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주부추후 足不出户!
3월 28일 , 푸동부터 시작된 상하이 전체 봉쇄 때 등장한 말이다. 이 사자성어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발이 문 밖을 나가지 않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문"이 내 집 문을 말하는 것이냐, 아파트 단지의 정문을 을 말하는 것이냐. 아직 전체 봉쇄가 진행되지 않은 푸시지역 주민들에게는 뜨거운 관심사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약 2주간 봉쇄된 방식대로, 내 집 문은 나갈 수 있되, 아파트 단지만 나갈 수 없는 것이라 자신했다. 집안 봉쇄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어떻게 나흘이긴 하지만 모든 시민들을 집 안에만 가둬둘 수 있겠냐며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큰소리를 쳤다. 아니 말이 되냐고, 그럴리는 없어.
푸동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구호품 배달은 자원봉사자들이 문 앞까지 배송을 해주는데 재택근무가 너무 바빠 꼼짝을 못 하는 지라 실제는 어떤 지 모르겠다 했다. 그나마 내 궁금함을 해소해 주기 위해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평소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군데군데 모여 앉아 한담을 나누고 계신다고. 아마도 단지 내 산책은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것봐.
하지만 우리 아파트 단체 대화방에서는 푸동 하늘에 시민들을 감시하는 무인비행기가 등장했다며, 사진이 찍혀 신분이 들통나면 문제가 될거라는 "협박성 카더라"도 들려왔다 (중국에서는 빨간 불에 횡단보도를 지나가면 순간 그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길거리 전광판에 뜰 정도로 AI 를 통한 감시 생활이 이뤄지고 있다). 도대체 뭐가 진실인 걸까.
이런 논쟁이 중국어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닌 듯, 정부에서는 결국 정확한 해석을 내놓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밖으로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너무 놀랍고 절망적이었다. 물론 2020년 2월 , 한국에서 돌아온 후 집안에서 2주 동안의 격리를 지내보긴 했지만 그때는 코로나 초기이기도 했고 해외에서 돌아온 내 조건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600만 시민 전체를 집안에만 가두겠다니 너무 몰상식한 정책이었다. 하긴 , 푸동 봉쇄 이후 슬픈 영화처럼 떠돌아다니던 영상에서 길거리엔 사람 하나 없긴 했지. 주민들이 사는 아파트 단지는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3월 31일 밤 10시, 집안 봉쇄의 충격에 마음이 어지럽던 중 별 것 아닌 이유로 사춘기 아들 녀석에게 화를 버럭 내고 집을 나와버렸다. 이제 당분간은 이렇게 문을 박차고 나갈 수도 없다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머리를 식히려 어두컴컴한 길을 걸었는데 어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돼지고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늦은 밤 치고 많은 사람들이 달리듯 잰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것 같았다.
걷다 보니 단지 내 식료품 가게에서 시작한 줄이 단지 중간까지 늘어져있다. 나처럼 집안 격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다 뒤통수를 맞은 사람들이 식자재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단지 안의 식품 가게를 찾은 것이다. 아, 내일부터는 이 가게도 문을 닫겠구나. 집안에 무슨 채소를 쟁여두었던지, 뭐가 필요했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일단 나도 홀리듯 그들을 따라 가게로 들어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줄이라도 세워놓게 아무나 데리고 나올 걸. 그런데 남아있는 식자재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다 시들어 빠진 채 널브러진, 심지어는 일부 썩기까지 한 채소 더미에서 그나마 괜찮은 것들을 골라내느라 엎드려 있고, 공산품이 있던 매대는 텅텅 비었다.
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었으니, 일단 후퇴를 하자 싶어 꽉 들어찬 사람들 틈을 돌아서는데 자연스럽게 정육코너 앞이다. 대여섯 명쯤을 앞에 두고 내 뒤로 사람들이 급히 줄을 따라 섰다. 그래, 이왕 줄에 낀 김에 고기라도 좀 사가자.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창고에서 계속 고깃덩어리를 꺼내오는 정육점 아줌마는 장사가 잘되어 아주 신이 난 듯 칼을 힘차게 내리치며 고기를 뭉텅뭉텅 시원하게 잘라낸다. 평소라면 값을 속이는 것은 아닌지 쪼잔하게 따져 묻기 좋아하는 상하이 사람들이지만 요즘 물건을 살 때 가격을 묻는 것은 사치다. 그나마 살아 생전의 몸매가 분명히 드러나 보이는 통돼지고기의 위아래를 구석 구석 훑으며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는 부위를 달라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일 뿐이다. 지금껏 가게에서 주는대로만 고기를 샀던 나는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던 아주머니를 따라 그냥 같은 부위를 달라고 얘기했다. 마치 원래 그 부위를 사려고 했던 것처럼. 좋아 자연스러웠어.
저녁 내내 화장실 한 번을 가지 못했다며 잠깐 사라졌다 나타난 아주머니는 이참에 돈 많이 벌어 좋겠다는 농담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뿐이라 얘기하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이 없다. 이 아주머니도 내일부터 꼼짝달싹 못하겠지만 그동안 넉넉해진 계좌 덕분에 나흘 내내 행복하시겠구나. 이 와중에 돈을 버는 사람은 또 버는구나.
밤 12시가 넘어서야 묵직한 생고기 덩어리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화풀이 쇼핑을 한 거냐고 웃었고 나도 화를 식히러 나간 덕에 돼지고기를 확보했으니 아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며 웃고 말았다. 오히려 화가 났었다는 사실도 깡그리 잊어버린 채 둘이 신나게 돼지고기를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으며 뿌듯해했다. 아 현실이여.
다행히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강제적인 조치가 없었지만 어떤 구역에서는 집집마다 집 밖을 나오지 못하도록 종이로 된 봉인지를 붙였다가 시민들에게 크게 항의를 받았다. 알고 보니 그곳이 고위관리자의 방문 예정 구역이었다는데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완벽하게 관리 중인 것으로 보이고 싶은 지방관리의 충성심에서 기인한 일이었다고 본다. 무슨 중세시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싶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강력한 정책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공식적으로 반대를 한다거나 집단행동을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강력한 정책 아래 적절한 대책을 찾을 뿐. 대부분 순종하는 분위기이다. 단체 대화방이건 각종 플랫폼에서건 내 생활과 생각을 공유하는 sns 에서건, 상하이 화이팅 上海加油! 눈물 나게 국뽕스러운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정책의 부당함에 항의하거나 정부를 비난, 비꼬는 내용이 가끔 등장할 때도 있다. 하지만 특히 사람들의 불안한 마을을 선동하거나 정치적 이슈를 포함한 내용은 등장하기가 무섭게 삭제된다. 게시자는 경고를 받고 계정이 중지되기도 한다. 위챗 없이 살 수 없는 중국 생활인데 그야 말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너 자꾸 까불면 위챗 계정 없애 버릴 거야. 조심해.
푸동 지역은 4월 1일 이후 해제가 되었을까?
상하이 시는 공식 계정을 통해 확진자가 없는 구역은 계획대로 봉쇄 해제를 하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참고로 푸동 지역 36개 구역 중, 확진자가 있는 구역의 개수는 36개이다.
셈은 각자 해보시길...
3월 31일 밤 돼지고기와의 산책을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동네의 봄날 풍경을 매일 조금씩 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