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 단체방을 통해야 살아갑니다
아파트 전체 봉쇄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3월 중순 이후, 근거가 있는지 없는 지 모를 카더라 뉴스가 대화방에 넘치고 그 카더라 뉴스를 공식적으로 인정, 혹은 부정하는 공식계정도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우리는 실제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건 정부도 마찬가지였을터, 거의 대부분 아파트에 생활하는 상해 시민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부는 아파트 단체 대화방을 상부의 지시를 내리는 창구로 활용했다. 하다못해 90이 넘으신 할머니도 단체방에 불려와 여기는 어디냐며 음성 메세지를 남겨대셨고, 강제는 아니었지만 공지를 따르지 않아 발생하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아파트 단지에 살지않지만 그 할머니의 가족이 단체방에 참가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이 아파트로 옮겨온 후 7년째 같은 자리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보다 먼저 자리를 잡은 한국인 친구가 사는 601호를 제외하고는 앞집 옆집 윗집, 이웃집 그 누구와도 정겹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다. 가끔 계단에서 마주칠 때 눈인사를 하거나 1층 입구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정도의 정은 나누지만 음식을 주고받는다던지 얘기를 나누는 등의 적극적인 교류는 없다. 문화적으로나 사회적 이념으로도 맞지 않은 부분이 많고 특히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정치적 이슈 때문에 말없는 중국인 인척 사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 17년 중국 생활의 결론이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집을 포함한 20개 동 주민들의 위챗 단체 대화방에 초대되면서 윗집 아랫집은커녕 내 주변 전체 주민들의 생각과 생활을 라이브로 중계받고 있다.
단체 대화방의 이름하여 “함께 만드는 아름다운 사회 共建美好社区”. 참으로 공익 적로구나!
이 단체방의 처음 목적은 단체 핵산 검사나 구호품 분배 같은 공식적인 내용 전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단체방은 정부의 공식적 통보 외에 봉쇄에 대한 따끈따끈한 “카더라”뉴스와 이 상황에 대한 한탄, 그리고 평소 친구와 나누었을 시답잖은 사담까지 뱉어놓는 일기장이 되어버렸다(그래서 이 봉쇄 일보를 쓰면서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대화방을 통해 복기하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강력한 분노 같은 것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상하이 시민들도 다들 알고 있다. 단체방이 정부의 감시아래 있다는 것을. 특히 중산층이 많은 우리 아파트는 내 사유재산에 크게 해가 되지 않은 한 정치에 관심이 없고, 특히 정부의 정책에 쉽게 따르는 단순한 중국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불만이 크지 않은 편이다.
공지사항이나 이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외, 단체방의 대화 주제는 사람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중요한 공지가 있을 수 있어 늘 이 대화방을 주목하는 편인데 잠깐 식사라도 하고 올라치면 내가 확인해야 할 메시지가 몇 백개라는 숫자가 떠있다.
초기의 관심사는 식자재를 구하는 방법이었다. 주로 해결방법보다는 질문이 많은 편인데 받아주는 사람 없이 공허한 물음표와 탄식이 난무한다. 물론 도움이 되는 공구 방의 링크나 판매자의 연락처가 뜨거나 유용한 정보가 있기도 하다. 심지어 식자재 전쟁때문에 다들 힘들어 하던 어느 날은 아파트 조경에 쓰인 식물 중에 먹을 수 있는 식물에 대한 정보가 올라오기도 했다. 가만, 이거 유용한 거 맞나…?
그 다음 주제는 언제, 어떤 구호품을 받을 것인가. 누군가가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이러한 구호품을 받았더라 하는 사진을 올리면 이 동네 저 동네 구호품 사진부터 내가 바라는 품목 나열까지, 기대감으로 메시지 창이 폭주한다. 심지어는 지금 구호품이 지급차량의 이동 경로를 생중계해주기도 한다. 벨이 울리면 그저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구호품을 받는데 이렇게 많은 토론이 필요한 걸까. 구호품 수령 후에는 각자 받은 제품의 인증샷, 다른 집과의 비교, 누락 여부 확인, 기쁨과 슬픔, 위로까지…. 정리는 누가 옆에서 해주는 건지 끝도 없이 메시지와 이모티콘이 대화창 위로 멀리멀리 사라진다.
