챵차이 抢菜! 식자재 전쟁의 시작

먹을 사람은 많고 식자재는 부족합니다!

by 보부장

전쟁이 시작이 되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총칼을 겨누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는 비할 수 없겠지만 나는 지금 내 앞에 벌어진 식자재 전쟁이 더 무섭다.


지난 주말 본격적인 봉쇄 전부터, 방 하나 가득 라면이며 물이며 식품들을 창고처럼 쌓아둔 SNS의 사진을 보고 오버쟁이라고 생각하며 웬일이니 했었다. 심지어는 욕조에 온갖 채소들을 다 쟁여둔 사람도 보았다. 그런데 그때 보고 배웠어야 하는데 나는 그들을 비웃었구나.

나는 지금 나쁜 경험으로 나쁜 배움을 얻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그날그날 신선한 식품을 사서 음식을 한다. 그래서 작은 냉장고 한 대만 가진 집들이 많다. 물론 최근에는 큰 냉장고를 두 대씩 두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그래도 미국이나 한국 사람들처럼 냉장고를 꽉 채워 놓고 살지는 않는다. 상해에 사는 한국사람들은 렌트를 하는 경우에도 별도로 큰 냉장고를 직접 준비하곤 한다. 물건을 쟁여두는 습관도 있겠기도 하지만, 김치나 된장 같은 저장 식품도 있어야 한국식 식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도 렌트 당시 원래 이 집에 있던 내 키만 한 작은 냉장고 외에 직접 준비한 양문형 냉장고, 그리고 우연히 얻게 된 김치냉장고까지 냉장고 세 대에 음식을 채워놓고 사는 편이다.

하지만 주부들은 알 거다. 냉장고가 터질 듯이 꽉 차도, 언제나 식자재는 부족하고 뭘 해 먹어야 하는지는 숙제다. 옷장이 터질 듯 옷이 걸려있어도 언제나 옷은 부족하고, 뭘 입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나도 당장 먹을 재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봉쇄 전 업무로 만난 이탈리안 바이어 이야기가 떠올랐다. 시안 출신 와이프로 둔 그는 시안이 한 달간 봉쇄를 당했을 때 와이프의 가족들이 봉쇄 후 1주 동안은 집 안에 있는 음식으로만 겨우 버티고, 아사 직전에 정부에서 나눠주는 구호품을 조금씩 공급받아 어렵게 생활을 해야만 했다며, 봉쇄를 조심해야 한다고 나에게 목소리를 낮춰 조언했었다. 그나마 1차 구호품은 채소와 달걀 같은 신선제품 없이 라면류의 인스턴트가 전부여서 어르신들이 큰 고생을 하셨다고 했다. 이번 봉쇄가 이뤄지기 전, 그 이탈리안 바이어는 내가 본 사진처럼 집안을 각종 재료와 생활필수품으로 잔뜩 채웠을지도 모른다. 간접경험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꼈을 테니까.


다행히 봉쇄 전 주말, 배추 여섯 포기를 사서 뚝딱뚝딱 김치는 담가두었더랬다. 그나마도 사재기 열풍에 다 팔려나가고 없는 배추를 있는 대로 끌어왔더니 쪼개어 본 배추 속에 꽃대가 올라온 것이 3개나 되었다. 구할 수 있었으니 되었다며 골라내긴 했지만 지금도 김치를 먹다가 작은 꽃다발 같은 배추 꽃대가 보이면 당황스럽다.


문제는 채소였다. 양파나 파, 마늘 같은 향신채, 고기만 먹으려는 아이들도 군말없이 오독오독 씹어먹는 유용한 오이, 아삭아삭 상추 같은 채소들은 많이 사놓으면 결국 썩혀서 버리기가 일쑤라 많이 사놓지 않는 편이지만 또 꼭 필요한 식품재료다. 이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가루 커피와 함께 나만의 라떼를 완성해줄 신선한 우유! 꼭 구해야 한다!


주문이 가능한 온라인 앱에 접속해 주문을 해보려 했는데 이미 대부분 재고가 없단다. 재고가 있어도 배송시간이 꽉 찼단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맞아야 물건을 주문할 수 있는데...

제발 배송비는 얼마든지 드릴게요, 물건만 좀 보내주세요.


가격은 조금 비싸지만 약간의 회원가입을 하면 좋은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는 M 몰을 사용하는 나는 그나마 봉쇄 초기 약간의 우유와 달걀을 구매할 수 있었다. 파는 실패다. 왜 이렇게 파를 구하기 힘든 건지, 파대신 마늘대를 주워 담았다. 파와 마늘은 사촌지간이니, 조금은 대체로 쓸 수 있겠지.


친구들에게 M몰은 아직 주문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전해주고, 나도 가장 많이 이용되는 몰인 D와 알리바바 직송 몰 H의 앱을 다시 깔고 핸드폰 바탕화면 속 엄지손가락이 제일 먼저 닿은 곳에 두었다. 이미 조금 늦은 참전이지만, 그래 나에게는 빠른 손가락과 나머지 가족들, 세명이나 되는 전우가 있어.

