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조리, 죄다 봉쇄

2022년 3월 28일,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상하이 봉쇄 발표

by 보부장

결국 상하이 전 지역이 봉쇄되고 말았다.

아니라더니, 결국 모조리, 죄다.


사실, 뜬금없던 지난 목, 금 이틀 동안의 해제를 제외하고 3월 18일부터 계속 봉쇄를 당했던 나는 다른 구区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통해 현재 미봉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식자재 구매나 배달음식 주문 등에 아무런 문제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스러웠다. SNS에는 얼마 전에 상하이에 상륙한 유명한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의 멋진 건물 앞에 다닥 다닥 긴 줄로 대기 중인 사람들의 사진도 올라왔다. 나만 갇혀 있는 것 같아 화가 나긴 했지만, 그래 , 문제가 있는 지역만 관리를 하면 되지, 굳이 확진자가 없는 지역에서도 사람들을 다 가둬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싶었다.

지금 내가 화를 내면 안 되지. 누군가는 코로나에 걸려 험한 곳으로 격리도 된다는데. 나는 그래도 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을 수는 있잖아.


상하이 정부에서는 점점 늘어나는 확진자와 봉쇄구역에도 불구하고 상하이가 비단 중국사람들의 도시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국제적 도시라는 근사한 이유를 들어 이미 몸살을 한차례 겪은 션전深圳처럼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혹시 그런 빈말로 시민들을 안심시키고 그들 스스로 봉쇄에 대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까. 결국 3월 27일 저녁, 상하이를 크게 좌우 두 구역으로 나누어 봉쇄하고 전시민을 대상으로 한 핵산 검사를 실시한다는 갑작스러운 발표를 내놓고 말았다. 그 수많은 카더라 통신원들도 미리 알아채지 못한 소식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상해 중심을 가로지르는 황푸黄浦강을 중심으로 동쪽에 위치한 푸동浦东 지역은 3월 28일 5시부터부터 4월 1일 새벽 5시까지, 서쪽에 위치한 푸시浦西지역은 4월 1일 새벽 3시부터 4월 5일 새벽 3시까지, 각각 4일간, 총 8일간 도시 봉쇄가 이뤄질 예정이었다. 도시를 다른 지역 도시로 부터 막는 정도의 도로 봉쇄가 아닌, 시민들을 각자의 집안에 가두고 검사외에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게 하는 주부추후 足不出户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 보자면 정부에서 해왔던 말처럼 “절대” 도시 전체가 봉쇄되는 것은 아니었다. 푸동 지역이 봉쇄를 하는 동안 푸시지역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고, 푸시지역이 봉쇄를 하는 동안 푸동 지역은 …글쎄. 공지에 쓰여있지 않아 알 수 없을 뿐. 어쨌든 절대 전체 도시가 같은 시간에 꼼짝 못하는 것은 아니라 우길 수 있을 만한 애매한 발표문이었다.


그렇다고 관리지역에서 이미 봉쇄생활을 하고 있던 나 같은 사람들에게 4월 1일까지 자유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시간에 묻혀 자연스럽게 계속 갇혀있을 뿐이다. 이미 봉쇄 지역에 속해, 집밖을 나갈 수 없던 사람들은 식품구매 전쟁 (챵차이抢菜)을 위한 새벽 6시의 전쟁이나 공동구매에 대해 스킬이 늘어가는 중이었지만, 봉쇄 하루 전 늦은 저녁 통지를 받은 사람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푸동 지역 대형 슈퍼나 상점들이 3월 27일 늦은 밤까지 영업을 연장했지만 사람들은 카트 두세 개가 넘쳐나도록 물건을 담고, 이미 확보한 물건을 남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애쓰고, 긴 줄을 기다려 계산까지 끝내느라 이미 아수라장에 있었다. 물론 봉쇄 중인 나는 그 현장에 있지 못했지만 상하이 봉쇄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한국 뉴스며, 중국 내 SNS 여기저기 공유된 사진들만 보아도 그 끔찍했던 공간에 함께 하는 것 같았다. 니 물건이니 내 물건이니 치고 박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차라리 저런 곳에서 황망해하지 않고 준비 없이 갇혀버린 게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나흘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지만 푸시 쪽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4시간이 아니라 4일 후에 갇힐 뿐, 식자재는 이미 부족한 상황이었고, 그나마 외출이 가능한 사람들이 남은 재고들을 쟁취하려 애쓰는 힘겨운 모습도 속속들이 전해졌다. 그리고 증권업, 금융업과 같이 전체 중국 시스템과 관련된 일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간단히 짐을 꾸려 사무실로 들어간다는 소식도 들렸다. 봉쇄로 인한 전체 충격을 최소화 위해 사무실에서 폐쇄 생활을 결정한 것이다. 나흘만 참으면 된다고, 나라에서 생활지원은 해주겠다고 약속했겠지만 가족들을 두고 썰렁한 사무실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내 집에 갇혀있어도 이렇게 힘든데.


그 바쁜 와중에도 사람들은 풍자에 소홀하지 않았다. 좌우로 휘어지게 나눠진 봉쇄구역을 두고 훠궈를 끓여먹는 솥에 비유하거나 최소 일주일 동안 만날 수 없는 푸동과 푸시의 시민들을, 은하수를 사이에 둔 견우와 직녀에 빗대는 그림도 등장했다.

혹자는 4월 1일 새벽 3시 푸시지역 봉쇄 시작, 당일 5시 푸동 지역 봉쇄 해제 시간을 두고, 4월 1일 새벽 3시 푸시 쪽 황푸강변을 출발하여 푸시 쪽 강변에 5시에 도착하면 계속해서 봉쇄를 피할 수 있다는 기가 막힌 방안도 내놓았다. 물론, 수영을 하든 물에 떠있든 잠수를 하든, 2시간은 어떻게든 견뎌야 할테다. 즐길 수 있다면 더 좋겠고.

이런 이야기에 웃으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사람들의 재치에 웃음이 나면서도 또 눈물이 그렁그렁하도록 슬펐다.




하지만 3월 28일부터 매일매일 푸동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핵산 검사에서 여기저기 숨겨져 있던 확진자들이 (당연히) 무더기로 발견되었고, 결국 모두가 긴가민가했던 4월 1일 푸동 지역 봉쇄 해제 계획은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4월 1일부터는 푸시지역에서도 숨어있는 바이러스를 찾아내기 위해 시민들의 목구멍을 샅샅이 뒤지는 면봉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4월 5일 새벽, 푸시 지역 해제 역시 없던 말 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 23일까지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조금씩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이전 04화언제 어디서 어떻게 갇히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