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쿠바로 떠나며
쿠바행이 아니라 스페인행에 올랐어야 했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 전화 한 통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와 나 사이 가진 물리적 거리 따위는 아무런 장애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충분히 달달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는위안 때문이었을까. 단 한 번도 사랑이란 감정에 의심 따윈 가져 본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낯선 땅 쿠바로 떠나가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그날 밤, 전화기 속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안토니오, 오랜 휴가를 얻었어. 대한민국에서 한 달 가까운 휴가라니. 이건 기적 같은 선물이야!”
“진짜? 잘됐다. 얼마나 기다려 온 휴가야.”
“자기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아.”
“그런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무슨 일은. 자기가 온다니 좋지.”
“왜 시큰둥해? 나랑 같이 휴가 못가?”
“실은 지금 당장 휴가를 낼 수가 없게 됐어.”
“......”
목젖이 쉴 새 없이 흔들리도록 호들갑을 떨어댄 지 수 초나 지났을까. 수화기를 든 채 침묵이 내려앉았다. 깊은 새벽 호숫가에 찾아든 물안개처럼 나의 시야는 흐릿해졌고 가슴은 촉촉이 젖어들었다. 언제나 그의 마음 안에서 머무를 것 같았던 나의 마음이 홀연히 떠나와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오랜 시간 그와 주고 받은 대화의 의미가 혹시 이별을 예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길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사랑을 하게 되어 연인이 되면 남자의 경우와 달리 여자에겐 ‘더듬이’가 하나 생긴다. 일명 ‘촉’이라고 하는. 게다가 태생부터 남자와 여자는 사용하는 언어의 수와 작동하는 뇌의 부분이 달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단다. 어쩜 신이 내려 준 찰떡궁합의 커플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 모르겠다. 존 그레이의 베스트셀러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듯. 남자와 여자가 소통하는 방법을 삼십 년은 족히 익혀야 한다고 하니 다시 말하면 삼십 년은 함께 살아서 서로의 언어를 익혀야 눈만 껌뻑해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남자에게 ‘촉’ 이 생긴다는 말은 아니다. ‘촉’ 은 가슴이나 음부처럼 여성에게만 있는 전유물이니까. 여하튼 나의‘촉’ 은 얼마 전까지도 손에 데일만큼 뜨거웠던 우리의 사랑이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사랑’ 이 아닌 ‘곧 사그라들 수 있는 사랑’ , 다시 말해 ‘종지부’ 를 찍고 있다는 것을 체감시키고 있었다.
그 후, 그와의 통화와 페이스북(facebook) 메시지는 더 자주 오갔다. 변명이었을까. 아쉬움이었을까. 예전보다 더 구애하듯 보내는 메시지는 마치 내게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들켜버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더 애달프고 간절했다. 현실은 달랐다. 그는 더 이상 빗장을 걸어버린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미 사랑의 언어는 조금씩 일상의 안부로 바뀌고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말처럼 스페인으로 갔어야 했다. 그와 헤어진다고 해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작 이만큼 열렬히 사랑하자고 언약을 했던가.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대화’였다. 그가 한 모든 이야기가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단걸음에 스페인을 가고 싶었지만, 그의 말대로 그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 또한 시간을 가져주길 그는 바랐다. 지금 이대로 그를 스페인에서 만나면 멱살이라도 부여 잡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더 솔직한 마음은 두려움이었다. 그와 이대로 끝나 버릴까 봐.
무책임하게 떠나버린 것에 대한 오해가 어긋난 휴가 계획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끝나버린 관계에 미련을 두지 말자 생각했지만 이런 미묘한 감정의 실랑이들이 차분히 가라앉으니 이번엔 몽글몽글 오기가 생겼더랬다. ‘남자가 하나야?’ 라며 말도 안 되는 치기를 부려보았다.
베란다에서 굴렁쇠 모양의 바퀴를 가진 32인치 가방을 방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족히 한 달 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챙겨 놓은 짐가방이다. 난방시스템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스페인의 초가을 일교차를 대비한 옷가지를 꺼내고 40도를 웃도는 쿠바의 날씨에 걸맞은 알록달록한 옷을 가득 담았다. 초가을에 접어들어도 해수욕이 가능한 스페인의 남부지방 여행을 대비해 구입한 손바닥보다 자그마한 비키니와 무작정 사 두고 입어보지도 못한 야시시한 여름옷은 다시 장롱 속으로 제자리를 차지했다.
무얼 그리 챙겨 넣었을까. 불과 한 달 떠나는 휴가에 적절치도 않은 이민 크기의 가방이라니. 꾸역꾸역 싸 넣은 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헛헛한 마음이었다.
친구들은 물었다.
“왜 하필 쿠바야?”
