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는 언덕이 없다.
언덕은커녕, 한국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오르막 내리막 길도 없어서 힘들이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전동차,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다. 운동을 싫어하는 내게 딱 좋은 생활의 바닥이다. 그래서 전동차 주행 중 조심해야 할 거리를 찾는다면 갑자기 소리도 없이 앞으로 치고 나와 무섭게 달려가는 배달 아저씨들의 질주나 신호에 관계없이 횡단보도라는 이유로 멍하니 도로로 들어서는 보행자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멍하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자전거 도로에 서 있는 사람들 정도이다.
그런데 가끔 낡은 수도관, 가스관 등을 교체하느라 오랜 시간 도로 전체를 뜯어내는 공사 구간을 만날 때가 있다. 공사는 주로 밤에 이뤄지지만 낮 동안에는 안전을 위해 아스팔트가 다 뜯겨나간 도로를 두꺼운 철판으로 덮어두어, 사람들은 그 철판 위를 다리처럼 지나다녀야 한다. 그 임시 도로의 역할을 하는 철판의 두께는 어림잡아 약 3-4cm 정도 됨직한데, 도로 바닥과 이 철판의 턱에는 노랑 검정, 주의를 환기시키는 칼라를 띤 비스듬한 고무판이 함께 깔려있는 것이 보통이다. 걱정하지 말고 부드럽게 올라타고 부드럽게 다시 내려가라고.
문제는 가끔 이 비스듬한 고무판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을 때이다. 전동차를 타고 처음 아무 생각 없이 그 턱을 건넜을 때 덜컹, 전동차가 흔들렸고 넘어지진 않았지만 다시 균형을 잡고 주행을 하느라 긴장을 해야 했다. 그때부터 3cm 턱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저 턱을 올라타다가 기울어지면 어떡하지?'
'저 정도 높이면 내려올 때 뒷바퀴에 충격이 갈 텐데 바퀴가 터지지 않을까?'
그 뒤로도 나는 공사 중인 길을 만날 때마다 비슷한 걱정을 하며 소심하게 속도를 낮추었고, 오히려 그 짧은 턱에 바퀴가 밀려 균형을 잃고 흔들거리는 전동차를 바로잡기 위해 양 팔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매번 아무 일 없이 잘 지나가긴 했지만 갈수록 턱을 만나는 나는 속도를 더 줄이고 더 어깨를 움츠렸다. 3cm 정도에 불과하던 그 턱은 매번 내 마음속에서 그 높이가 자라나 이젠 큰 절벽이 되어 내가 턱을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
그러기를 몇 번, 결국 어느 날, 경사 받침대가 없는 턱을 발견하고 앗 어쩌지 하는 짧은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속도를 낮추다가 결국 비틀, 바퀴가 그 짧다막한 턱에 밀려 옆으로 기우뚱 기울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속도를 충분히 줄인 터였고 튼튼한 한쪽 다리로 무거운 전동차 몸체를 지탱한 덕분에 꽝 우스꽝 스럽게 넘어지진 않았지만, 뒤에서 오는 전동차들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더라면 큰 사고로 연결이 되었을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이었다. 넘어진 전동차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느라 어깨가 뻐근했다. 언듯 보니 종아리에 시커멓고 묵직하게 멍도 들었다.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규칙도 법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중국 도로에서 헬멧도 쓰지 않고 쌩쌩 10,000km가 넘게 운행을 해왔는데 왜 그깟 3 cm 턱이 두려워졌을까. 게다가 가끔 주행자도 보행자도 고려하지 않은 15cm 위 인도 위의 자전거 주자창에 올라탈 땐 무거운 전동차 앞바퀴도 으라챠차 들어 올리고 내려올 땐 쿵! 뒷바퀴가 땅에 떨어질 때의 충격도 나름 즐거웠는데 말이다.
혹시 나는 살아가면서도 남들이 어려워하는 큰 일들보다 나만 아는 작은 변화들이 더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그냥 평소의 속도대로 걸어가면 되는데.
돌아가는 길엔 가볍게 넘어보기로 한다. 조금 속도를 줄이기는 했지만 그저 편평한 길인 것처럼, 그냥 거기 원래 있던 것처럼 양 팔에 힘을 꽉 주지도 않고 어깨를 움츠리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지나 보기로 한다.
덜컹, 좋아 자연스러웠어.
헬멧의 높이가 조금씩 올라갔다 내려오는 다른 전동차들에 맞춰 나도 흐름을 잃지 않고 잘 지나갔다. 미간을 좁히거나 두 손을 꽉 쥐지 않고도 가던 길을 편히 갈 수 있었다.
그것 봐. 별거 아닌데. 그냥 지나면 될 일을.
물론, 바퀴에 조금 흠집이 생길 수도 있겠지.
턱에서 내려올 때 덜컹, 안장이 조금 더 가라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서든 생길 수 있는 흠집이고 이 충격이 아니라도 결국 매일 조금씩 가라앉게 되는 안장이다.
또 언젠간 그 턱에 걸려 넘어지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지금 당장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내 두려움으로 저 턱을 절벽처럼 키우지 말자.
3cm 턱도 못 넘으면 난 무엇을 넘을 수 있을까.
내 출근길에 공사 구역이 평생 없을 순 없겠지만, 조금은 덜 잦길 바라며,
오늘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내 인생의 턱들도 가벼이 넘기고 집으로 안전히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