그다음 이 대화방의 용도는 상호 감시였다. 자율적으로 정해진 규칙을 따르면 제일 좋기는 하겠으나 완벽한 개인도 사회도 없는 법. 이 방이 처음 만들어진 때에는 333동 앞 개똥은 어느 집 개의 것인가, 크기도 형태도 참 별로더라, 333동 앞 자전거는 누가 인도를 막고 세워둔 것인가 등, 방역과 관계없는, 이웃에 대한 불만들을 뱉어내곤 했다. 그러다 4월 1일, 봉쇄기간 동안은 “개인의 집 밖으로도 나갈 수 없다” 足不出户 는 정책이 정식으로 공표된 후에는 단지 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사진이 그대로 혹은 가끔은 얼굴이 뭉개진 채 올라왔다. 저 사람은 감염이 되면 어쩌려고 저렇게 돌아다니느냐, 걱정을 품은 말들이었지만 이건 분명 감시였다. 그들이 자원봉사자 일 수도 있고, 다급한 일로 움직이는 사람도 있을 텐데. 대화방을 보고 있자니 언제 어디서 무슨 주제로 내 사진이 수십 개의 대화방에 돌아다닐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급히 구호품을 가지러 밖을 나가야 할 때는 나도 몰래 모자를 푹 눌러쓰게 되었다. 나의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는 수배자의 기분인가, 에잇, 파파라치의 카메라를 의식한 연예인 모드라 생각하자.
별다른 이슈가 없어 좀 한갓지다 싶으면 애완동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시작은 애완동물에게 필요한 물자가 없어 힘들다는 정당한 주제이었지만 결국 “내 새끼 예쁘죠?”로 흘러간다. 개와 고양이 등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 필요한 정보도 주고받으면서 이때만큼은 온통 하하하 웃음 메시지와 행복한 이모티콘이 넘쳐난다. 내가 우리 집 거북이 얘기라도 시작했더라면 다들 키우고 있는 앵무새나 뱀, 귀뚜라미까지 우리 단지에 숨어있는 온갖 동물들이 다 등장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애완동물에 대한 수다는 정말 일반 주민들에게는 너무 민폐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최근 들어 고양이 사진이 현저히 줄어든 걸 보면 그들끼리 따로 대화방을 만들어 나간 모양이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드디어.
대화방에는 나처럼 한마디도 하지 않고 눈팅만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몇몇으로 정해져 있는데, 재미있는 건 말이 많은 사람들일 수록 프로필 사진에 본인의 얼굴을 걸어둔다는 점이다. 본인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니 목소리도 큰 걸까. 며칠 전 개인 구호품을 수령하러 정문을 방문했다가 시원한 대머리가 눈에 익은 사람과 마주쳤다. 대화방에서 다양한 주제에 의견을 내놓는 ***동 201호 아저씨였다. 팔에 문신도 강력한 것이 프로필 사진과 똑같으시구나…. 고양이를 8마리나 키운다며 고양이 이야기로 새벽까지 떠드시더니… 이렇게라도 아는 얼굴이라고 하마터면 꾸벅 인사를 할 뻔했지 말이다.
뜯어먹자니 살이 마땅찮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 같은 아파트 단체 대화방. 물론 봉쇄 정책에 대해 수준 높은 대화가 오고 갈 때도 많지만 이런 얘기들은 생활 중국어 수준인 내게 어려운 단어가 많으니 역시 패스. 중요한 공지나 공구의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 일단 봉쇄가 끝나기 전까지는 이 끝없이 이어지는 황당한 대화방에서 탈출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이 대화방을 통해 모델 같은 201호 아줌마도 친구를 맺었고, 늘 계란을 구하느라 바쁜 401호 아줌마도 알게 되었고, 공구나 단체방에 익숙지 않아 식품을 구하기 힘들어 하시는 여든 넘은 101호 할머니 할아버지도 도와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수고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방역에 필요한 물자를 기부하자는 좋은 의견이 일어 적은 금액이나마 좋은 일로 기부도 했으니 엄지 손가락이 아프게 창을 올려본 의미는 충분히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자. 단지 안에서 얼굴이 익다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려다 아차 싶어 뒷통수를 긁적이는 부작용은 조금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