐도, 고갱도, 세잔도, 자코메티도, 심지어 데미안 허스트에 제프쿤스 까지! 모두가 다 있습니다! 미술관이 있는 게 뭐 그리 큰 차별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4년간 오며 가며 보는 대가의 명작들은 생각보다 학생들에게 자양분이 됩니다. 드넓은 미술관 두 곳 (Modern wing이라고 현대 미술관도 세워졌습니다)을 오며 가며, 나도 모르는 새 미술사를 익히게 돼요. 방마다 ~~ 주의 ~~ ism 시대별 작업들이 있다 보니 미술사를 서서히 익히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 잘 나가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도 볼 수 있어요! 모던윙 1층 한편은 매번 전시가 바뀝니다. 맥스램 같은 세상 핫한 디자이너의 의자 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까미유 끌로델처럼 고전의 명작이 열리기도 해요. 책으로 보는 것과 진짜 눈으로 가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그렇게 4년간 명작을 오며 가며 스치듯 보면서 꿈을 키울 수 있어요.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졸업생이자 초기 여류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에드워드 호퍼의 "night hawks"


Modern wing 동시대 미술 중심의 미술관


피카소의 푸른 시절- 기타를 든 노인


주방용품 관세가 물렸던 브랑쿠지의 작품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펠릭스 곤잘레스의 작품 (그리고 사탕 먹기)


학교 옆 공원- 자우메 플렌자의 crown fountain


아니쉬 카푸어의 cloud지만 모두가 콩으로 부릅니다


신기한 도서관

아무래도 실기 전공의 학교이다 보니, 학기말에 도서관이 가장 한산해요. 여기서 자는 학생도 많아요 (저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SAIC의 도서관은 작아 보이지만 생각 외로 엄청나게 많은 미술 관련 책을 보유하고 있어요. 시간 날 때마다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좋은 자양분이 될 겁니다! 저는 학교 때 일러스트나 패턴 이런 책들을 많이 찾아봤었는데 그게 현재 제가 작업하는 Bystander의 고유 무늬 만들 때 많이 쓰게 되었어요. SAIC 샵빌딩에 위치한 도서관은 아주 엄청난 부분이 있는데요 "ARTIST BOOK COLLECTION"입니다. 이게 뭔가 싶겠지만 책을 소재와 주제로 작업하는 작품들을 학교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예약하고 가야지만 사서 선생님이 장갑 끼고 꺼내서 이것저것 보여준답니다.


2024년 1월에 갔더니 6층이던 도서관이 5-6층을 통으로 쓰는 식으로 변경되었어요



이곳이 바로 아티스트 북 컬렉션


책이라는 것이 믿어지시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책의 범주를 많이 넘어선 신선한 작품들
학교 도서관
도서관 입구에서 마주하는 해골


SAIC 학부- 철저히 땅굴을 파봐라!

제가 다른 학교를 경험해 본 것이 아니라서 타학교와 비교하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시카고는 철저히 혼자 스스로 헤매는 시간을 아주 넉넉히 줍니다. SAIC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매우 많이 존중해 줍니다. 가끔은 너무 존중해 줘서 갈피를 못 잡기도 해요. 1학년에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 2가지가 있는데 이것만 듣고 나면 나머지는 모든 것이 학생 자율에 맡겨집니다. 그 두 가지는 core studio and research project 이 두 가지만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어떤 수업을 듣던 자유입니다. 코어 수업에서는 기본적인 2d, 3d, 4d를 경험합니다 아무리 본인이 영상 관심 없고 안 하고 싶어도 뭐라도 해야 해요 (제가 그랬어요) 학교에서 카메라도 빌려주고 컴퓨터 프로그램도 다 깔아주기 때문에 안 할 명분이 없어요 ㅠ0ㅠ 그냥 해야 합니다. 코어수업은 1학기때만 하고 2학기때는 본인이 원하는 전공의 1001 기본 수업을 시작하면 돼요 저는 그렇게 Drawing practice와 Painting Practice를 들었어요. 리서치 수업은 1-2학기 모두 들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서 주제 중에 골라서 들으면 돼요.


