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어떻게 갇히랴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는 지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잠궈!

by 보부장

도시 여기 저기 놓인 코로나의 불이 꺼지지 않고 있다.

3월 들어 상하이의 코로나 확산세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한 지역에 사는 직원이 갑작스런 봉쇄로 출근을 하지 못했다. 내가 직접 아는 누군가가 봉쇄를 당해 외출을 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핵산 검사에 문제가 없어 48시간 만에 해제가 되었다. 다들 웃으며 고생이 많았다고,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냐며 다독거리고 넘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은 다른 팀의 직원이, 며칠 뒤엔 처음 갇혔던 또 다른 직원이 마치 로테이션처럼 돌아가며 출근이 불가하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하루 이틀 만에 해제가 되었다가 다시 갇혔다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팀에 구멍이 난 상태로 업무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없이 집에 갇힌 직원도 맘 편히 있지는 못했겠지만 정상 출근을 한 직원들이 갇힌 동료들의 일까지 다 맡게 되니 업무 부담이 늘어났다. 일이 잘 될리도 없다. 집에 갇히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나 아님 집에 갇힌 걸 부러워해야 하나.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제품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도 확인하고 또 바이어와 실물을 주고받기도 해야 하는 일인데 사무실에 출근을 하지못하면 업무는 그대로 중단될 수밖에 없다. 사무실 꽉 찬 샘플들을 집으로 죄다 나를 수도 없고, 뉴스에서 본 금융업 종사 사람들 처럼 사무실 바닥에 침낭을 깔고 회사에서 생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난번 집 주변 대형마트가 며칠 봉쇄된 이후로 아직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 확진 소식은 없지만 지금 확진자 다수 발생으로 문제가 되는 지역과는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 우리도 언제 바이러스에 침범을 당할지 모르는 터였다. 갇히더라도 최소한의 업무는 해야겠다 싶어 일단 지금 당장 바이어와 얘기 중인 아이템의 견본과 필요한 내용들을 휘날려 쓴 자료를 집으로 가져다 두었다.

회사에서 갇힐 때를 대비해 재난 구호 가방을 준비해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잠자리는 그렇더라도 먹을 건 어쩌나.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봉쇄 1.jpg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영상을 통해 만난 봉쇄 지역 사람들의 생활은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먹을 것이나 생활필수품이 없어 걱정하는 엄마들도 많았지만 학부모들에게 더 큰 문제는 아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3월 초 개학한 지 하루 만에 봉쇄를 당한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을 익히지도 못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학습을 혼자 해나가야 했다. 선생님들 또한 봉쇄된 아이들만을 위해 따로 온라인 수업 자료를 전달하느라 업무가 두배로 늘어났다. 학생들만 갇힌 건 아니라, 3월초 상하이로 부임하시고, 아직 집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학교는 커녕 상하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아직 못 보신 분들이었다. 산 넘어 산이다.


여기저기 종교, 사회 단체에서 봉쇄 지역 교우들에게 급히 구호품을 지급하기 시작했는지 단체방마다 구호품사진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메세지들이 올라왔다. 성당에서는 달콤 바삭한 시리얼과 각종 과자들 , 신선한 과일과 햇반과 한국 라면을 보내준 모양이다. 밥은 어떻게든 해결하리라는 어른들에 대한 믿음과 이 시간을 더 지겨워할 아이들을 향한 신부님의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센스 있고 나름 럭셔리한 구호품이었다.


제발 저 구호품이 다 사라지기 전에 봉쇄가 풀려야 할 텐데.





구호품 사진을 보면서 슬기로운 어떤 어른들은 나도 저런 비상 식품을 쟁여둬야겠구나 생각했겠지?

난 갇혀있지 않으면서도 풍성한 구호품이 쬐끔 부럽다는 철없는 생각만 했더랬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쟁였어야 하는 건데....

역시, 난 주부로선 모지리다. 모지리. 미안하다 아들, 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