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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은 것처럼

아침마다 비어있는 내 심장

by 보부장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건 새로운 회사에서 조금씩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늘 그랬듯, 알람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코가 막힌 것도 아니고 방의 공기가 나쁜 것도 아닌데, 뭐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내 배에 턱 하니 얹힌 , 아직 쌕쌕 낮은 숨으로 잠이든 딸아이의 다리 때문인가 싶기도 했지만 답답한 것은 가슴이지 배가 아니었다.


가슴에 심장이 없는 느낌이었다. 숨은 폐로 쉬는 게 아니었던가. 숨쉬기가 어려운데 심장이 없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상태라 꿈 속인가, 억지로 무거운 실눈을 떠 보았다. 그런데 그때,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분홍색 모기장 꼭대기 아래 저기 어딘가, 내 심장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 것이지만 내 가슴에 들어있지 않은 내 심장. 한참을 그렇게 누워 숨이 조금씩 쉬어질 때까지 심장이 기다렸다. 역시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천천히 심장이 내 마음 안에 들어와 앉는 느낌이 들면서 숨을 몰아 쉴 수 있었다. 다행이다. 살아는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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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같았다면 길고 지루한 하품 한번으로 온몸에 덮여 있던 잠을 털어 내며 아우, 일어나기 싫다 한 소리 하긴 했겠지만 내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을 아침이었다. 하지만 잘근잘근 잘게 숨을 쪼개서 내쉬어야 하는 중에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아직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 알람을 끄고, 물을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는지 짐작이 되던 터라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내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나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는 말에 극히 공감을 해왔기에 흔히들 조심하라는 아홉수도 신경 쓰지 않았고 가끔은 내가 몇 살인지 덧셈 뺄셈을 해봐야 정확히 계산이 될 정도로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객관적으로 마흔이라는 벽은 쉽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우리 나이 아직 만으로는 30대라는 둥, 외국 나이로는 30대라는 둥, 각종 핑계로 40이라는 숫자와 엮이고 싶지 않던 때부터 몸 여기저기에서 고장 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올해 3월에는 갑자기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을 겪었다. 24시간 기계를 몸에 걸고 심전도를 확인하는 홀터 검사까지 진행한 결과, 스트레스와 커피를 줄이라는, 나로서는 조금 지키기 힘든 처방과 한동안 끼니마다 한 움큼씩 먹어야 하는 약의 도움으로 금방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새로이 찾아온 심장의 문제 또한 병원을 찾아봐야 딱히 구조적이나 병리학적으로 의미 있는 원인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원인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중이고, 그 스트레스로 심장이 빠져나가는 경험 중일뿐이다. 그렇게 가벼이 넘기기로 한다. 설마 정말 숨을 못 쉬는 일이 생기진 않겠지.


처음 증상이 시작된 지 한 달 여가 지난 지금도 아침마다 심장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한참 숨을 고르고서야 침대에서 일어난다. 가끔은 시간이 더 걸릴 때도, 가끔은 무심히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만, 숨을 얕게 자주 쉬어야 하니 조금 답답하긴 하다. 그리고 답답함보다 조금 더 슬프다. 심장이 탈출을 해대는데도 평소와 다름없이 옷을 챙겨 입고, 자전거를 타고 회사를 가야 하다니 말이다.


해결책은 뻔하다. 어서 이 어려움과 익숙해지든, 혹은 이 어려움과 이별하든.

그리고 젊은 시절 가슴 가득하던 자신감도 나도 모르게 다 써버리고, 어깨에 가득 주렁주렁 달게 된 지금, 그 결정이 내게는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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