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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조심하세요

몇 가지 관리도 귀찮으시다면.

by 보부장

개인적인 일에서도 그럴 때가 있지만, 어떤 일에 휘말려 있을 땐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혹은 잘 굴러가는 것 같아도 그 방향이 문제가 있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회사도 그렇다. 이직 때마다 아직 조직에 녹아들지 못한 외부인의 눈으로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갓 이동한 회사의 문제점이 보일 때가 있다.


이번에 만난 회사의 가장 큰 문제는 업무의 개인화였다. 워낙 중국 사람들이 개인주의 성향이 심하긴 하지만, 이 회사는 유난하다. 업무 매뉴얼은 고사하고 바이어, 주요 거래처 리스트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물어보면 돌아오는 가장 흔한 대답은 "그거 내 담당 아니라서 난 몰라". 모든 일을 다 같이 하자는 건 아니지만, 내 일은 내 일이니 너는 알 필요 없고, 니 일은 내 일이 아니니 나에게 물어선 안된다는데 참 기가 막혔다. 그리고 당연히 함께 알고 있어야 할 협력업체의 연락처도, 담당이 아닌 이유로 묻거나 알려주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큰 문제다.


나는 조직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에서 한국인 기업들이 외국기업로서 겪는 문화, 성격, 심지어는 법률적인 차이까지 이리저리 몸소 겪으며 걸어온 덕에 어떤 점은 주의해야 하고 어떤 점은 그냥 흘려버려야 하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선 어차피 다른 나라 땅에서 다른 사람의 힘을 빌어, 다른 가치의 돈을 벌어먹으려면 "한국 기업 문화를 따르라!"라고 무조건 주장하기보다는 너희들은 그렇구나 라는 생각으로 적어도 개인과 그들의 문화는 존중해야 한다. 한국에서 중국 사람들의 단점, 문화 충돌, 기괴망측한 뉴스들만 접했던 사람들로서는 그 사람들에게 한국 기업문화를 맞춘다고? 라며 놀랄 수도 있겠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던가. 로마법이 훌륭하고 무결해서가 아니라, 그저 로마 땅에 발을 붙였기 때문에 그들을 존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법에 따라 기업을 만들고, 직원들을 "중국식으로" 존중하고 회사를 잘 키워 왔다고 해도, 외국 기업이 중국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중국이 개방과 함께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고 수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하던 약 20여 년 전, 수많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으로 달려왔고 물론 크건 작건 알차게 뿌리를 내린 회사도 많지만 몇 년 되지 않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돌아간 곳들도 부지기수다. 대기업의 경우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들의 실패는 대부분 "관리"의 문제였다. 물론 한국에서도 어느 개인이 회사를 접게 만드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지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기업이 관리자 한 명에게 농락을 당하는 건 한국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당시 제일 흔한 사례가 중간에서 통역을 하며 바이어와 공장 간의 업무를 진행해주던 중국 직원이 공장과 통째로 손을 잡고 나가서 회사를 차리는 일이었다. 바이어와 돈독한 관계가 있다면 조금 다를 문제지만, 그들이 나가서 회사를 차린다는 건 이미 양측의 손을 다 잡은 후라는 의미다. 같은 퀄리티를 현지인이니 가능한 훨씬 좋은 가격으로 제공하겠다는데 의리 운운하는 것은 시장논리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10여 년이든 20여 년이든 꾸준히 오더를 유지하고 잘 관리하고 있는 회사는 사장님이나 임직원부터 다르다. 일단 언어에 대해서 완벽하진 않지만, 중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며, 거래처와의 중요한 미팅은 직원에게만 맡기지 않는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 우리와의 협업을 위해 함께 중국에 진출하신 거래처 사장님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다. 바이어라 해도 어린 여자 직원의 얘기는 중요치 않게 흘려듣는 게 "보통의 어른"들이 었는데, 그분은 저녁시간에 공장 사람들과 소주와 노래방같은 한국 문화를 나누는 대신에 중국어 학원을 등록하셨고 1년이 넘게 개근상까지 받아가며 공부하셨다. 결과는? 규모가 크진 않지만 15년이 넘도록 꾸준히 중국에서 탄탄하게 회사를 꾸려가고 계시고 한국에서 가족들과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으니 본인은 성공한 삶이라 내게 얘기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그때 당신께 현지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현지화할 수 있었다며 나에게 고맙다고 하셨다. 물론 그분이 배움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른 이들 보다 수월하게 중국어를 배우고 현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일은 어려워도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는 그분의 관리자로서의 마인드가 더욱 힘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다른 관리의 방안은 모든 업무를 공적화 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중국 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심하다. 니 일 내 일이 확실하며 서로 간섭하는 것도 싫어한다. 하지만 관리 측면에서 회사는 개인에게 모든 업무를 공적 자료로 남겨두게 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가장 완벽한 상황은 누군가가 부득이하게 자리를 비웠을 때 누군가 비슷한 업력의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일이 흘러가는 것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일 하는 방식이 달라 사람이 바뀌면 한동안 조직 전체가 힘들어 하긴 하겠지만 그래서 관리의 힘으로 이를 대비해야 한다. 작게 따지자면 거래처의 연락처, 결재 방식, 바이어와의 업무 매뉴얼 까지. 공장에서 일어나는 단순 업무라면 이런 매뉴얼이 기본화되어있겠지만, 사무를 보는 경우 개인의 업무를 공적화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이 만든 자료를 파악할 때는 한참 자료가 눈에 들지 않아 업무 파악에 애를 먹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룰만 지켜두면 적어도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해 전 조직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순하지만 이러한 원칙을 세우고, 이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중국에서 필요한 관리 방법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지만, 회사의 정해진 룰에 따르게 하고, 절대 회사의 업무를 개인화하지 않는 것.