바탕화면이 온통 식자재 앱으로 꽉 찼다. 아…. 정말 혼자 보기 아쉬운 장면이구나.


2-3년 전부터 이미 성숙단계로 접어든 중국의 온라인 마켓은 싸고 좋은 물건을 빠른 경우 30분 내에 배송해준다. 퇴근길 회사를 나서며 주문을 하면 집에 도착할 때 받아서 바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기에, 나도 언젠가부터 시장보다는 온라인몰을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봉쇄와 사재기로 인해 빠른 배송이 사라지고 오늘 사는 상추가 내일 모레나 되어야 배송이 가능하단다. 신선제품을 빨리 사기 위해 이용하는 곳인데.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그들도 예상은 못했겠지...


다행히 이러한 문제점을 판매상들이 놓칠 리 없었다. 식자재 전쟁 (창차이 抢菜- 음식을 낚아채다)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온라인 몰들은 당일 주문을 새벽 6시부터 접수받는 것으로 변경했고, 이 날부터 나는, 아니 거의 모든 상해 사람들은 새벽잠을 포기해야 했다. 출근할 때도 이러지 않았는데 6시 기상이라니…. 게다가 내가 애용하는 M 몰은 밤 10시 반에 주문을 시작한단다. 저녁 10시 반, 새벽 6시 대전이로구나.


밤 10시부터 차근차근 전쟁준비는 시작된다.

1. 네 식구의 핸드폰을 모두 꺼내어 미리 깔아 둔 앱을 열거나 위챗(메신저)에 연동된 미니 프로그램을 실행한다.

2. 내 지휘에 따라 오늘 사야 할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3.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의 금액을 가족들에게 미리 지급해둔다 지불 단계에서 돈이 부족하다고 뜨면 말짱 도루묵이다.

4. 사전 연습도 할 겸,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사전 오픈도 놓치지 않을 겸, 되지도 않을 결재 버튼을 계속

눌러본다.

5. 10시 20분쯤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는지 신호가 약하다거나 이용자가 너무 많아 에러가 난다는 메시지가 창에 뜨기 시작한다. 얘들아, 여보!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적들이 몰려오고 있어!

6. 10시 29분, 중요한 시기에 알람 창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10시 29분으로 맞춰둔 알람이 미리 울리면 내가 크게 카운트 다운을 한다. 사실 전우들 중에는 이때 이미 화면이 멈춘 패전자가 발생할 때도 있다. 무기가 부실한 탓이다.

7. 10시 30분 정각 각자 가장 편한 방법으로 자리를 잡고 조그만 핸드폰 화면의 결재와 확인 버튼, 뒤로 돌아가기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른다.

5분쯤 흘렀을까. 가끔 내가 고른 상품의 재고가 없다는 친절하지만 반갑지 않은 화면이 뜬다. 이미 같은 아이템을 여러 종류로 담아뒀으니 일단 네, 알겠습니다 하고 다시 결재 버튼을 누른다.

8. 10시 40분, 처음 300원으로 시작한 장바구니 금액이 결국 200웬 160웬, 100웬까지 떨어지는가 싶으면 내일 배송이 이미 예약 완료되었으니 내일 다시 들러달라는 메시지가 뜬다. 오늘도 하나도 건지지 못했다.

참담한 패전이다.

9. 11시 혹시나 누가 버리고 간 물건이 다시 뜨는 일이 생길까 하는 아쉬움에 계속 상품 목록을 뒤져보며 구질 구질하게 온라인몰에 매달린다. 핸드폰의 자유를 얻은 아이들은 신나게 각자 방으로 들어가 버리고 (아, 잠깐, 아까 전달해준 돈은 다시 환불해주렴) 남편도 내일 다시 6시 참전하려면 잠이나 일찍 자두라고 조언하지만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승자를 질투하며 애꿎은 화면만 계속 두드려본다.


아, 아이폰 13프로를 이길 수는 없었을 거야,

아, 나는 4G를 사용하는데, 5G를 쓰는 사람이 다 가져갔을 거야

아, 1초에 몇 번을 두드려주는 어깨 안마기를 손가락 위에 두고 결재 버튼을 두드려대는 방법도 있던데, 난 안마기도 없어. 안마기가 없으면 안마기를 주문할 수도 없어. 아 모순이야.

아, 내가 싫어하는 숏폼앱들에서 온라인 주문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동영상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해…






며칠을 패배했지만 내일 아침 참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전 5시 50분에 알람을 맞추고 하루 종일 핸드폰과 노트북을 들여다보느라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쟁취한 음식은 대부분 어린 전우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새벽 6시 전쟁까지 아이들이 전쟁에 참여해 줄리는 없다.


여보, 내일 아침 전쟁은 당신이라도 함께 해줘요. 아침은 전장이 두 곳이라고. 그래도 당신밖에 없어. 고마워요. 아, 당신 핸드폰은 한참 전에 출시된 제품이구나… 괜찮아 중국 브랜드니까 같은 나라 제품이라고 먹힐지 누가 알아.


말도 안 되는 패배감을 느끼고 말도 안 되는 작전을 짜면서 전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또 전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 이러지 말자고요. 난 평화주의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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