회화과에서 드로잉과, 페인팅 프랙티스 수업은 정말 황당합니다. 페인팅 수업의 첫날에는 캔버스 짜는 법을 알려주고 둘째 날에는 커다란 유리판에, 유화 기본 8색만 짜서 색을 보는 법을 가르쳐줘요 그러고 나서 나머지는 학교의 교훈 같은 "네가 원하는 것을 네 작업으로" 이게 사람 미치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대다수의 학교는 커리큘럼이 있고, 과제가 있던지 어떤 방식이던 선생님이 끌어가는 방식이 존재해요. 그러나 SAIC는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네 작업은 네가" 무엇이든 그리던 뭐든 내가 준비를 해서 수업날 가야 해요 가서 교수와 1:1 면담을 합니다. 나는 어떤 걸 해보고 싶은데~ 잘 안된다 라던지,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다던지, 스스로가 면담 준비를 해가지 않으면 면담을 해주지 않아요. 준비 안된 자는 빠르게 PASS~~ 잘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전 사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도대체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게 1학년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합니다.


보통 시작점은 자신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 누구인가" "나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나의 뿌리는 무엇인가" 계속해서 스스로 탐구하게 합니다. 그 어떤 방해물도 없고 그렇다고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도 않아요. 스스로가 관심사를 찾을 때까지 차분히 선생님들은 기다려줍니다. 중간중간 무엇인가 고민거리를 들고 가면 참고할 작가를 알려주거나, 잘 어울릴 거 같은 재료들을 툭툭 던져줍니다. 그리고 또 혼자서 작업을 해보고 땅굴도 파보고 매주 그렇게 교수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수업 과목

페인팅과 수업은 정말 많아요 주제가 없는 Multi level부터 주제가 다양한 수업도 있어요. Color, Landscape, Dream, abstract, figure, material, water color, animation, 등등 다양한 수업을 본인이 고를 수도 있고, 마음 맞는 선생님 있으면 선생님 따라서 수업을 결정해도 됩니다. 학교의 수업의 정원은 대부분 15-18명이고 실기 시간이 다른 학교에 비해서 긴 편이에요 실기 1과목은 무조건 6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거나, 아니면 주 2회로 밤에 6-9시 듣거나. 3시간짜리 전공 수업은 존재하지 않아요.

콜럼버스 빌딩 3층 회화과 실기실


콜럼버스 빌딩 1층 (이곳엔 순수 미술전공이 있어요 1층 드로잉 사진, 2층 사진과 판화, 3층 회화, 지하-조소, 도자, 행위예술)


콜럼버스 빌딩 3층 회화과 실기실


성적이 없는 학교

SAIC는 성적이 없어요 오직 통과와 불통과 Pass or Fail 두 개만 존재합니다. 아무리 학생의 작업이라도 선생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아이들의 작품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는 신조가 있어요. 그렇지만 다시 말하면 이것은 아주 큰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얻어가는 것이 적기도 합니다. 15주간 교수를 만날 수 있는 시간 동안 최대한 교수님을 귀찮게 하고 볶아서 무엇이라도 얻어내야 해요! 그러나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은 그것을 잘 몰라서 적당히 하다 넘어갈 수도 있어요. SAIC는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습니다. 비싼 돈 내고 달랑 종이 졸업장 하나만 받아 올 수도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이용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야 해요. 자신과 잘 맞는 선생님이 있다면 Independent 수업을 개설해서 선생님과 1:1로 수업하는 것도 가능해요 (정규 과목에는 존재하지 않음, 스스로 수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담당 선생님이 허가 싸인만 해주면 바로 수업이 열려요)


조소과 실기실


학교에 있으면 다른 학교 친구들보다 빠르게 이 업계를 맛보게 됩니다.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요!. 엉망이라도 자꾸 도전을 해봐야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상당히 철학적인 방식이에요.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고, 무엇인가 답을 수업에 가져가야 하는 것. 그리고 나면 다음 질문을 선생님이 다시 던져주고, 또다시 스스로 탐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도 모르는 새.. 작업하는 방식을 체득하게 돼요. 그래서 SAIC 졸업생 중에 작가가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평가는 잔인하게