“글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되도록이면 멀리 떨어진 곳,
휙 돌아오지도 못하리만치 심리적 거리가 먼 곳,
갑자기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어재낀다 해도 창피하지 않을 정도로 낯선 곳,
주정을 있는 대로 떨어도 외국인이라고 넉넉히 봐줄 수 있는 곳,
미친 듯 춤을 추고 있어도 의식할 필요 없는 곳,
무엇보다 발길이 낯설어 좋은 곳,
익숙하지 않아 좋은 곳.
그래서 떠난다.
지구 저 편
중미의 쿠바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해가 들고 나도..
모든 이별의 후유증은 같다. 사랑이란 것을 했다면 그 뒤의 흔적은 숨길 수가 없나보다. 한동안 남들이 하는 이별 코스프레에 빠져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짧은 연애기간이었다. 물리적 거리가 멀다보니 함께 보낸 시간의 총량을 따져 보면 불과 반년이나 될까 서로가 바빠 자주 보지 못했으니 후유증을 이겨내는 데 조금은 수월하겠다고 위로해 보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연애의 감정은 시간이 아니라 온도였다. 얼마나 뜨거운 온도로 사랑했는가에 따라 이별의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해가 들고 나도록 이불안에서 주말 내 시름시름 앓으며 자연인처럼 살다가 몸을 일으켰더니 머리는 쉰내가 나고 견갑골과 등짝이 오그라들었는지 뻣뻣한 게 몸이 천근 만근이다. 이불 시트를 가슴팍 위까지 쭈욱 끌어당기고는 일년 내 쏟을 눈물을 쏟았다. 혀끝을 가만히 이불에 대어보니 짜디짜다.
왜 갑자기 식욕이 당기는 걸까. 자그마한 양재기에 밥한 덩이 넣고 작년에 담가 폭삭 익은 신 김치와 참기름을 떠올리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양푼에 밥을 넣어 비벼 완성하기까지 불과 5분. 급히 먹었나. 끄윽 하니 깊은 트림이 올라온다. 시원하다. 누가 몸과 마음이 일체라 했던가. 마음이 힘든 것과 다르게 반응하는 이 식욕이란.
슬프게도 가족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후 당기는 식욕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는 이야기가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하루다. 드라마에서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지 이별이란 대단한 녀석을 맞닥뜨리고 나서야 알았다.
명동에 나간 김에 다섯 가지 매니큐어를 사들였다. 정열적인 빨강, 바다색 닮은 파랑,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손톱을 장식할 차분한 회색, 숲 색깔을 닮은 초록, 그리고 평소에 하고 다닐 하얀색.
둘이 계획한 여행이 홀로 배낭여행으로 바뀌었다. 스페인에서 쿠바로.
‘그래, 혼자 가자. 우아하게.’
“9월 5일 인천공항에서 쿠바 가는 비행기표요.”
“인천공항발 쿠바 도착 캐나다 토론토 경유입니다.”
“직항은 없나요?”
“네, 인천공항발 쿠바 도착 직항 항로는 없습니다.”
“소요시간은요?”
“총 18시간 30분입니다. 대기시간 2시간입니다.”
“일반 좌석 아니 잠깐만요. 비즈니스석으로 발권해주세요.”
“한분이신가요?”
“네...”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나는 거야. 내게도 시간이 필요해. 홀로서기 위한 시간이... 아무도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데 이렇게 코를 빠뜨리고 있기엔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잖아.’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며 ‘괜찮아, 괜찮아’를 연신 외쳤다.
떠날 때 필요한 건 약간의 돈과 비행기 티켓뿐. 이미 마음은 곤죽이 된 채 쿠바행 비행기로 향하고 있었다. 캐나다의 토론토로 향하는 첫 비행기다. 비행기 이륙이 한 시간 가량 남았다.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 창가에 앉아 그때 그 음악을 듣고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헤수스 아드리안 로메로(Jesus Adrian Romero)’ 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나 또한 가톨릭 신자다. 한때는 종교적 색채를 띤 고요하고 은총 가득한 헤수스의 음악을 함께 들으며 미래를 꿈꾸었었다.
‘어?’
방송이 나온다. 쿠바행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다. 잠깐 정신을 놓기라도 하면 누군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사랑과 이별의 시간 속으로 나를 데려가 버린다. 누굴까. 이렇게 짓궂은 장난을 하는 이가. 깊은 한숨이 내려앉는다. 기내용 가방을 메고 탑승구로 향했다. 비즈니스석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편했다. 파란 눈의 승무원이 나의 눈을 똑바로 맞추고 부드럽게 묻는다.
“Would you like orange juice or water?” (오렌지주스 또는 물 드실래요?)
“Orange juice please.” (오렌지주스요.)