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사랑은 스페인에서 이별은 쿠바에서
‘사랑하는 법’을 아직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비리디 비린 성년의 여자가 겪은 이별의 끝은 마치 겨울의 된서리처럼 매서웠다. 스무 살에도 어려웠던 사랑은 반복학습에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더라. 이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번 잘 견뎌낸 이별이라해서 두 번째 이별의 아픔이 더 쉬워지거나 상쇄되는 법은 더더욱 없다. 이별 후 곳곳에서 견뎌내야 하는 또 다른 인내가 기다린다.
오지게 아픈 건 난데 주변인들에게 괜찮은 척 하느라고 나 자신을 위로할 만한 시간도 평온히 갖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나의 여행 치유 에세이다. 소설이나 여행기처럼 편안하게 읽히길 바랐던 이 글은, 스페인에서 맺은 불꽃 같았던 사랑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아 무작정 떠난 쿠바에서 마음을 치유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아픈 속내를 글로 담아내 스스로 괜찮다며 자위하기까지 오랜 시간 에둘러 온 듯하다.
지금에 와서야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힌다.
“완전 코미디야. 어떻게 하면 너처럼 산다니?”
친구들의 한 마디다. 나의 이별 이야기는 별 소득 없는 파자마 차림의 수다에도 종종 등장했다. 맥주 500cc 한 잔에 걸맞은 마른 안주거리, 쥐치나 뱅어포처럼 말이다. 손톱 끝에 자라나는 가시처럼 아프던 그때 그 이별이 마치 봄날 흩날리다 목젖을 간질이던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워진 데는 3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타인의 시선에 배짱이 생기던 때가.
혹시 사랑 끝자락의 이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다 왔으니 조금만 더 견뎌내라고 다독이고 싶다. 그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이 정도 배짱이 생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상처가 생기게 되면 기다려야 한다. 상처가 아물며 딱지가 몇 번씩 떼이고 붙고를 반복하고 나면 통증도 사라지고 상흔만 남듯이 말이다.
상처가 나도 괜찮다. 인생엔 수많은 반창고가 있으니까. ‘상처’라고 생각되는 감정은 가슴속 깊이 묻어 둔다고 해서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그 상처는 이유 불문 삶을 마무리할 때까지 인간의 가장 연약한 구석구석을 찾아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 것이다. 드러내야만 한다. 기회가 있을 때 꺼내어 일반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는 일, 최대한 사랑스럽게 보듬고 다독이고 당당해지게 만드는 일, 그것이 바로‘스토리’ 다. 수면 위로 올라와 당당해진 누군가의 스토리는 상처가 아니라 타인을 치유하는 멋진 경험까지 만들어내지 않던가.
그 기회란 언제가 될까. 언제 나의 상처를 수면 위로 드러낼 것인가. 그것은 내 안의 작은 아이가 끊임없이 외쳐대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깨닫는다. ‘이젠 괜찮아.’ , ‘조금 멋쩍긴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작은 용기의 불씨가 생길 때이다. 이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당당하게 이야기해 올 때 그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지금 이 시간 누군가와 애틋하게 사랑하다 이별로 아파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나도 아팠으니 그 마음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전한다. 상처를 툴툴 털고 스스로가 가진 편견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며 이 글을 집필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 지금, 이 시간을 과거에 저당 잡혀 잃어버리지 말고 소중히 살아내길 바란다. 생각보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달달하고 풋풋한 사랑이 마치 당신이 했던 그것인 양 설레길 바란다.
쿠바에서 이별 수업을 하는 나의 여정이 당신이 겪었던 그 무엇 인양 공감하기를 바란다.
어떤 이유가 되었던 나의 글이 당신에게 커피 한 잔에 쿠키 같은 소소(小小)한 힐링이 되길 바란다.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절절 끓는 이별의 뒤안길에 깜짝 선물처럼 나타난 사랑이었다. 다시 품지 못할 것 같았던, 품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 벚꽃 흐드러지던 봄날 다가왔다. 그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내 추억을 떠나보낸다.
춘천 청평사로 첫 여행을 떠나던 그날도 오늘처럼 하얀 구름이 어울렁 더울렁 모난 구석 없이 피어오르던 날이었다.
- 저자의‘치유 여행’을 시작하는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