학교에서 우쭈쭈는 없어요. 신랄한 독설과 비평이 존재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틱! 통상 학부생은 한 학기에 수업별로 2번의 크리틱을 경험해요. 중간과 기말고사의 개념입니다. 중간 즈음 다 같이 모여서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데 과정이 이렇다~ 얘기를 하게 되고, 주변에서 다른 의견들을 줍니다. 그것을 수용하고 수용하지 않고는 자신의 판단입니다. 그리고 학기말에 크리틱을 통해서 완성된 작업을 평가해요. 그게 노련한 프로 교수들의 평가도 중요하지만, 동료들의 신선한 비평도 아주 날카롭습니다. 서로가 그렇게 비평의 예절을 배우게 됩니다. 개인의 취향이나 성향을 기반에 깔지 않고 작업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새로운 의견이나 시점 관점을 제공하는 방법을 익혀요. 그리고 알게 되죠. 학교 밖 전시판은 더 칼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학교에선 돌아가며 비평을 해주기라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 밖 진짜 전시판에선 그런 건 없어요 다만 콜렉터에 의해 확연하게 보이겠죠. 판매가 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 될지, 취미생활로 전락하게 될지! 학생이라고 우쭈쭈 해주며 좋다 좋다 하는 평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크리틱의 시간만 존재하죠. 그리고 곧 사회로 진입할 예비 작가들의 크리틱은 얼마나 더 무서운지 학부생은 경험하게 됩니다. SAIC의 매 학기 마지막 전주 14주 차는 CRITI WEEK이라고 해요. SAIC는 학부와, 석사가 함께 있습니다. 그 크리틱 주간은 석사생들의 시험기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모든 석사생들은 임의적으로 배정되는 학교 내의 교수의 크리틱을 받게 되고 그 크릭튼 모두 "전체공개"입니다. 그 살벌한 비평의 시간 학부생들도 당연히 가서 볼 수 있고. 미리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일부러 학부생을 참관시키는 교수도 있어요. 이것이 곧 너의 미래!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고, 석사생에게 긴장감을 줍니다. 학부생들 앞에서 창피한 작업 하지 말라는 의도도 있죠! 눈물의 크리틱날! 아무도 점수를 매기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걸려있는 작품들 사이에 스스로가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게 됩니다. 남은 속일 수 있어도 자기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어요. 그렇게 작가가 되어갑니다.


롤모델을 바라보며 꿈꾸기

학교에 교수들은 대부분 현직 작가예요. 그래서 그분들은 선생님의 모습보다는 선배 작가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이번 주 뉴욕 전시라서 수업 없어요"가 아주 흔한 곳이에요. 선생님들을 통해서 전시를 배우게 돼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개인전과 단체전, 페어 등등을 맛보기로 구경할 수 있어요. 저의 첫 Field trip이 생각나는데요. 제가 Core studio 1학년 필수 수업 시간에 현장 학습으로 시카고 서쪽에 west loop이라는 갤러리 밀집 지역으로 선생님의 인솔하에 뭔지도 모르고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날 제가 누군가의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작가가 바로 Bruce Nauman였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 알았어요. (1학년때 너무 무식해서 몰랐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 오프닝날 갔단 사실을)

출처- 구글, Bruce Nauman "Fountain"


현장을 익혀라!

제가 학교 다닐 때 졸업 필수 조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CO-OP이라고 해서 외부에서 현장 경험을 6학점을 따야 해요. 그게 작가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로 일을 하던, 디자인 회사를 가건, 갤러리에서 일을 배우던 해야 합니다. 보통 방학 때 많이 하게 되는데 저는 방학 때 한국에 있을 때 했어요. 역시나 SAIC스럽게 학교랑 연계된 갤러리가 있다던지 해서 매칭을 해주는 것은 아니고요 이 또한 "네가 알아서 스스로 잘" 요즘 말로다가 알잘딱깔센! 저는 한국에 있는 여러 갤러리에 제 상황을 설명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인턴으로 받아주신 감사한 갤러리 "갤러리 선 컨템포라리"에서 인턴을 경험했어요!. 처음에는 내가 왜 방학에 이런 걸 해야 하나 하면서 구시렁거렸는데요. 막상 1달 해보니까 확실한 한 가지를 알았습니다! "아 나는 갤러리 일은 못하겠다!!!"


제가 경험한 갤러리일은, 기자분들에게 보도 자료 돌리기 (보도자료는 큐레이터 선생님이 써주세요), 손님 응대, 청소, 수장고 정리, 작품 정리, 작가별 포폴 정리, 콜렉터 관리 이런 것들인데요. 이게 정말 별거 아닌 거 같아 보이는데 한 달 정도 있으면서 생각보다 갤러리가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배웠어요. 제가 있던 기간에는 개인전 오프닝도 있었어서, 오프닝 상 차리기도 돕고, 지금은 홍보 자료를 이메일이나 카톡 혹은 문자로 링크를 보내지만, 예전에는 다 우편으로 보냈었어요!. 하나의 전시가 이뤄지기까지 갤러리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구경했어요. 대표님과, 큐레이터 선생님들이 전기 주제를 잡거나, 페어를 준비하는 회의를 지켜보며 작가를 통해서 갤러리의 색을 보여주는 것도 배웠고, 콜렉터들에게 어떻게 홍보를 하고 작품을 판매하는지. 기자들에게 작품을 어떻게 설명하고 홍보를 부탁하는지 등등 배웠습니다. 제가 갤러리일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건! 하나였어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저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성향이었어요. 기획자가 되려면 크고 넓게 보고 작가들을 기용해서 전시를 꾸려야 하는데 저는 그런 시야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인턴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그리고 그렇게 안 보이는 곳에서 전시에서 작가들이 빛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큐레이터 선생님들의 노고를 따라갈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게 저는 갤러리일을 맛만 보고 바로 내려놨답니다.