어떤 사람은 "내가 없어서 이 회사가 힘들어봐야 내가 소중한 지를 알지"라고 하지만 사실 기업에서 사장님을 제외한다면, 그 누가 없어져도 회사는 돌아간다. 문제는 내가 없어졌을 때 그 빈 자리가 얼마나 잘 채워지느냐 하는 것이 회사와 개인의 업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회사라면 당연히 그런 기본적인 관리는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중국에 진출한 소규모의 기업들에 의외로 이 간단한 관리의 룰이 부재하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아 바이어 관리를 명목으로 밖으로만 도는 사장님 아래에서도 회사가 쑥 쑥 커나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런 내부 관리가 잘 되지 않는 회사는 흔한 사기 한번 안 당하고도 멀쩡하게 뜬 눈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잘 키워낸 직원이 동종업계로 진출하여 선의의 경쟁자가 되는 경우라면 박수를 치고 지지해줘야 하는 일이겠지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동종업계에 직원이 회사를 차렸다는 건, 나중에 알고 보니 배신의 결과인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렇다.

난 지금 새로 옮겨온 회사에서 , 매뉴얼은 커녕 전화번호 하나 내주지 않는 직원들을 통해 업무를 파악하느라 힘들고 지치는 중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미 업무를 개인화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직원들과 이 직원들이 빠져나갔을 때 회사가 겪게 될 어려움. 나도 사장이 아닌지라 안타깝지만 함께 할 수 없겠네요 안녕히 계세요 한마디면 끝날 일이지만 오랫동안 타지에서 잘 성장해온 회사가 한순간에 쓰러지는 모습을 보는 건, 참 슬픈 일이기 때문이다.


아, 그런 관리의 부재 속에서도 어떻게 이 회사는 오랫동안 잘 성장해 왔냐고 물을 수 있겠다.

실은, 이 회사 또한 그 관리의 부재로 인해 얼마 전 업무를 개인화 한 직원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고 쓰러졌던 상황을 알지 못하고 이 곳으로 옮겨 왔다. 내 잘못이기도, 그래서 또한 지금 내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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