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하나도 못 하네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601호 언니와의 산책.
해방 후 갑작스레 늘어날 활동량에 다리가 후덜덜 거리지 않도록 열심히 다리에 힘을 주어가며 걷고 또 걷고 있다.
똑같은 길을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일상을 나누며 걷는지라 별 다를 얘깃거리가 없다.
언제 해제가 끝난다더라 오늘은 확진자가 몇 명이라더라 등의 뉴스는 새롭지도 않고 이미 우리의 관심사도 아니다.
그저 길에서 발견되는 아주 작은 변화라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오늘은 채소가게 물이 두 줄 더 팔렸구나
오늘은 채소가게 할아버지가 청소를 하셨구나 다행이다 너무 더럽던데.
오늘은 35동 101호 비파나무에 비파가 5개 열렸구나
오늘은 35동 101호 비파나무에 비파가 썩어가는구나
아 지루하다.
자우림의 노래 ”일탈”의 가사를 빌어 가능한 일탈을 상상해 보기로 했다.
-이건 일단 봉쇄 끝나고, 급히 다닐 사람들 다 다니고 비행기표 좀 싸지면 가자.
-이건 딱인데? 601호 언니네 아파트 옥상이잖아!
아 , 근데 이건 좀 무섭다 야. 분명 죽을 거야
-전철역 다 막혀서 못 들어가. 게다가 옷 벗고 길거리 돌아다니는 건 우리 여러 명 봐봤잖아. 보기 좀 그렇더라.
특히 비 오고 바람 불던 날, 훌떡 벗고 얼굴만 가린 채 엎드린 아저씨 기억나지? 근데 그 아저씨 왜 그랬을까? 일탈이었을까?
-이런 건 내가 좀 전문이지.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핀 게 꽃인데. 꽃은 지금도 달 수 있어.
- 선도 삭발도 남편이랑 상의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삭발도 봉쇄 해제되면 미용실 가서 해야 하지 않을까? 공구 예약이라도 해야 하나
-벗고 조깅은 괜찮은데, 감기 걸리면 괜히 의심받아, 격리시설 가야 해, 안돼.
아, 가능한 일탈이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추는 정도라니.
일탈에도 자유가 필요하구나.
어느 음악을 즐기는 한국인 한 분은 아파트 단체방을 통해 악기 연주가 가능한 주민들을 불러 모아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고 한다.
또 운동을 즐기시는 어느 분은 단지 내 빈 공간에 임시로 네트를 만들어 걸고 작은 배드민턴 코트를 만들어 주민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즐긴다고 한다.
별스타에서 뵌 어느 상하이 교민은 집, 단지안 소품만을 이용한 연예인 화보 흉내내기를 통해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자유를 누릴 때도 하지 않던, 사람들의 단체방에 퍼담길만 한 특별한 일탈을 하지 않아도 이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도 이렇게 특별한 이야깃거리로 더 많은 글을 쓰고, 잠깐 끊어둔 그림도 다시 그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 내게 봉쇄 해제의 순간이 주어진다면, 그것이야 말고 일탈이 되겠구나, 60 일 넘게 똑, 같던 지루한 일상의 일탈.
그 일탈이 제발 어서 오기를. 맘껏 즐겨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