이렇게 4년 동안 내가 관심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것, 표현하고 싶은 것 들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교수님들과 면담하고, 세미나나 크리틱을 통해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 듣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작업을 하고 싶어 져요. 저는 아 이제 좀 뭔가 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 때... 졸업을 하게 되었어요. 전 사실 학부에서 두각을 전혀 못 나타냈어요. 워낙 잘하는 애들도 많고, 갤러리에서 학부생인데 개인전 초대를 받는 친구를 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선생님으로부터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려라, 젯소 다시 칠해와라 (네가 한 그림 덮으란 소리입니다), 이런 게 팔리겠니? 등등 정말 많은 독설을 들었어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하지만 4년간 진짜 작가들이 괴짜 선생님들 옆에서 배운 건 확실히 많이 남았습니다.


1. 뱃속 깊은 곳부터 울려오는 네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유행하는 그림도, 잘 나가는 작가의 그림도 저는 수 없이 베껴봤어요. 저는 욕심도 열정도 많았지만 그만큼의 능력은 없었어요. 수 없이 잘 나가는 작가들의 ㅡ림을 베껴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고 (저는 제니사빌과, 루시앙 프로이들의 화집을 많이 베꼈고, 에곤 쉴레 드로잉도 많이 따라 그려봤어요) 짭퉁은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미 유명하고 인기 많은 사람들의 것을 따라 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소리가 작더라도 단단하게 내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어요.


2. 기본기에 충실하라

제가 4년간 교수님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것이었고, 지금도 많이 느끼고 있고, 실제 4년간 제가 꾸준히 해온 것이었는데요. "드로잉"을 많이 하는 것이었어요. 욕심만 앞서고 능력은 모자라서 분해하고 한창 헤매는 저를 보면서 교수님들 몇 분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셨어요. "매일 2장씩 일기 쓰듯이 드로잉을 해보렴" 그게 네가 하굣길에 본모습이던, 친구들과 수다 떨며 그리던, 네가 버리는 종이쪽지를 그리던, 오늘 상상한 재미난 것을 그려보던 무엇이던 매일 2장씩 남겨보라고 그러면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4년을 저도 해봤어요 매일 날짜를 쓰고 엽서 크기의 드로잉 북에 두장씩 무엇인가를 그렸어요, 공원에서 본 사람, 학교 식당에서 본 친구 밥 먹는 모습, 카페에서 음료 기다리는 사람, 버스에서 앉아있는 사람, 등등 그렇게 길에서 멍하게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리고 하다 보니 오래 걸렸지만 스스로 깨달았어요. 나는 사람에 관심이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현재도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사회에 관심이 많고 그 안에 사람들의 모습을 작업으로 만듭니다. 분명 오래 걸렸어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까지 깨닫는 시간이. 그렇지만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의 말을 듣고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스스로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운 것이라서 더 단단한 알맹이로 남았어요. 졸업을 하면서 막 이제 얻은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저는 대학원을 도전합니다!


스스로의 씨앗을 찾아내는 과정, 기본기를 탄탄하게 채우는 과정. 제가 학부에서 겪었던 가장 중요한 두 가지였어요. 오래 걸리더라도, 토대가 단단한 건물이 흔들림이 없어야 하듯, 4년간 눈에 보이는 성과는 저는 없었어요. 장학금을 받는다던지, 전시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다던지, 갤러리의 선택을 받는다던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졸업할 때 즈음 한 가지는 확실해졌어요. 나는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작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SAIC는 자유롭습니다. 수업의 규제도 거의 없고, 전공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한 없이 편한 수업만 들으며 졸업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4년이란 시간, 한 명의 예비 작가를 키우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학생증 반납- 동문증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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