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구매와의 첫 만남, 이렇게 기막힌 발상이 !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작은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전에 만들어진 구 단지와 그보다 조금 늦게 만들어진 신단지가 함께 자리해 있는데 신단지 둘레만 쭈욱 따라 걸어도 3km 정도의 거리라, 아침저녁 운동 삼아 돌기에 충분하다. (물론, 나 말고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겐)
다행히 나와 같은 아파트 라인 6층에는 한국인 베스트 프렌드도 살고 있어, 집안 봉쇄가 시작되기 전, 우리 둘은 틈만 나면 이 거리를 걸으며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이 짧고 제한적인 봄날을 아쉬워했다.
구 단지로 넘어가는 예쁜 다리에 벚꽃으로 온통 분홍 비가 내린다. 평소 같았으면 사진을 찍는 주민들로 바쁠 곳이었지만 지금은 벚꽃과 어울리지 않게 깜장 노랑 철망으로 만든 가로막이 무섭게 놓여있다. 방역을 위해 신, 구 단지의 유일한 통로인 이 다리를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벚꽃이 아쉬워 삼팔선 같은 가로막이 안타까워, 그리고 사실 제일 아쉽기로는 구 단지에 있는 편의점의 커피가 아쉬워, 우리는 다리 위를 어슬렁거렸다. 다리 끄트머리 어디 살짝 건너갈 수 있는 틈이 있지 않을까? 잘하면 다리가 안 부러지고도 뛰어내릴 수는 있겠는데. 돌아올 땐 어쩌지? 여차하면 저 거무죽죽한 시냇물이라도 건너 볼까, 기껏 해야 4미터도 안 되는 너비인데…
고작 편의점 커피 한잔을 바라며 너무 다양한 시나리오를 써본다. 아, 그곳엔 맛있게 퉁퉁 불은 어묵도 있는데. 진짜 한번 넘어봐야 하나 …
그런데 철망 한가운데, 이산가족 찾기라도 하듯 손 글씨가 가득한 종이 한 장이 펄럭거린다. 누가 우리처럼 담을 넘으려는 사람들에게 경고라도 날리는 것인가 들여다보니, 예상도 못한 소식이다.
커피를 배달해준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의 커피다!
오전과 오후, 각각 15잔의 오더가 있으면 배송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15잔을 어떻게 모으지?
알고 보니 이건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곧 광고지의 연락처를 통해 그 브랜드의 단체 대화방에 초대되었고, 그 안에서 커피 수혈을 바라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이미 커피가 배달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공동구매团购”와의 첫 만남이었다.
매일 저녁, 그리고 다음날 오전 퇀주 团住(공동구매를 주최하는 판매자)가 오늘의 판매 품목을 공지하면 주문을 하는 시스템이다. 샤오청쉬 小程序라는 위챗 내 미니 프로그램을 통해 메뉴, 가격 , 판매 조건 등을 볼 수 있고, 현재 몇 명이나 구매가 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아쉽게도 오늘 오후 배송 접수는 이미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 오전 배송 분도 기본 수량인 15잔은 이미 초과를 했으니 지금 주문을 하면 내일 오전 11시에는 향긋한 커피를 마실수가 있다!
단체 대화방에는 이미 커피를 누리는 사람들의 기쁨과 아직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의 부러움 기대, 그리고 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질문 공세까지 따라가기가 무섭게 대화들이 넘쳐난다.
이 브랜드의 커피 가격은 스타벅스 보다도 비싼 편이지만,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 누구도 가격을 묻지 않는다. 심지어는 배송시간이 한참 늦어 미지근한 커피가 도착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설렘과 걱정, 커피를 받기가 바쁘게 감사의 찬사와 기쁨의 인증샷이 올라온다.
나는 꼬박꼬박 적립한 포인트 덕에 가끔 무료 음료도 즐기곤 했는데, 지금 포인트 적립을 문의하는 건 귀한 커피를 만들어 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아쉽지만 접어두었다.
커피 인증샷을 친구들과의 대화방에 공유하면 나는 “세상을 다 가진 여자” 같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 가끔씩 커피를 받아 들고 단지 내를 걷다 보면 이 커피를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단체방으로 입장이 가능한 큐알코드를 건네주기도 한다 (공구 때문에 새로 생긴 메신저 친구가 몇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했던 공동구매 스토리는 딱 여기까지.
알 수 없는 배송시간과 포기해야 하는 각종 혜택, 선택할 수 없는 선택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그 희소성 하나에 만족했던 딱 커피까지였다.
내 눈을 흐리게 하고
내 손가락 관절을 고장 나게 하고
내 시간을 훔쳐가 버린 공구와의 전쟁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